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우주 없는 우주 이야기..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새 날 2022. 1. 1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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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항공우주국(ESA) '프록시마 프로젝트'에 발탁된 프랑스 엔지니어 출신 사라(에바 그린). 어릴 적부터 꿈꿔온 우주인의 꿈을 마침내 이루게 된 그녀는 1년 동안의 우주 임무 수행을 위해 지구에서의 마지막 적응 훈련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라에게는 올해로 7살이 된 딸 스텔라(젤리 불랑)가 있었다. 프로젝트 수행 기간 동안 딸 아이와 떨어져 지낼 생각을 하니 사라는 벌써부터 눈앞이 아득해진다. 7살 아이에겐 아직 엄마의 따스한 품과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별거 중인 남편 토마스(라르스 아이딩어)가 스텔라를 돌봐주기로 했지만, 엄마의 손길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유럽항공우주국 프로젝트에 선발된 한 여성 엔지니어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우주인으로서의 훈련 과정은 물론, 엄마로서의 역할까지 도맡으면서 혹독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어릴 적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된다. 

 

아빠를 따라 거주지를 옮긴 스텔라. 학교며 친구며 주위의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온통 새로웠다. 이런 환경에 놓인 아이를 마음껏 돌봐주지 못하는 사라의 감정은 폭발할 듯하다. 몸은 비록 떨어져 있어도 마치 인력이 작용하듯 마음만은 늘 스텔라에게로 향했던 사라. 하지만 훈련 일정 틈틈이 아이와 접촉하는 게 그녀가 스텔라에게 베풀 수 있는 유일한 관심법이자 사랑법이었다.

 

 

사라는 촘촘하게 짜여진 훈련 일정 중에도 부족함이 없도록 스텔라를 세심히 보듬는다. 그러다 보니 간혹 훈련에 늦게 참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규 훈련에서 배제되는 쓰라림도 맛본다. 스텔라 역시 엄마의 빈 자리가 몹시 아쉬운 상황이다. 훈련 일정이 변경되는 바람에 계획돼 있던 엄마와의 약속이 무산되던 날, 엄마를 향한 스텔라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한다. 

 

 

사라의 우주 적응 훈련 과정은 시작부터 난관투성이였다. 남성 본위의 훈련 프로그램은 여성 우주인의 탄생 과정이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웅변한다. 훈련소 안팎에서는 성차별적 발언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고, 여성은 나약할 것이라는 편견이 더해졌다. 여기에 아이까지 돌봐야 하는 삼중고. 그럴수록 사라는 더욱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 했다. 편견은 그저 편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으며, 엄마로서도 어느 누구보다 강하고 완벽해져야 했다.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기존의 영화들과는 결이 다르다. 광활한 우주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지도 않았고, 초인적 임무를 수행하는 영웅 따위도 없다. 오히려 우주에서의 임무 수행을 위해 그 뒤에서 묵묵히 적응 훈련에 열중하는 예비 우주인들의 고군분투를 세밀하게 그렸다. 덕분에 우주인들의 훈련 과정을 오롯이 담아낸 다큐 한 편을 관람하는 듯하다. 

 

촬영은 독일에 위치한 유럽항공우주국 훈련 시설과 러시아의 스타 시티, 카자흐스탄의 우주선 발사 기지에서 진행됐다. 세트장이 아닌 실제 훈련 현장에서 촬영된 덕분에 현실감이 남다르다. 우주인들의 고뇌도 군데군데 담겨 있다. 평소에는 느끼기 어려웠던 중력에 대한 감정이나 계절의 변화, 그리고 손끝을 스치는 바람 한 줄기까지도 이들에게는 달리 다가온다. 일상에서 느끼고 행해온 보잘것 없어 보이는 모든 일들이 곧 지구를 벗어나게 될 우주인들에게는 한결 같이 소중했다. 

 

 

완벽한 우주비행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엄마도 없다. 완벽해지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할 뿐.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같아 늘 한 쪽 면만 보이던 달의 이면을 비추듯,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그동안 화려한 우주만을 조명해온 할리우드 문법에서 탈피, 그 이면을 들춤으로써 우주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수고로운 과정인가를 역설한다.

 

영화는 여성 우주인의 노고를 기리는 일종의 헌정작이기도 하다. 상영이 종료된 직후 쿠키 영상을 통해 그동안 인류의 우주 개발사에 족적을 남긴 여성 우주인들의 명단이 이력과 함께 쭉 나열된다. 우주를 향해 박차 오르는 우주선의 화려한 불꽃쇼. 그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는 경이롭다. 우주인과 엄마의 역할까지 모두 소화해내고 어느덧 자신의 딸과 함께 먼 우주를 향해 꿈을 꾸기 시작하는 사라의 도약에 박수를 보낸다. 

 

 

 

감독  앨리스 위노코   

 

* 이미지 출처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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