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주폭 갑질에 멍드는 우리 사회

새 날 2017. 11. 2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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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술에 만취한 여중생 두 명이 70대 택시 기사를 마구잡이로 폭행한 사건이 발생,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학생들은 집에 있던 술을 가져와 마셨으며, 사건 당시 술에 너무 취해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택시 기사는 가해자들의 처벌을 원한다고 밝혔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 씨가 법률회사 김앤장의 신입 변호사들 친목 모임에 참석했다가 변호사들을 폭행하고 모욕을 가한 것으로 전해져 물의를 빚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술에 취한 채 변호사들에게 "너희 아버지는 뭐 하시냐", "나를 주주님이라 불러라"는 등의 막말을 퍼부었고, 그를 부축하는 변호사의 뺨을 때리거나 심지어 여성 변호사의 머리채까지 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동선 씨는 논란이 일자 당시 만취한 상태였기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 두 사건은 공통점을 지닌다. 주취 폭력, 즉 ‘주폭’이었다는 사실과 가해자들이 술에 취해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 가해자가 실제로 당시의 상황을 기억 못하는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가 형량 강화 및 특별 단속 등을 통해 주폭에 엄정히 대응하고 있기는 하나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대했던 음주 문화를 바탕으로 심신미약 상태라는 주폭의 방패막이 역할을 톡톡히 해온 경향이 크다.


한화그룹 3남 김동선 씨는 지난 3월에도 술집 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그보다 앞서 지난 2010년에는 호텔 종업원을 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이쯤 되면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발언은 우리 사회의 관대한 음주 문화에 기대어 다시 한 번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뻔한 술수로 읽힌다. 상습적이라 할 만하다. 


ⓒ노컷뉴스


아울러 언론에 알려진 그의 발언이 만취한 상태에서 신입 변호사들에게 표출한 언행이 분명 맞다면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가 평소 지닌 가치관의 일단을 읽어 들일 수 있게 한다. 재벌집 아들인 금수저로 태어난 덕분에 돈이면 못하는 게 없고, 사람 위에 돈이 군림한다는 사고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행태는 그가 소유한 부의 규모와는 달리 전형적인 싸구려가 아닐 수 없다. 


재벌 의뢰인이라는 갑의 지위에서 바라볼 때 이제 갓 들어온 신입 변호사들의 처지는 자신의 갑질 대상으로밖에 안 여겨졌는가 보다. 더구나 꽃으로도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했건만, 어떻게 뺨을 때리고 머리채까지 잡아 흔들 수가 있었던 것인지 그의 패기는 가히 놀랍기까지 하다. 평소 사람의 가치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해왔을까를 생각하면 그의 행태는 곱씹을수록 더욱 괘씸해진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김동선 씨를 검찰에 고발했으며, 폭행을 당한 변호사들은 고소와 관련하여 "아직 논의할 필요가 있어 입장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서는 조폭보다 무서운 존재가 주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된다. 주폭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외국에서도 우리의 음주 문화를 꼬집은 바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얼마 전 “한국인은 아시아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데,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로 붙잡히는 경우가 드물고, 붙잡혔더라도 판사들이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의 형량을 깎아준다.”고 보도한 것이다. 뼈아픈 지적이다.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로부터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와 좋지 않은 음주 문화에 모종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라도 서두에서 언급한 택시 기사 폭행 건과 김동선 씨 사건은 공히 온당한 처벌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구나 김동선 씨 사건의 경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거지곤 하는, 도를 넘은 재벌의 갑질 행태와도 맞물려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가치관을 불식시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그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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