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민 누구라도 당할 수 있다”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한 검찰

새 날 2019. 2. 2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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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휴대전화로 촬영한 동영상 한 편이 언론에 공개됐다. 강원도 원주의 한 별장에서 속옷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던 남성이 껴안고 있던 여성과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다. 성접대 의혹의 중심에 선 최고위급 검찰 간부라는 남성의 정체는 다름 아닌 법무부차관 김학의. 그래서 국민들의 충격은 더 컸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은 동영상에 나오는 인물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김학의 당시 차관을 무혐의 처분한 것이다. 일명 '김학의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이다.

이대로 묻힐 것 같았던 해당 사건은 잘못된 수사를 스스로 바로잡겠다는 검찰의 과거사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찰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15개 사건 가운데 하나로 해당 사건이 조사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지난 19일 방송된 MBC <PD수첩> ‘검찰, 반성 없는 반성문’ 편에서는 검찰의 과거사위원회를 통해 다시 부각되고 있는 ‘김학의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과 재심으로 무죄가 선고된 ‘삼례 나라슈퍼사건'을 되짚으면서 검찰의 뼈아픈 성찰을 요구했다.



검찰이 무혐의 처리한 성접대 사건, 진실은?

김학의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의 동영상 속 피해자는 방송에서 보복이 두려워 이름까지 바꾼 채 숨어 지내다가 다시 한 번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건설업자 윤중천을 처음 만난 건 2006년경이었다. 별 다른 의심 없이 별장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차 한 대 지나다니지 않는 외진 곳에서 그녀는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윤중천과 별장관리인이 피해자를 제압한 뒤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당시 윤중천의 별장에 불려와 원하지 않은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은 피해자만이 아니었다. 동영상 피해자는 “사진과 동영상이 찍히는 바람에 윤중천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하소연했다. 별장에서 처음 성폭행을 당한 날 이미 윤중천에 의해 그 모습이 촬영되었으며, 이들 영상은 협박용으로 활용돼왔다. 피해자는 무려 1년 7개월 동안 김학의 전 차관을 비롯한 10명으로부터 200회가 넘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동영상이 불러온 파장은 컸다. 이른바 윤중천의 성접대 리스트에는 대기업 회장, 대형병원 병원장 등도 포함돼있었기 때문이다. 사회 고위층이 연루된 성 상납 의혹이었다. 얼마 후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차명폰과 승용차 등 증거물들이 다수 있었지만, 이를 조사하지 않는 등 알고도 일부러 덮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경찰 수사관은 “피해자가 언급한 증거들은 경찰 수사단계에서 이미 확보해 검찰에 모두 넘겼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법무부 차관을 상대로 수사하는데, 경찰이 증거도 없이 넘겼을 리가 만무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경찰은 탐문수사를 통해서도 김 전 차관의 다양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다. 경찰수사팀 관계자 A씨는 “김 차관이 노래를 부르면서 성관계를 했는데, 김 차관을 아는 모든 검사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 있었다. ‘연’을 불렀기 때문이다.” ‘연’은 김학의 전 차관의 이른바 18번 곡이라는 것.

지난해 4월 <PD수첩>은 김학의 차장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 의혹을 내보냈다. 이후 진상 규명을 바라는 여론이 고조되자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는 이 사건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켜 검찰 수사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대검 진상조사단에서도 조사를 받게 된 피해자. 그렇다면 조사는 기대한 만큼 잘 이뤄졌을까? 그녀에 따르면 “앞서 했던 검찰 조사와 다를 바 없었다.”는 전언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갈수록 실망감만 되레 커졌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법제사법위원회 김종민 의원은 “이것은 검찰의 선택 문제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오명을 쓰고 국민들의 불신을 계속 자초할 거냐 아니면 검찰 개혁에 스스로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냐 하는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한 위원은 “그렇지 않아도 검찰 내부의 잘못된 수사를 조사하는 것이기에 사실 외부의 힘이 강해야 하는데, 상근자는 검사밖에 없고 나머지 조사단원들은 경험도 없으며 시간도 없고 조사도 제한돼 있는 상황이다.”며 “기본적으로 검사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조사팀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검사의 의지에 따라 조사팀의 결과가 좌우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라고 현재의 분위기를 전했다.



동영상이 등장한 지 6년, 감춰져 있던 진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검 진상조사단에서 김학의 전 차관이 동영상에 나온 남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당시 검찰은 동영상 외에 다른 증거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대목이다.

