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비우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조그맣게 살 거야'

새 날 2018. 7. 2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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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전반에 관해 높은 관심을 드러낸 까닭인지 도서관 사서가 내게 도서관 내 최고 등급을 부여해주었다. 한 번에 20권을 한 달 동안 대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은 것이다. 덕분에 이전보다 책을 조금 더 여유 있게 읽을 수 있게 됐다. 내심 기뻤다. 하지만 욕심만 앞섰던 난 7권을 한꺼번에 빌려와서는 무려 한 달이라는 넉넉한 기간 동안 정작 이를 다 읽지도 못 한 채 반납해야 했다. 빌려온 책을 방 한 귀퉁이에 쌓아놓은 뒤 전자책을 기웃거리던 나의 모습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비교적 여유 있는 시간, 다양한 읽을거리가 선사해주는 풍족함은 나로부터 되레 절실함을 앗아간 듯싶었다. '조그맣게 살 거야'의 저자 진민영 씨는 이른바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이러한 경향성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 간파한 까닭인지, 아니면 나와 비슷한 경험 사례가 있었던 까닭인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면 반드시 한 권만을 대출한다고 한다. 그러고선 의도적으로 책을 늘 가까이에 두고 수시로 이를 꺼내 읽을 수 있게 한단다.


뿐만 아니다. 책을 단 한 차례가 아닌 수 차례 반복해서 읽는단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메모도 하고,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자신의 일부처럼 완벽하게 스스로의 것으로 만든다고 한다. 여러 권을 동시다발로 얕게 읽는 것보다 이 방법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하니, 귀가 쏠깃해질 만한 대목이다. 내 앞에 읽을거리가 즐비할 경우 특정 책을 읽다가 조금 지루해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리며 거들떠보다가 결국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읽지 못 하게 되니 조금 더 깊이 있는 독서를 위해서는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저자가 중국의 기숙사에서 비좁은 방 생활을 경험하면서 의도치 않게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게 된 이후 미니멀리즘이 선사해주는 결핍과 불편함이 자신에게는 오히려 가벼움과 자유로 다가옴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미니멀리즘을 생활 속에서 구현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기록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미니멀리즘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간결함과 단순함으로 대변된다.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구현하자는 게 바로 미니멀리즘이며, 몸소 실천에 나선 사람들을 우리는 미니멀리스트라 지칭한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이란 삶에 직접적으로 요구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만 남기고 군더더기들은 모두 없애버리자는 취지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를 글의 문장으로 빗대자면 의미를 전달하는 핵심을 제외한 미사여구 따위는 과감히 삭제해버리자는 것이다.


1년에 단 한 차례라도 입는 옷을 전부 추려놓으면 그 양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로 입던 옷만을 즐겨 입는 경향이 있으므로 사실 수 벌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소 온갖 종류의 다양한 옷을 구입, 이를 쟁여놓은 채 추가 수납공간이 부족하다며 하소연한다. 이에 저자는 반드시 필요한 몇 벌만 남긴 채 이를 과감히 정리하고 옷을 구입할 때는 스스로에게 이 것이 반드시 필요한가, 이 때의 필요란 진짜 필요가 맞는가를 끊임 없이 질문하고 되짚으면서 구입을 최대한 억제토록 한단다. 



이러한 방식은 무조건적인 소비 행태를 예방하기도 하지만, 쓸 데 없는 물건들로 수납공간이 부족해지는 현상 또한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과감히 떠나보내면 정신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빈 공간이 주는 물리적인 자유까지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수납공간이 부족하여 늘 허덕이는 처지에서 수납이라는 개념이 아예 불필요해지는 자유를 얻게 되는 건 누군가에겐 굉장한 이득이 아닐 수 없다. 


소비가 만능인 시대다. 의도적으로 소비를 부추기는 세상이다. 새차는 구입과 동시에 구형 연식이 돼버리고 만다. 광고 매체는 우리가 숨을 쉬는 공간이면 그 곳이 어디가 됐든 파고들어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내가 관심을 갖는 제품군을 귀신 같이 알아낸 뒤 옮겨가는 곳마다 온라인 광고를 통해 특정 제품의 구입을 종용하기 일쑤다.


드라마 등 가장 대중적인 문화 장르에도 광고 코드는 여지 없이 숨겨져 있다. PPL 등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빼앗거나 세뇌시키는 형태의 광고다. 이렇듯 부지불식간에 소비자의 감성을 파고드는 광고가 사실은 가장 무서운 법이다. 숨 돌릴 틈조차 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통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제품임에도 우리는 왠지 이를 구입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이렇게 구입한 제품은 집안 구석구석을 차지하며 어느 순간 수납공간의 부족 현상을 낳는다. 악순환이다.



저자는 소비자에게 소비할 권리가 있듯이 소비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고 설파한다. 맞다. 세상 대부분의 매체들이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이를 미친 듯이 앞세우면서 소비자들을 미혹시키려 든다면 우리는 이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저자처럼 '필요'로 수차례 필터링하여 이를 일일이 걸러내는 수고를 자처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좀 더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풍족을 넘어 어느덧 과잉의 세계로 접어든 모양새다.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의미없는 관계맺기와 통신사의 데이터 강매는 디지털 디톡스가 절실함을 일깨운다.


우리는 영양소의 과잉 섭취와 운동 부족으로 비대해진 신체를 다이어트 과정을 통해 일정 수준으로 되돌려놓듯이 과잉 소비와 정보 과부하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의 생활 패턴 또한 적절한 수준으로 다이어트해야 한다. 신체가 가벼워지면 얼굴이 절로 펴지고 모든 활동에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듯이 본질을 제외한 것들을 비우고 또 비우다 보면 집안 곳곳의 수납공간에도 여유가 생기며 가방은 가벼워지고 옷과 신발은 편해지니 어느덧 과도한 욕심도 전부 내려놓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게 저자가 주장하는 미니멀리즘의 요체다.


물론 저자는 싱글로 판단된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 비해 활동 영역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제약이 덜할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비우고 또 비우면 비로소 삶의 본질이 보인다는, 저자가 경험을 통해 몸소 체득한 소중한 가치는 비단 싱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귀 기울여봄직한 대목이다.



저자  진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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