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돈과 권력에 의한 갑질, 왜 사라지지 않나

새 날 2017. 11. 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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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라는 직업인은 갈등이 발생, 법적 판단을 구해야 할 때 의뢰인들을 대신하여 법률행위를 하는 이들이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법고시에 합격해야 하거나 이른바 로스쿨 제도라 일컫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 3년 동안 공부한 뒤 변호사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참고로 2018년부터는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로스쿨 제도로 일원화될 예정이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만만치는 않다. 진입장벽이 꽤나 높고, 직무 성격상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기에 변호사라는 직업인이 갖는 사회적 지위나 평판은 일반적으로 매우 훌륭한 편이다. 그들 스스로가 느끼는 직업적 자긍심도 상당하다. 아울러 대중들에게는 '사'자 들어가는 선망의 직업 가운데 대표격으로 각인돼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듯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고, 대중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거나 흠모의 대상이기도 한 변호사가 근래 수난을 당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전도유망한 국내 굴지의 로펌 소속 신입 변호사들이 고작 20대에 불과한 청년에게 빰을 맞고 머리채를 잡히거나 "니들 아버지 뭐하시냐" "나를 주주님이라고 불러라"는 등의 끔찍한 모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청년을 고소하지 않았다. 아니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섰다. 



물론 그럴 만한 사연이 전혀 없지는 않다. 겁도 없이 변호사를 폭행했던 그 청년은 과거 비슷한 전력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즉, 이번에 폭행죄로 고소되어 혐의가 인정될 경우 그는 집행유예 기간 내에 또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른 꼴이 되는 까닭에 현실적으로 실형을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폭행을 행사한 청년은 바로 피해 변호사들이 소속된 로펌의 주요 고객사인 재벌가의 3남이었다. 그러니까 좀 더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폭행 청년은 자신들이 소속된 회사의 주요 돈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그를 실형이라는 구렁텅이에 직접 밀어넣어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고 자칫 돈줄마저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그로부터 당한 이 정도 수위의 수모는 충분히 눈 감아줄 요량이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노컷뉴스


폭행을 당한 당사자가, 그것도 법과 관련한 행위라면 어느 누구보다 일가견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변호사들이, 자신들을 폭행한 '청년 구하기'라는 묘한 작업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셈이 된다. 이러한 결과는 여러모로 씁쓸한 감정이 들게 한다. 폭행을 당한 사람들이 변호사였다는 점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누구보다 법을 잘 알고, 또한 이를 귀신 같이 다루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기에 상식적으로 여타의 직업인들보다 더욱 정확하고 꼼꼼하게 상대에게 응징에 나섰을 것이라 짐작되게 한다. 


그러나 결국 우려하던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장면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그러한 성질의 것인가 보다. 돈 앞에 무릎 꿇는 변호사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광경인가. 우리가 평소 생각해오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그들의 면면 때문에 언뜻 상상이 되지 않거니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결과는 두 종류의 가치를 크게 훼손시킨다. 


우선 대중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인의 명예를 스스로 실추시켰다는 사실은 동일한 직업인으로서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뼈아프게 다가온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뒤 대중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왜 아닐까 싶다. 그 20대 청년은 벌써 세번째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범죄 행위를 저지른 뒤 잘못했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그 부모까지 직접 대중들 앞에서 잘못을 빌었으나 결국 그때뿐이었다. 



부모 잘 만난 덕분에 금수저로 태어나 어려움을 모른 채 기고만장하게 살아온 뒤 그것도 모자라 술에 취해 주폭을 일삼아온 재벌의 갑질 행위에 대해 그에 상응한 응징을 가했으면 하는 바람 가득했던 게 대중들의 솔직한 속내였을 테다. 그러나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직업적 자긍심마저 과감히 내팽개치고 만 변호사들이다. 뺨을 맞고 심지어 머리채를 잡혀도 오로지 고객님의 심사가 뒤틀릴까 봐 전전긍긍해 하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들의 굴욕적인 모습은 도무지 씁쓸해서 상상이 안 된다. 


아울러 이들의 행태가 더욱 안타까운 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진 자의 갑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는 훌륭한 기회마저 잃게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경찰은 이들이 고소를 포기하기로 함에 따라 당장 그의 처벌 가능성을 놓고 요리조리 저울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무방해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으나 처벌 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돈과 권력에 의한 재벌의 갑질, 그것도 주폭 갑질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경각심을 일깨우기는커녕 그 앞에서 법조인마저 초라하게 무릎을 꿇는 끔직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 봐야 하는 대중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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