피해여성은 동영상에 나오는 여자가 바로 자신이라며 숨기고 싶은 과거까지 밝히고 있지만 피해여성에게 돌아온 대답은 스스로 진실을 입증하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성관계를 묻는 등 2차 가해를 가하기도 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피해자가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

“국민 누구라도 당할 수 있다”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한 검찰

한편 20년 전 전라북도 삼례의 작은 시골마을, 동네사랑방이던 슈퍼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삼례나라슈퍼 사건’이다. 범인으로 지목된 이들은 같은 지역에 사는 3명의 청년들이었다. 범인들에겐 각각 3년에서 6년까지의 실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17년 뒤 재심에서 이들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현장검증 촬영 영상이 중요한 증거로 작용했으며, 법원은 이들에게 사과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삼례나라슈퍼 사건 역시 김학의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처럼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에 선정됐다. 방송에서는 당시 현장검증 촬영 영상을 내보냈는데, 얼핏 봐도 지적 장애를 가진 청년들이 잔뜩 겁을 먹은 채 경찰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작은 실수라도 저지를 경우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욕설을 내뱉거나 손찌검을 가했다. 보통사람들이 봐도 강압에 의한 결과임이 확연했다. 피해 할머니 사위인 박성우씨는 “모든 과정에서 형사들이 구타와 온갖 욕설을 하고 비아냥거리면서 현장검증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검찰 수사 과정에서라도 경찰의 잘못된 수사를 바로 잡을 수는 없었을까? 하지만 당시 어느 누구도 진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음은 당시 검찰이 작성한 신문조서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세 사람의 진술이 똑같은 부분이 많았고, 심지어 오타까지 같았다. 삼례 3인조 재심을 담당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최성우 검사가 작성한 조서를 비교해 보니 이건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너무 비슷한 부분이 많았고 심지어 오탈자까지 일치하는 조서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느냐.”며 “경찰이 작성한 조서를 그대로 타이핑한 거다. 사실상 끼워 맞춘 셈이다.”라고 주장한다.

삼례 3인조 피해자가 잡힌 뒤 얼마 후 진범이 나타났으나 검찰은 어처구니없게도 진범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만다. 부산에서 은밀하게 수사하던 사건을 두 달 뒤 전주 지검에서 무혐의 처리시킨 것이다. 당시 해당 사건을 전주지검으로 이송했던 부산지검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첫 민정수석을 지냈던 이종찬씨다. 방송은 그에게 당시 입장을 물었다.

“부산 검사들은 자기들이 수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어. 그러나 검찰이나 검찰 감독 입장에서는 검찰 전체를 생각해야 해. 자기가 범인을 잡았다고 기소하면 좋을지 모르지. 자기 임무는 모두 끝나게 되니까. 하지만 검찰 전체 입장에서 보자면 범인이 둘이 되는 셈이야. 얼마나 난리 나겠는가.”



그가 여기서 말하는 진범을 잡는 것보다 더 우선하는 검찰 전체의 입장이라는 건 바로 검찰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의미다. 결국 전주지검으로 옮겨진 진범은 다시 풀려났고 피해자들은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부산 검찰 수사관 B씨의 하소연이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저희도 많이 분개했죠.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이건 아니다. 그때 섬뜩했었죠. 왜냐하면 국민 누구라도 그렇게 당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니까요”

그런데 방송에 따르면 당시 진범을 잡고 풀어주기까지 검찰엔 더 놀라운 비밀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 전주에서 본격적인 내사가 시작되면서 삼례의 피해자들은 진범이 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피해자들. 부산의 진범들과 대질신문도 받게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재수사를 담당한 검사는 처음 사건을 맡았던 최성우 검사였다.



부장검사 출신 민만기 교수는 “이 사건처럼 진범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검거됐는데 원래 진범이 아닌 사람을 기소했던 검사가 다시 수사를 한 사례는 아마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진범과 피해자가 한 자리에 모인 날 대질신문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을까? 피해자들에게 살인을 저질렀느냐며 형식적으로 질문하고 이에 “그렇다”고 답한 피해자들, 이후 진범은 풀려났으며 피해자들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했다. 최초 사건을 담당한 검사가 재수사를 맡은 순간 이미 예견된 수순이다.



결국 피해자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실이 드러났고 진범도 밝혀졌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피해자들이 지금 원하고 있는 건 무얼까? 방송은 김학수 PD의 입을 빌려 답하고 있다 “올바른 진상규명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검찰이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라고.

그런데도 당시 수사 검사는 피해자들에게 3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억울한 누명을 씌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기는커녕 도리어 3천만 원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지난해 10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에 의뢰하여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4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p·응답률 7.1%)에게 ‘2018 국가사회기관 신뢰도’를 물은 결과 검찰은 2.0%로 12개 조사 대상 기관 가운데 최하위권인 11위를 기록했다. 검찰보다 낮게 나온 곳은 국회(1.8%) 단 한 곳뿐이었다.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얼마나 따갑고 불편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수치다. 검찰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국민 곁으로 다가가기를 원한다면 김학수 PD의 마지막 멘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검찰 진상조사단은 그동안 여러 종류의 사건을 재조사하며 진실을 드러냈다. 하지만 별장 성접대 사건이나 용산참사처럼 전 현직 검찰 고위층이 관련된 사건의 경우 재조사가 유달리 지연되고 있다. 한 달여 남은 활동 기간, 이제 어떠한 정치적 계산도 없이 엄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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