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아날로그조차 디지털로 소비하는 시대

새 날 2017. 10. 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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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 만들어놓은 세상은 빠름과 편리함으로 요약된다. 반면 무한복제가 가능한 까닭에 그와 관련한 소비는 상대적으로 생명력이 짧다. 스마트폰에 의해 무수히 찍어낸 이미지들은 SNS상에서 무한 소비되다가, 보다 자극적이거나 최근의 이미지들에 의해 슬그머니 그 자리를 내주곤 한다.


물리적인 형태가 아닌, 주로 스마트폰 액정이나 모니터 등 전기적 신호 장치에 의해 소비되다 보니 그 특성상 즉흥적이며 찰나적이고, 과소비일 수밖에 없다. 쉽게 생산 가능한 만큼 버려지는 일 또한 무척 간단하다.


근래 흑백 사진과 필름 카메라가 젊은 계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단다. 세상의 변화가 지나치게 빠르고 이를 뒤쫓기가 만만찮은 현실 속에서 비록 느리고 불편하지만, 물리적인 형태로 손 안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하고 아스라한 감성이 젊은 계층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고 있는 모양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놓고 이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진관에 맡긴 뒤 수 일이 지나서야 가능해진다는 사실은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올 법하다. 반면 사진관에 필름을 맡겨놓은 뒤 어떤 형태로 인화되었을까를 궁금해 하며 그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려오던 수많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추억으로 남아 있을 법한 일이다. 현장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고, 이를 즉석에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디지털 세대에게 이처럼 구닥다리 방식이 관심을 끌고 있다는 건 정말로 의아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MBC 방송화면 캡처


더구나 빛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까닭에 색이 살짝 바랜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필름 카메라에 비해 디지털 카메라는 색감도 선명하고 맑기까지 하다. 기술의 발달은 각종 부가 기능을 그에 더하며 바야흐로 디지털 카메라 전성시대를 구가케 하고 있다. 기능으로 보나, 품질로 보나 디지털이 아날로그에 비해 월등한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불편하고 느려 터진 이러한 필름 카메라의 특징들이 요즘 세대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하는, 아마도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 따위가 거꾸로 요즘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러한 인기 덕분에 우리의 기억 속에서 일찌감치 사라진 필름 카메라 제조사인 코닥, 야시카 등이 소환되어 부활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하지만 이들이 관련 시장에서 일정 수준의 지위를 누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비록 필름 카메라 매니아와 덕후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을지언정, 아울러 그들이 관련 소비를 일정 부분 끌어올릴 수 있을지언정, 예전의 영화를 누리기엔 무리인 탓이다.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빠져 산다고 자각하는 현대인들이 제법 많다. 그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어이없게도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거리두기이다. 즉, 디지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 다시 디지털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필름 카메라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며 이를 소비하는 현대인들이 아날로그 방식의 즉석 사진기로 흑백 사진을 뽑아낸 뒤 이를 다시 스마트폰으로 찍어 저장해놓거나 SNS를 통해 소비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날로그 감성을 누리면서도 결과적으로 소비는 또 다시 디지털 형태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는 바야흐로 뼛속까지 디지털일 수밖에 없는, 디지털 만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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