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사형수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애끓는 사랑 '크게 될 놈'

새 날 2019. 4. 1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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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의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나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기강(손호준)이 가진 건 두둑한 배짱 하나가 전부다. 그의 그런 천부적인 성향을 진작부터 간파한 동네 어르신들은 비록 기강이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그더러 ‘크게 될 놈’이라며 치켜세우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기강은 친구 진식(강기둥)을 따라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그와 진식은 진식의 삼촌이 운영하는 전당포에서 장물을 취급하는 일을 하면서 점차 돈에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고향에서 바늘도둑에 불과했던 그들은 이로 인해 결국 소도둑이 되어간다.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친 취객의 시계 등 소지품을 훔치면서 돈맛을 알게 된 그들의 범죄 행각은 날로 대담해졌다. 퍽치기로 사람을 해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크게 한 탕을 노린 그들은 결국 살인에 가담하게 되고, 때마침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대대적인 범죄 소탕에 나선 시기였던 터라 그 길로 사형수가 되고 만다. 



영화 <크게 될 놈>은 무모한 성공만을 지향하다가 결국 사형수가 된 기강과 세상이 아무리 욕해도 그는 자신의 아들이라며 기강을 애써 품어 안는 어머니(김해숙) 사이의 애틋하고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형무소에 수감된 기강은 체질상 그곳의 질서에 쉽게 순응할 수 없었다. 동료들과 툭하면 다툼을 벌이는 등 말썽을 부리다가 독방에 갇히기 일쑤였다. 물론 그런 기강에게도 분명 약점은 존재했다. 평소 배짱 두둑한 기강이었으나 사형수 진영(박원상)의 사형 집행을 몸소 겪으면서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 



어머니는 사형수로 전락한 기강의 사형만은 어떻게든 막고 싶어 했다. 그가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자신의 탓이라며, 기강의 죄까지도 모두 끌어안으려는 어머니였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탄원서를 모아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는 게 유일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자식 앞에서 두려울 게 없었던 어머니는 뒤늦게 글을 익히기 시작한다. 



사형수가 되어 감방에 갇힌 뒤에도 천방지축 어디로 튈지 예단하기 어려웠던 기강의 태도를 변화시킨 건 그의 어머니였다. 기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글을 익혀 동네사람들에게 악착같이 탄원서를 부탁하고, 아울러 먼 길을 마다 않고 올라온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결국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영화는 기강의 수감 생활 모습을 한 축으로, 그리고 고향에서 기강의 옥바라지와 그의 선처를 바라는 어머니의 지난한 노력을 또 다른 한 축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개연성이 떨어지는 사건의 흐름과 너무 뻔한 스토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 몰입하기 어렵게 한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신파극은 분명 슬퍼해야 할 대목에서조차 왠지 그렇게 할 수 없게 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남녀의 사랑만큼이나 만국공통에 해당하는 요소다. 때문에 그동안 이를 소재로 무수한 작품들이 만들어져왔다. 하지만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소재라고 해도 괜찮은 작품으로 이어지기란 요원한 노릇일 테다. 



반전 요소 없는 너무 뻔한 극의 전개와 결말은 이 작품이 진정 21세기에 만들어진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저예산 영화라고 하지만 이는 어쩌면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예산에 관계없이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소재만으로도 흥미로운 작품들이 그동안 숱하게 만들어져왔기 때문이다. 


손호준이 감옥에서 오열하는 신을 연기하는 등 열연을 펼친다. 그러나 워낙 스토리가 힘이 약하고 진부한 탓인지 빛이 바랜 느낌이다. 김해숙은 영화 <희생부활자>에서 애끓는 모정 연기를 펼쳤음에도 왠지 겉도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와 비슷하게 다가왔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 작품, 어느 모로 봐도 ‘크게 될 놈’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감독  강지은


* 이미지 출처 : (주)영화사 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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