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노무현의 책 읽기 그리고 이명박의 책 읽기

새 날 2018. 3. 3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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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블로그라는 공간에 글 하나씩 남기려 노력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글을 쓰는 일도 당사자의 당시 마음속 날씨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크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마음이 왠지 편치 않을 경우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 게 보편적이다. 그래서 그럴까? 글쓰기란 마음을 가다듬는 일이라며 많은 이들이 힘주어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평정심을 잃은 상태에서 억지로 글을 쓰게 되면 그 글엔 보통 마음의 상태가 고스란히 담기기 마련이다. 이불킥을 불러오기 꼭 알맞은 상황이 되곤 한다. 


비단 글쓰기만 그럴까? 읽기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심경이 불편한데 글인들 편하게 읽힐 리 없지 않겠는가.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상황에서 제아무리 글에 집중하려고 해도 활자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머릿속으로 온전히 들어올 리 만무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비치지만, 머릿속은 현재 마음이 정하는 데로 향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활자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품으려면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고 평정심으로 돌아오는 일이 급선무다. 



현재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결과다. 불과 한 세대만에 벌써 두 차례나 이러한 비극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쯤 되면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유달리 굴곡이 심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엿보인다. 한동안, 그러니까 대략 10년 동안, 우리 사회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몰상식이 상식으로 둔갑돼온 경향이 크다. 이를 비로소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일련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구속 수감된 지 어느덧 1년을 맞이하는 '수인번호 503'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일과 시간의 대부분을 독서에 할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주로 만화책을 즐겨 보는 편이며, 무언가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비록 육신은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지만, 적어도 마음만큼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반면 구치소 수감 일주일 째를 맞고 있는 '수인번호 716'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신문도,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현재 마음 상태는 몹시도 불편하고 불안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고, 심지어 작금의 처지를 정치 보복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니 심경인들 편하게 다가올 리 있겠나 싶다. 


ⓒ뉴스1


책을 읽지 못 한다는 이 전 대통령의 하소연을 듣고 있자니, 문득 9년 전 서거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가 떠오른다. 노 대통령께서는 유서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기셨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단 한 줄에 불과한 문장이지만 이 글귀 속에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당시 겪고 있던 고통스러운 심경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래서 안쓰럽고 딱하며 안타깝다. 


이명박 정권 당시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망신주기로 일관, 수사 과정을 연일 부풀려 생중계하며 불법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생 동안 글과 말의 힘을 빌려 세상을 올곧게 바꾸기 위해 노력해온 분이셨기에 이러한 수모 속에서 더 이상 책과 글을 가까이 할 수 없게 된 현실이 그의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게 한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던 듯싶다. 그런데 역사는 정말로 아이러니하다. 노무현 대통령을 수모로 몰고갔던 당사자가 9년이 지나 또 다시 책을 읽지 못하겠노라며 호소하고 나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의 하소연은 노무현 대통령의 그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사안이다. 그의 혐의에서 드러나고 있듯 사적인 욕심으로 공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의 혐의가 대부분 사실이라면 그는 전직 대통령이라 불리기보다 파렴치한으로 불려야 함이 옳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에서 다스 실소유주 의혹에 대해 자신과는 무관하다며 발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횡령과 다스 소송 비용을 재벌에 떠넘긴 혐의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 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정치 보복이라는 그의 표현은 얼토당토 않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개인 비리의 차원은 더더욱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신분일 뿐이다. 죄를 저질렀으면 그에 응당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 자업자득일 뿐, 결코 남 탓할 처지가 될 수 없다. 때문에 신문도,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그의 호소로부터는 일말의 동정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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