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입시제도의 굴레

새 날 2019. 2. 2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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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하는 데만 무려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가구가 있다. 책상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하여 방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기 짝이 없는 형태다. 드라마로 인기몰이 중인 화제의 제품, 이른바 ‘예서 책상’이다. 드라마는 종영했으나 그의 인기는 여전히 살아남아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있었다. SBS <SBS 스페셜>에 따르면 최근 ‘예서 책상’의 주문이 10배가량 폭증했단다. 한 번 주문하면 두 달 정도 기다려야 하는 건 예삿일이라고 한다.

어느덧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더 갖고 싶어 하게 되었다는 필수템 ‘예서 책상’, 단순히 소품으로 쓰이던 책상까지 화제로 떠오를 만큼 드라마 <SKY 캐슬>의 인기는 남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드라마 <SKY 캐슬>의 진짜 인기는 특정 인물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입시 코디 김주영이다.

지난 24일 방송된 SBS <SBS 스페셜> ‘입시코디 김주영을 찾아서’ 편에서는 우리 사회에 실제로 김주영 같은 입시 코디가 존재하는지 이를 수소문하고, 작금의 김주영 신드롬을 낳은 입시제도와 관련하여 문제점과 그 대책을 짚어봤다.



방송 제작진은 김주영 같은 입시 코디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다. 이곳에는 각종 입시 학원과 컨설팅 학원 등 입시 코디를 연상시키는 곳이 즐비했다. 하지만 제작진이 열심히 발품을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기회를 가로채는 게 바로 진짜 ‘정보’

입시 컨설팅 학원이 지금처럼 급증한 건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교육 평론가 이범씨는 “2016년부터 강남 학원가에 학생부 종합전형(아래 ‘학종’)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컨설턴트가 일부 학생들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각 학원에서 컨설팅을 겸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며 학종 관련 시장이 커진 건 수시가 확대됐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수시 중 가장 비율이 높은 전형이 바로 학종이기 때문이다.



입시 컨설턴트 김은실씨는 “부모는 수시를 모른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지도해주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사교육 시장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다”며 작금의 컨설팅 열풍이 부는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김주영 같은 사람이 있으면 맡기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며 “돈만 있으면 다 하고 싶다”는 게 요즘 학부모들의 진짜 속내라는 얘기다.



방송에서 학부모들은 입시 전형보다 더 힘든 건 아이의 학교 생활기록부(아래 ‘생기부’)를 채우는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엄마들이 마치 아이들의 비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는 공부에만 몰두하게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엄마들이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시험 준비만으로도 녹초가 되는 까닭에 엄마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엄마들은 아이 대신 책을 읽고 봉사활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입시생과 같은 바쁜 스케줄로 살고 있었다. 이를 위해 심지어 직장까지 그만두는 엄마들도 있을 정도다.

사교육시장에서는 ’엄마의 불안을 자극하면 집문서를 들고 온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된다. 그러니까 그동안 사교육 시장은 부모의 불안을 먹고 함께 성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의 심리를 역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입시에 성공한 엄마를 이른바 ‘돼지엄마(사교육 정보에 정통하여 다른 학부모들을 이끄는 엄마)’라고 부르는데, 돼지엄마 한서진(가명)씨가 털어놓은 그들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정보는 그러한 내막을 모르는 보통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쓸모 있는 정보가 진짜 정보다. 서류조작, 국외에 잠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가장 쉬운 방법은 사실 이혼이다. 아빠가 폐업한 뒤 삼촌 이름으로 다시 회사를 차리는 방법으로 굉장히 가난한 상황으로 만든다. 이럴 경우 대학에 돈을 아무 것도 내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사회적 배려자 전형’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기회를 가로채는 방식이 돼지엄마가 말하는 진짜 정보였다. 어처구니없다. “이런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도 입시 코디의 역할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더구나 서울 강남의 유명 학원들은 이런 사람들을 상담실장으로 앉혀 활용하는 등 악순환의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드라마 ‘SKY 캐슬’ 속 김주영 같은 입시 코디, 실제로 존재하나

한편, 방송 제작진은 입시 코디를 직접 찾아다니는 방식을 포기했다.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제보를 받았다. 이후 자신이 고액 입시 코디라는 사람과 접촉하는데 성공했다. 그와 인터뷰에 나선 제작진, 가장 먼저 입시 코디의 존재에 대해 물었다. 고액 입시 코디 김주영(가명)씨는 “김주영처럼 독보적인 존재가 있다. 알고 있는 분만 6명가량이다. 나도 그렇게 했던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입시 코디가 되는지에 물었더니 “금융자산가 매니지먼트 일을 하다가 입시 코디가 되신 분도 있고, 학원 강의하다가 컨설팅으로 돌아선 분들이 입시 자료를 만들다가 입시 분석의 전문가가 된 분들도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입시 코디는 숨겨져 있는 컨설턴트들이다. 이런 분들은 사무실도 내지 않는다. 대신 그 분들이 관리하는 강사 인맥이 엄청나다. 각 과목 별로 동원 가능한 강사진이 기본적으로 150명가량 될 것 같다”며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귀띔해주었다.



