생각의 편린들

시인의 절필 부르는 불의의 시대

새 날 2013. 7. 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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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이 절필을 선언했다.  물론 혹자는 시인이 글을 안 쓰겠노라 선언하는 일이 뭐 그리 큰 대수인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개인 사정상 잠시 쉬었다가 다시 펜을 잡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 말이다. 

 

안도현 시인의 절필 선언

 

하지만 이번 절필은 그런 류와 비교해 차원이 좀 다른 것 같다.  아니 많이 다르다.

 

 

절필을 선언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안도현 시인이다.  지난 4일 그의 트위터를 통해 박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엔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겠노라 폭탄 선언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그 가치를 눈속임하는 일들이 매일 터져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를 바라보는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다.  30년 넘게 시를 써 왔고 10권의 시집을 냈지만, 현실을 타개해 나갈 능력이 없는 시, 나 하나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시를 오래 붙들고 앉아 있는 것이 괴롭다.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그의 절필 선언 사유다.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이 사회 현실에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시국선언이나 촛불집회 참가와 같은 도구가 이용되곤 한다.  이는 매우 적극적인 참여 방법 중 허나다.  하지만 시를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시인이 시를 쓰지 않겠노라 절필 선언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큰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비장함마저 느껴져온다.  시인으로선 자신의 전부를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의의 시대가 부른 절필

 

그렇다면 시인이 절필 선언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그것은 과연 무얼까.  바로 작금의 불의한 시대다.  사회 전반으로 점차 확산되어가는 이 음침하며 불의한 기운이 그로 하여금 펜을 내려놓게 만든 것이다.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정치 관여 그리고 집권세력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이용한 불법적인 정치 공작, 치졸한 물타기 시도 등 국기를 문란케 하고, 민주 질서를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는 이 엄중한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인 양 침묵만을 지켜오고 있다. 



민주주의 시계를 적어도 3,40년 전으로 후퇴시켜 놓고도 적반하장 격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여권과 박 대통령을 바라보며 그의 표현 그대로 참담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터, 심정적으로 그의 절필에 충분히 공감 가는 상황이다. 

 

최근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가 60%를 훌쩍 넘어서며 고공행진 중이란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이로부터 비롯된 오만함(?)일까.  최근 성사된 개성공단 남북 실무회담이 박 대통령의 일관성 있는 강경 대북 기조 덕분이란 스스로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마치 개성공단에 대한 진정성 있는 해결 의지 없이 막연하게 침묵을 지키며 벼랑 끝 전술을 펼쳐왔던 것이 모두 계획에 의한 것인 양, 아울러 북한 또한 이러한 자신들의 계획에 동조해온 것인 양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박 대통령의 침묵을 고도의 정치적 활동이라 보는 견해마저 있다.  현재의 시국은 박근혜 정권과 이명박 정권 모두 연루되어 있는 메가톤급 이슈들로 가득하며, 박 대통령 자신 또한 이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대통령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침묵 길어질수록 촛불은 늘어간다

 

지난 대선 때도 익히 봐온 바 있고 대북 정책에서도 드러난 바 있지만, 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자신에게 불리한 사안에 대해선 침묵 모드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입을 열면 온통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지뢰밭 천지이니 차라리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국민들의 저항은 커져만 간다.  지난 6일 있었던 촛불집회는 그동안 17일간 이어져왔던 집회 규모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아울러 이날 서울뿐 아니라 대구, 광주 등 전국 주요도시에서는 동시다발적 대규모 촛불집회가 개최되었다.  일부 보수 언론들의 "촛불이 꺼져간다"는 왜곡된 여론 몰이를 향해 촛불은 오히려 점점 커져가며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상황을 직접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인기라는 것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싶겠지만, 아무리 외면하려 애를 쓴다 해도 잠시 잠깐의 눈속임 효과와 같은 위기 모면 정도는 가능할지 몰라도 진실만은 절대로 감출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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