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죽음의 무게, 학벌주의 부추기는 언론

새 날 2017. 11. 2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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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포항 지진으로 일주일 연기됐던 수능이 치러지는 날이다. 나라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수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날만을 위해 쉼없이, 그리고 오롯이 달려온 수험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바다. 하지만 이와 관련하여 안타까운 소식부터 전해야 할 것 같다. 모 대학 수시 전형에 합격한 뒤 오늘 수능을 치르려던 학생이 얼마 전 화재로 숨졌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이다. 이 세상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냐만, 이러한 소식은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그런데 온라인상에서 해당 기사를 무심코 살피던 난 몹시도 눈에 거슬리는 대목을 발견하고 만다.  


"명문대 수시합격한 수험생.. 수능 앞두고 화재 사고로 숨져" 



수능을 앞둔 고3생의 죽음은 누가 봐도 안타까운 게 사실이다. 자신의 꿈을 채 펼치지도 못한 채 불의의 사고로 그 문턱 앞에서 고꾸라진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기자는 해당 기사 제목을 뽑을 때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낱말을 덧붙였다. 무언가를 의도한 것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무의식 중에 자신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드러낸 결과물로 읽힌다. 해당 기사는 '명문대를 합격한 수험생의 죽음이라 더욱 안타깝다' 라는 취지로 다가온다. 기자의 의도 대로라면 학벌에 따라 사람의 죽음마저 그 무게감이 달라진다는 의미 아닌가.


오늘은 수능일이라 웬만하면 이와 관련한 언급을 자제하고 싶었다. 그러나 기사를 작성한 기자나 이를 보도한 언론사가 사회적 공기라는 막중한 임무를 혹시 망각하기라도 한 게 아닐까 싶어 서둘러 한 마디 거들고자 한다. 수능은 해외에서도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볼 만큼 과열을 빚고 있는, 우리만의 교육적 토대가 만들어낸 독특한 현상이다. 



이의 배경에는 뿌리 깊은 서열화와 학벌주의가 깊숙이 자리한다. 이로 인한 폐해는 온갖 모순 형태로 사회 모든 영역을 통해 발현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수험생의 죽음을 기화로 언론이 되레 이를 부추기고 나선 셈이라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수능을 코앞에 둔 수험생의 죽음 앞에서 이를 안타까워하지 않을 사람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다. 아니 비단 수험생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예기치 않은 죽음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앞에서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기사 제목이나 내용에 명문대를 수시합격했다는, 특히 '명문대'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만약 지방대를 합격한 수험생이었다면 기자가 굳이 '지방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듯이 말이다. 비단 해당 언론사뿐만이 아니다. 대다수의 언론사들이 비슷한 제목과 논조로 기사를 뽑아내고 있었다. 언론의 영혼 없는 이러한 행위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모순을 해결하고자 각계에서 기울이고 있는 사회적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는 꼴이다. 



최근 공기업을 비롯한 많은 기업에서 직원 채용시 블라인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정부 역시 NCS(국가직무능력표준)를 도입하는 등 학벌과 스펙이 아닌 능력 중심 사회로의 도약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의 대주주격인 서열화와 학벌주의 타파에 사회적 공기인 언론이 앞장서기는커녕 되레 이를 부추겨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얼마 전 또 다른 고3생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다름 아닌 산업체 현장실습에 나섰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제주도 모 특성화고 3년생의 죽음이다. 진정 안타깝기 짝이 없다. 두드러지는 학벌사회의 폐해 속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대학 진학에 나서고 있는 상황, 직업계고에 발을 들여놓은 학생들은 일찌감치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이라는 진로를 선택, 우리 사회가 능력 중심 사회로 발걸음을 옮기는 데 있어 일익을 담당해옴은 물론, 일종의 상징적인 역할을 도맡아왔다. 


ⓒ한겨레


때마침 특성화고를 비롯한 직업계고교의 취업률이 고공행진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이 수치가 실질적인 것이 됐든 아니면 지극히 형식에 치우친 부풀려진 것이 됐든, 직업계고의 아이들은 그들의 의도와는 별개로, 바로 우리 사회가 화두로 삼고 있는 능력 중심 사회의 한 가운데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취업률이 높다는 건 우리 사회가 비로소 능력 중심 사회가 되어간다는 하나의 지표로 활용되기에 더 없이 훌륭한 데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 당국이 취업률에 민감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며, 이를 두고 일선 학교 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현상 또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게 한다. 시스템상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현장실습에 나섰다가 사고로 사망에 이른 학생 또한 교육 당국을 비롯한 우리 사회가 등떠밀기한 결과물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들의 죽음을 일각에서 사회적 타살이라 일컫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두 고3생의 죽음은 각기 진로 방향이 양 극단인 터라 전혀 연관성이 없는 듯싶고 무게감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지만, 이를 통해 발현되는 현상은 현재 우리 사회를 모순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학벌주의 그리고 서열화의 그늘로부터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없애는 데 일조해야 할 언론이 되레 해당 현상을 부추기고 나섰다. 참으로 기가 막힌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의 자중을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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