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자해하는 청소년, 이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이자

새 날 2019. 2. 2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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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교육부에서 실시한 ‘학생정서행동특성’ 검사 결과에 따르면 중학생의 10명 가운데 한 명가량이, 그리고 고등학생의 약 6.4%가 자해한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그나마도 해당 수치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번 검사를 통해 드러나지 않은 자해 청소년의 숫자가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SNS에서 <추적60분> 제작진이 ‘자해’라는 단어로 검색을 시도하자 무려 5만8천여 개의 관련 게시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여 피를 흘리는 등 자해와 관련한 사진 및 글의 대부분이 청소년들이 올린 자료였단다.

지난 22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소리없는 아우성 청소년 자해’ 편에서는 청소년 자해 현황과 우리 및 해외 사례를 통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봤다.



자해하는 청소년들, 왜?

자해란 조금은 유별난 아이들만 빠져드는 일종의 일탈행위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해는 일부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성격상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우리 주위의 수많은 아이들이 자해라는 끔찍한 방식을 통해 자신의 심적 고통을 달래고 있었다. <추적60분> 제작진이 오픈 채팅방을 개설하여 아이들로부터 자해 경험담을 들어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관심을 드러내었으며, 누구랄 것도 없이 스스럼없이 나서서 실제 경험담을 풀어놓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안병은 전문의는 “최근에는 병원을 찾는 1순위가 자해와 관련되어 있다. 작년부터 우선순위에 들어와 있다”고 말한다. 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 정운선 교수 역시 “더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진료를 받으러 오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숨어서 자해를 하다가 중고등학교쯤 발견이 돼서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초등학생들이 진료를 많이 온다.”며 한층 낮아진 연령대에 우려를 표시했다.



아이들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지속적으로 신체를 손상시키고 있었다. 이를 흔히 ‘비자살성 자해’라 일컫는데,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자해를 자살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더불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자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있지만, 이 또한 전체 자해 청소년의 4% 미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해 청소년들은 왜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고 있는 것일까?



방송에서는 그의 원인을 청소년들을 옥죄는 불투명한 미래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과도한 입시경쟁이 청소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숨 쉴 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다. 여기에 최근 대입 전형이 복잡해지면서 상황은 전보다 훨씬 힘들어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시험기간만 되면 아이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기 일쑤다.

이런 고단한 현실을 전혀 헤아려주지 못하고 도리어 비난을 내뱉는 어른들 틈바구니 속에서 아이들은 시원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도, 그렇다고 하여 기대지도 못한 채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를 주체하지 못해 결국 자신의 신체를 해치는 방식으로 이를 해소하게 된단다. 청소년들의 자해는 어른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유행을 좇거나 단순한 일탈행위가 아니었던 셈이다.



마르스 프락시아 조용건 연구원에 따르면 “오프라인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고 온라인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폐쇄적인 네트워크를 이뤄서 온라인상에서도 도움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정운선 교수는 “부모님 세대에서는 힘든 일을 겪어서 내가 살아보니 ‘이것이 지름길인 것 같아, 이 길로 가야 네가 덜 힘들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런 것들이 아이들한테는 안 맞는다. 아이들은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힘들어하고 이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폭력적인 ‘자해 청소년’ 문제 해결 방식

한편 자해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하소연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들은 모른다”라는 점이었다. 방송에 따르면 아이들은 지나치게 둔감한 부모나 학교, 그리고 사회의 무신경이 자신들에게 상처를 입힌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런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지난해 5월 한 중학교에서는 자해하는 청소년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학생의 상처를 더욱 악화시킨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교사가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몸에 칼빵하는 X은 반장할 자격이 없다”는 등의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욕을 하면서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가한 것이다. 담임교사의 폭언이 있던 그날 이후 아이의 자해는 더욱 심해졌다.