입시 코디 김주영(가명)씨가 말하는 고액 컨설팅은 일반 컨설팅과는 출발부터 차원이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른바 미완성의 코디 방법이라고 하는데 이는 “‘특정 대학 특정 학과를 넣겠다’ 그러면 역으로 들어간다. 자기소개서를 써놓고 쓸 내용이 생기부에 들어가게 거꾸로 집어넣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차원이 전혀 다르다고 하는 이러한 컨설팅의 비용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내신 과외 2억 원, 비교과영역(자율활동+동아리) 2천만 원, 자기소개서 500만 원, 면접은 부르는 게 값이니 이를 다 합치면 웬만한 집 한 채 값이다. 김주영(가명)씨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수요층은 우리나라에 적어도 10만 명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식으로 돈을 버는 직업군은 지식이 없으면 이 생활이 안정적일 수 없다는 점을 잘 안다. 이러한 점을 파고 드는 게 바로 컨설팅”이라며 쉽게 털어놓기 힘든 입시 코디의 뒷얘기도 전했다.



김주영(가명)씨는 “학종은 돈 많은 사람의 잔치가 아니다. 이제 돈 없는 사람도 이에 끼어들고 있다”며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학벌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우려하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내 아이만큼은 부모보다 더 잘 살거나 적어도 비슷하게 살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일각의 생각이 그동안 어떠한 입시제도도 무너뜨리지 못하는 견고한 성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학종 vs 정시, 뫼비우스의 띠 같은 입시제도의 굴레

김주영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학종에 대한 비판은 갈수록 고조되어가는 상황이다. 과거처럼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를 확대하자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강성태 학습멘토는 “진로를 확실히 정해 거기에 맞는 것들을 찾아다니면서 한다는 게 사실 어른들도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학생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과제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학종을 꼬집었다.



하지만 정시로 대체하자는 일각의 주장 역시 바람직한 대안은 아니라는 의견도 의외로 많다. 숭의여고 김진훈 진로진학상담교사는 “지금 정시 확대에 목소리가 가장 큰 곳이 강남권”이라고 주장한다. 강은실 컨설턴트 역시 “사교육을 많이 받는 아이들일수록 수능을 잘 본다. 따라서 이건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강남 애들이 수능에서 압도적으로 실력을 자랑하고 이쪽 애들이 입시율이 높은 건 수능 때문”이라며 수능의 폐해를 꼬집고 나섰다. 전주 신흥고 최재훈 교사는 “학종이 들어서니 서울 강남권이 아마 대학을 보내기가 좀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더 많은 불만이 나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학종과 정시 중에 무엇이 더 사교육의 영향을 덜 받는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을까? 교육 평론가 이범씨는 “학종의 여러 요소, 특히 비교과적인 요소들을 봤을 땐 불공정해 보이는 게 맞다. 그런데 학종의 선발 결과만 높고 보면 지역별로 학교별로 균등하게 선발되는 효과가 나온다.”며 학종에 한 표 거들고 나섰다.

방송에 따르면 학종으로 바뀐 이후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태도가 크게 변화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읽힌다. 성적은 물론 수업태도까지 학생부에 기록되다 보니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확연하게 달라진 것이다. 수업 이외에 학생들이 하는 활동도 부쩍 늘었다.



이에 대해 김해 분성고 예비고3 서승현 학생은 “학종이 어두운 면도 있지만 충분히 괜찮은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분위기 자체도 긍정적이며 활동적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이영석 학생 역시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할 게 너무 많다는 점이 힘든데, 그런 활동을 함으로써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없는 것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학종이 학교생활을 긍정적으로 바꾼 사실을 인정했다.

물론 이렇게 바뀐 학교생활이 과연 입시에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합격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학종이 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김진훈 교사는 ”점수로 붙고 떨어질 때는 어느 정도 예측성이 높았었다. 학종에서는 붙는다고 확실히 장담할 수 없고 그 범위를 적절히 판단해서 지원을 하고 또 합격을 예측하는 그런 것들이 쉽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다 보니 김주영 같은 고액 코디까지 동원하여 편법을 일삼는 부작용이 생겨나는 만큼 차라리 점수라는 객관적인 지표로 평가 가능한 정시를 주장하는 사례가 많다. 혹자는 학종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강성태씨는 “학종이 미국의 입시제도를 그대로 가져온 거다. 미국에서는 학종이 전체 입시의 20%가 채 안 된다”며 “돈이 엄청나게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발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잠재력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진짜 전문성을 가진 분이 참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런 준비가 아직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최재훈 교사는 “제도가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점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학종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시하는 학종은 김주영 같은 입시 코디를 양산하는 등 단점이 유독 많다. 하지만 앞서도 살펴봤듯 나름의 장점도 있었다. 그동안 입시제도는 누더기를 연상케 하듯이 끝없이 변모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과도한 입시 경쟁에 시달려왔으며, 학부모들은 그들의 뒷바라지에 올인하다시피 해왔다. 공고한 학벌주의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 어떠한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지금과 같은 부작용을 피해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보다 근원적인 문제인 입시교육 체계의 모순을 언급하고 나선 최재훈 교사의 주장은 모두가 한 번쯤 귀 기울여봄직하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은 사실 대입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학교가 그걸 돕기 위해 나서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계속 입시에만 초점을 둔다. 우리가 아이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했고, 그에 대해 도와줬더니 아이들의 삶의 형태와 방향이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쪽으로 부담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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