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심장이 오빠를 구하라고 시켜요.. 영화 '안티고네'

새 날 2022. 1. 22. 12:26
반응형

알제리를 떠나 캐나다에 정착한 안티고네(나에마 리치) 가족. 이들은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낯선 환경에서 이어가게 될 새 삶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누는 등 이들이 머무는 공간엔 모처럼 화기가 돌고 웃음꽃이 활짝 핀다. 안티고네의 새로운 학교 생활도 적응 기간이 끝난 듯 순조로웠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였으며, 최근에는 그녀를 좋아하는 남친(앙투안느 데로쉬에)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야외에서 머물던 큰 오빠 에테오클레스(하킴 브라히미)가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작은 오빠 폴리네이케스(라와드 엘-제인)는 경찰에 의해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영화 <안티고네>는 가족이 당한 억압과 차별에 맞서 저항하는 한 이민자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2008년 캐나다 몬트리올 공원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발생한 이민자 사망 사건을,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가 쓴 희곡 <안티고네>에 빗대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두 오빠는 마약을 취급하는 갱단의 조직원으로 각기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을 추적 중이었다. 비극은 이러한 배경에서 싹텄다. 하지만 별다른 저항이 없었던 큰 오빠를 사망에 이르게 한 건 명백한 경찰의 과잉 진압이었다. 자신이 평소 가장 좋아하던 큰 오빠가 사망하고, 작은 오빠마저 경찰에 체포되어 추방 위기에 내몰리자 안티고네는 절망감에 빠져든다.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어떻게든 작은 오빠의 추방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안티고네. 결국 구속된 오빠와 자신을 바꿔치기하기로 작정한다. 이후 오빠는 탈출에 성공하고. 그녀는 구속된다.

 

오빠 대신 자발적으로 형무소에 갇힌 안티고네의 기구한 사연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녀는 일약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른다. 안티고네의 가족을 둘러싼 비극적인 사건의 전말과 오빠의 추방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킨 그녀의 사연이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간 덕분이다. 

 

 

2500년 전에 쓰인 고대 그리스 신화를 찢고 현대에 등장한 안티고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안티고네의 희생은 역적을 자처하면서까지 오빠의 시신 매장에 나선 고대 그리스 여성의 그것과 판박이다. 오빠의 시신 매장을 위해 법과 제도에 저항하던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여성을, 캐나다로 어렵게 이주해온 오빠를 추방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형무소에 대신 갇히는 소녀로 둔갑시킨 것이다.

 

안티고네는 스스로 유죄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끝이 나지 않는다. 사법 시스템은 그녀가 왜 오빠를 위해 희생을 자처한 것인지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오로지 재판 절차가 잘 진행되느냐의 여부에만 관심이 쏠려있을 뿐.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는 "내 심장이 오빠를 구하라고 시켜요" 라는 안티고네의 절규가 파고들 여지가 없다. 고대의 폴리네이케스를 역적으로 취급하여 사후 매장을 거부한 당시 제도에 신화 속 여성이 부조리하다고 여겨 저항한 것처럼 현대의 시스템화된 제도가 정의를 실현시킬 유일무이한 수단이 아닐 수 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영화는 연대의 유용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SNS는 난민 등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매우 훌륭한 도구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SNS 채널의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만큼은 경계한다. 사안에 따라 각기 다른 잣대를 들이대며 진실을 왜곡하고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SNS의 특성을 우려한 것이다. 

 

영화 <안티고네>는 고대 신화를 실화에 대입시켜 설득력을 끌어올린 작품이다. 이민자의 삶은 녹록지 않다. 차별은 일상이다. 영화는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 가운데 하나인 <안티고네>를 현대에 맞게 각색하여 이민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현실을 들여다본다. 

 

 

 

감독  소피 데라스페   

 

* 이미지 출처 : 그린나래미디어(주) , (주)키다리이엔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