학교에서 자해 검사를 하는 일도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공개적으로 다 같이 손목을 내밀거나 팔을 들어 올려 검사하는 방식이었다. 한정은(가명)양은 “자해 검사를 한다고 먼저 말씀해주시고 팔을 들라고 한 게 아니라 애들한테 먼저 팔을 들라고 한 다음에 자해 검사를 하는 식”이었다고 말한다. 아울러 “아픔을 가진 인간으로 학생을 생각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모멸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걱정하는 취지였다면 그런 방식으로 검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학교 측의 행위는 자해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청소년기에 자해를 한 적이 있다는 현직 교사 이현정(가명)씨는 ”너무 폭력적이다.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 대한 폭력을 받아 스스로 자해를 한 건데 그걸 강제로 노출하는 것은 2차, 3차 가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공개 처형하고 마녀 사냥하듯 낙인찍는 건 악순환을 만드는 것밖에 안 될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더 은밀하고 더 깊이 자해를 하게끔 유도하는 꼴이다. 나의 경우에도 자해했을 당시 반 전체나 다른 친구가 알았다면 진짜 못 견뎠을 것 같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일선 학교에서는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박진환(가명) 상담교사는 “자해에 대한 매뉴얼이 명확한 게 없다. 기본적으로 매뉴얼이라는 게 처리 방식이라든가 처리 기준인데 그 자체가 없는 지역이 많고, 아니면 대부분의 상담교사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각자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교육 당국의 현실을 꼬집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청소년의 자해에 대해 무지했던 게 사실이다. 제대로 된 매뉴얼조차 갖춰놓지 않은 상태에서 자해 청소년을 지도하는 일이 상담교사의 재량에 맡겨지는 현실이다 보니 학생과 상담교사 모두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방송에 따르면 학교에서 자해 청소년에게 2차 전문기관에 상담과 치료를 권하더라도 부모가 동의하지 않아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상당수의 부모와 학교는 아이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은 채 원인을 찾아 이를 해결하려하기보다 단순히 칼을 감추고 일단 자해를 멈추게 하는 표피적인 방법만 강구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아이들의 고통, 해결할 방법은?

그렇다면 아이들의 고통을 해결할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이와 관련하여 방송에서는 일찌감치 청소년 자해의 심각성을 인식한 호주의 사례에 주목했다. 10대 소녀의 10%가량이 자해를 경험한 호주는 이를 비통하고 충격적인 당면과제라고 강조했다. 이후 호주 정부는 ‘헤드스페이스’라는 단체를 조직했다. 25세 이하의 청소년이면 누구나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학자에게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비밀을 보장 받으며 상담이 가능했다. 게다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접근성도 용이한 곳에 마련돼 있었다, 현재 ‘헤드스페이스’는 호주 전역에 걸쳐 100곳이 넘는다.



그밖에도 ‘be you’라는 청소년 정신 건강 프로그램이 4천4백여 개의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호주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해가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일이었다. 그 일환으로 회복력 키우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상처를 받았을 때 회복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호주의 중학교에서는 일반교과처럼 수업시간에 회복력을 가르친다. 호주의 이러한 대책들은 청소년 자해에 대한 범정부대책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자해라는 건 내가 정말 죽기 위한 게 아니고 나를 봐달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다.” 자해하는 자녀를 경험한 한 부모의 일성이다.



이 부모의 말처럼 비단 자해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자해 청소년들이 주위의 어른들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왜 자해를 했느냐”가 아니라 “정말로 힘들었겠구나”라는 다정한 말 한 마디 아니었을까?

응어리진 것을 풀 곳이 없어 자해를 통해 해소하게 된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때로는 함께 울어줄 때 비로소 이 세상에는 자기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마음이 아파 스스로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는 아이들을 믿고 공감해주며, 아이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어루만져줄 때 우리 아이들이 자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되지 않을까? 

“우주엔 나 혼자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차라리 혼자 있으면 괜찮은데 모두가 나를 봐주지 않는다는 게 너무 힘들다.”



* 이미지 출처 : POOQ(푹)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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