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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과 조롱, 정치인의 수난에 대한 적절한 해답 '미스 슬로운'

새 날 2018. 5. 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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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정치가 그어놓은 합법적 틀의 경계에서 피 말리는 두뇌 전쟁을 펼치며 정책적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로비스트 미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은 이쪽 업계에서는 최고의 실력자로 통하는 인물이다. 잇따른 총기 난사 사건으로 연일 들썩거리고 있는 미국, 어느 날 국민들로 하여금 무기를 소지할 수 있게 하는 권리를 합법화한 수정 헌법 2조를 기반으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총기가 판매되도록 분위기를 조장하자는 측의 로비 의뢰가 그녀에게 들어온다. 



하지만 그녀의 개인적 신념은 총기 규제 쪽으로 명확하게 기울어져 있던 참이다. 때마침 총기 규제를 주장하는 히튼-해리스법의 통과를 위해 정치권에 로비 활동을 펼치던 슈미트(마크 스트롱)로부터 그녀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고, 슬로운은 자신과 일하던 팀원 일부와 함께 이곳에 새롭게 둥지를 튼다. 총기 규제를 주장하는 측은 자금이나 인맥 등 모든 측면에서 총기 소지를 허용하자는 진영에 비해 절대 열세에 놓인 상황, 그녀는 로비스트라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직무 역량인 뛰어난 통찰력과 노련한 협상 기술, 그리고 빠른 두뇌 회전 등을 모두 동원, 확률 제로에 가까운 로비 전쟁에 본격 뛰어드는데... 



말쑥한 옷차림, 세련된 매너, 상대방을 압도하는 달변, 지성미 넘치는 외모, 빈틈이라고는 있을 것 같지 않은 데다가 절대로 패배를 모르는 그녀에게 있어 굳은 신념이 더해지니 두려움 따위가 존재할 리 만무했다. 정책 방향과 정치적 이념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의 정당이 만들어지고, 정치인들의 활동 또한 그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뤄지듯이 로비스트들은 그 배후에서 가용한 자원을 모두 끌어모아 영향력을 행사, 정치인들을 설득시켜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로비스트는 늘 살인적인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인이다. 그동안 오로지 앞만 바라보며 달콤한 승리를 맛봐왔던 슬로운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루 16시간 이상을 일에 매달리며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깊은 잠에 빠져들 수가 없는 형편이다. 겉으로는 화려한 듯보이지만, 이렇듯 그 이면으로는 약물을 끼고 살아야 할 정도로 사실 많이 고달픈 직업인이 바로 로비스트다. 어디 그뿐이랴.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녀는 개인적인 삶의 경험들을 오롯이 일과 맞바꿔야 했다. 덕분에 지극히 사적인 욕구 해결은 모두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그녀다. 



어떤 시각에서 보자면 일하는 기계처럼 여겨지기까지 하는 그녀의 이 억척스러움의 근원은 과연 무얼까? 슬로운은 지나치게 성과 지향형의 인물이었다. 경쟁에서 도태되는 일은 그녀 스스로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철두철미한 성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무리수가 감행되곤 한다. 어떤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선 정치인들의 표 대결이 이뤄져야 하고, 로비스트들이 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막후에서 실제 로비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이 피 말리는 로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때로는 합법과 불법 사이를 교묘히 넘나드는 일도 다반사다. 



슬로운이 오늘날 정치 로비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성장한 데에는 그녀만의 뛰어난 직무 역량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만약 직무가 온전히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만 이뤄졌다면 결코 실현할 수 없었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슬로운을 스카우트한 슈미트는 그녀와 비슷한 신념을 갖고 있고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일을 진행하고 있으나, 이 지점에서 만큼은 슬로운과 대척점에 놓여 있다. 때로는 불법적인 방식으로 감시와 사찰을 진행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를 수단으로 삼으면서도 눈 하나 꿈쩍 않는 그녀였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가용 자원을 모두 이용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되레 직무 유기로 판단하는 그녀만의 직무 철학 때문이다. 슬로운의 표현처럼 그녀는 로비스트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인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을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불법적인 행위가 자행되고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면서 실적과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 온 것이라면 이는 비난 받아 마땅할 테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로비스트의 불법 행위를 방조하고 조장해 온 건 그들 직무의 주 무대인 정치권이라고 볼 수 있다. 로비스트란 정치권에 기댄 채 살아가는 존재이거늘, 고인 물과 썩은 정치인들 틈바구니에서 이들의 활동은 결국 더욱 혼탁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록 이 영화는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인 총기 규제와 관련한 사안을 다루고 있으나 미국 이상으로 썩은 정치인들이 많은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파장으로 다가온다. 


근래 한 야당 의원이 단식 농성 중 시민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폭행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지탄 받아야 할 행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피해자를 위로하기보다는 오히려 가해자가 자신들이 하고 싶은 행위를 대신해주었다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면서 박수를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야당이 벌이는 작금의 정치적 행위가 대중들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미스 슬로운이 영화속 국회 청문회에서 발언했던 대사 한 꼭지에 그에 대한 해답이 있다. 우리 정치인들, 특히 제1야당 소속 의원들은 이 대사를 반드시 곱씹어보기를 권한다. 폭행과 조롱 등 근래 우리 정치인들이 당하고 있는 수난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 나라는 썩었어요. 양심 있는 의원에게 보상하지 않고 쥐 같은 자들에게 보상하죠. 자기 자리만 보전하면 나라도 팔아먹을 자들에게요"



감독  존 매든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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