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낯설지 않은 누군가의 일상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새 날 2018. 7. 3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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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코는 오사카에 위치한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는 32살의 미혼 여성이다. 시게노부는 도쿄의 건설 회사에서 일하는, 그녀와 동갑인 미혼 남성이다. 두 사람은 업무차 오직 단 한 차례의 만남을 가졌을 뿐이다. 다만 두 사람에게는 결코 우연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공통점이 있었다. '사토'라는 성을 갖고 있었으며, 키도 170센티미터로 똑같았다. 이보다 훨씬 극적으로 다가오는 건 심지어 생일마저 1월 4일로 같다는 사실이었다.


나카코에게는 10년 가까이 사귄 연인이 있었으나 2개월 전에 헤어졌다. 시게노부는 애시당초 솔로다. 두 사람은 업무상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각기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매일 아침 알람에 의지한 채 간신히 눈을 뜨며 러시아워의 만원 통근전철을 타고 회사로 발걸음을 총총 옮기는 나카코의 회사 생활은 언제나 그렇듯 심드렁하기만 하다. 별로 들어주고 싶지 않은 직장 동료의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주면서 맞장구를 쳐주는 일도 이젠 지쳐 말수를 줄이다 보니 인간관계는 더욱 서먹해지기 일쑤다.


거래처 직원의 은근슬쩍 행해지던 갑질은 갈수록 질이 안 좋아지는 데다가 추근거리는 행위까지 더해져 어느덧 나카코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려는 듯싶다. 시게노부는 모 직원의 휴직에 의한 결원으로 도쿄 본사로부터 오사카 지사로 발령을 받게 된다. 솔로의 비애다. 자신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면 오사카로의 발령 따위는 애초 없었을 테니 말이다. 떨떠름했으나 싫은 내색 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오사카로 거처를 옮긴 시게노부, 이곳에서 건물 신축 공사를 맡은 뒤 누군가의 민원에 시달리기 시작하는데...



소설은 나카코와 시게노부 이 두 사람의 시선으로, 우리의 실재 일상처럼 주로 회사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다소 지루하게 여겨질 정도로 차분한 필체로 써내려간다. 나카코에게는 직장 내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운 숙제다. 다양한 연령대 그리고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닌 직원들과 업무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부대껴야 하는 건 늘 부담이다. 그녀보다 12살이 많은 동료는 유독 나카코에게만 날을 세우곤 한다. 이유 없이 딴지를 걸고 시비를 걸어온다. 나카코는 무심코 내뱉은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그 사람을 거스르게 한 적이 있나 돌이켜보지만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나카코가 겪는 어려움은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현실속 직장 내 인간관계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싶기 때문이다. 자신과 모든 면에서 찰떡궁합인 동료가 있는가 하면, 어딘가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동료도 있는 법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카코는 각기 다른 성향의 동료 사이에서 항상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나름의 감각을 익혔으며, 이를 열심히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이어온 지지부진한 연인 관계도 말끔히 정리했다. 긴 세월만큼 서로의 관계를 세련되게 이끌지 못 하고 사랑도 아닌 정도 아닌, 서로를 이해해달라는 응석만 남게 되어 결국 두 달 전 헤어지고 만 것이다. 그와 헤어지니 껌딱지를 떼어내기라도 한 양 속 시원한 데다가 매사에 생기가 넘쳐 흘렀다. 직장 동료, 연인, 그리고 거래처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귀찮은 인간형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쓰는 그녀는 조금씩 직장에 최적화되어가고 있었다.


한편 프리랜서 작가로도 활동 중인 나카코는 유독 카레를 좋아한다. 큰 놈으로 주문하여 이를 먹고 있노라면 행복감에 절로 빠져든다.



시게노부는 도쿄 본사에서 오사카 지사로 내려오게 된 사실이 탐탁지 않았으나 이를 굳이 내색하지는 않는다. 똑같은 조건이라면 아무래도 일찌감치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직원을 배려해주는 게 일반적인 작장 내 분위기이고, 모든 면에서 홀가분하며 자유로운 솔로가 상대적으로 부담없고 만만하기에 내려진 조치일 테니 말이다. 결혼을 아직 안 한, 아니 못 한 게 죄라면 죄일 뿐이다. 이는 현실속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주어진 일에 그저 몰입하는 게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가 맡은 직무에 대해 누군가 적의를 품은 듯 의도치 않게 그의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한다.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작은 민원 하나가 오사카 지사는 물론, 본사에까지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시게노부의 입지를 뒤흔들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에 얽힌 인물의 면면과 시게노부와의 관계, 그리고 시게노부를 향한 이해할 수 없는 묘한 감정 따위는 알고 보면 더욱 기가 막힌 노릇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가 직장에서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시게노부를 알게 모르게 옥죄어온 무기력감은 더욱 증폭되어간다. 발기부전으로 병원을 찾아야 할 만큼 그의 성욕은 바닥을 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식욕만큼은 왕성하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스파게티에 돈가스를 얹어 다양한 소스를 뿌려놓은 '스파까스'를 그는 외면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보통 크기를 주문해서 먹었으나 이내 후회하고 만다. 조금 더 큰 녀석으로 시켜 먹을 것을.. 그 다음에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큰 놈으로 주문해본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그는 행복감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반복되는 지친 일상, 귀에는 습관처럼 이어폰을 꽂고 아침마다 익숙한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출근길 만원 전철에 몸을 던진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부대껴야 하는 다양한 군상들, 일 자체에 치이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보다는 일과 엮인 사람들로 인해 우리는 늘 상처를 받으며 이를 다독이곤 한다. 나카코와 시게노부는 연인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하는 주제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우리처럼 매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이 소설은 누군가의 실재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기라도 한 양 잔잔하게 써내려간 이야기다. 이렇듯 심심하기 짝이 없는 일상 속에서 나카코와 시게노부를 설레게 할 만한 일이 과연 일어나기는 하는 걸까? 권태와 무기력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흑백 사진을 보는 듯 짐짓 무료하기 이를 데 없지만, 흡사 다른 욕구를 대신하기라도 하는 양 한층 강해진 식욕은 신기하게도 원색의 알록달록한 화려한 색감을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어 보인다.



저자  쓰무라 기쿠코

역자  박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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