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매혹적 감성의 스릴러 영화 '델마'

새 날 2019. 2. 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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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평범해 보이는 대학생 델마(에일리 하보)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어느 날, 검은 새떼들이 느닷없이 날아와 도서관 유리창에 부딪히는 기이한 일이 발생한다. 동시에 델마에게서는 몹시 심한 발작이 나타난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 그녀에게는 뇌전증으로 의심된다는 의사의 소견이 뒤따른다.

한편 델마가 발작을 일으킨 그날 곁에서 함께 공부를 하던 대학생 아냐(카야 윌킨스)는 우연히 델마와 재회한 뒤 인연의 끈을 이어가게 된다.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델마에 비해 심신이 훨씬 자유로웠던 아냐, 델마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점차 빠져들기 시작한다. 어느덧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 두 사람은 한층 가까워지는데...

영화 <델마>는 외톨이였던 대학생 ‘델마’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 이후 자신이 생각하던 대로 일이 이뤄지는 등 잠재돼 있던 능력이 깨어나면서 겪게 되는 놀라운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작품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이뤄지는 놀라운 능력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나 압박이 가해질 때마다 델마의 신체에서는 특별한 변화가 발현되곤 했다. 극심한 발작이었다. 아울러 그때마다 델마가 의도하는 대로 모종의 변화가 나타나곤 했다. 물론 델마 스스로 이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부모님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 생활하는 동안 마땅한 친구 하나 없이 외톨이로 지내오던 델마에게 우연히 다가와 인연을 쌓게 된 아냐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델마는 아냐를 통해 다른 친구들과의 만남도 이어가게 되고, 이들과 함께 그동안 살아오던 뻔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일탈을 경험해보기도 한다.



동성 사이였으나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 아냐와의 사랑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다. 아냐의 격정적인 사랑 표현 앞에서 델마는 처음엔 어쩔 줄 몰라해했으나 이내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고 이에 몰입한다. 이렇듯 그녀에게 금기시돼오던 것들을 과감히 벗어나면서 델마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의사인 아버지(헨릭 라파엘센)가 자신에게 결코 알려주지 않은, 아니 그동안 감춰왔던 놀라운 사실들을 병원 진료 과정을 통해 알게 된다. 그녀의 과거 병적 증상과 관련한 행적과 할머니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왜 자신이 부모의 통제 아래에서 그토록 엄격하게 살아와야했던 것인지를 비로소 깨달음과 동시에 그녀의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마저 완전한 통제 속으로 곧 보내지게 될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이 위기를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게 될까?

델마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동성애를 하는 등 일탈 행위를 벌일 때마다 신 앞에서 회개를 통해 종교에 집착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온통 베일에 감싸여진 그녀의 삶은 이렇듯 엄격한 부모의 통제뿐 아니라 종교에 의해서도 강력한 통제에 놓여있었던 셈이다.



북유럽의 특징을 빼닮은 영화

델마의 웃음기 가신 어두운 표정과 왠지 절제된 듯한 행동은 그동안 그녀의 삶이 무언가에 의해 심하게 짓눌려왔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장치다. 아울러 그녀가 발작을 할 때마다 창문에 날아와 부딪히곤 하던 의문의 검은 새, 그리고 그녀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던 뱀은 그동안 델마의 삶을 지속해서 억눌러왔던 기제들을 상징한다.

북유럽 사람들의 삶으로부터는 여유로움이 묻어나온다. 거대한 자연에 순응하고 이것을 지켜나가는 여유,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는 여유, 세련되고 질 높은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삶에 기품이 있다고 할까. 어쨌든 이러한 그들만의 삶의 특징은 영화를 통해서도 발현된다.



영화는 비록 느릿느릿 흘러가지만, 그래서 중반까지는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장면 한 조각 한 조각들이 모이면서 점차 서사의 줄기가 완성돼가고, 그에 따라 관객으로 하여금 조금씩 극에 몰입하게 만든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 건 북유럽의 특징을 고스란히 빼닮은 듯싶다.

광활한 자연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장르에 걸맞게 고요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을 불러일으키기에 꼭 알맞다. 조용하고 느린 극의 흐름과도 왠지 찰떡궁합이다. 형식은 극도로 절제돼있으나 내용만큼은 결코 그렇지 않은 독창적인 형식의 스릴러로, 감독의 연출력이 유난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감독  요아킴 트리에   


* 이미지 출처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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