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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주의가 어른거리는 불편한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

새 날 2017. 7. 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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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생명체가 남긴 폐기물을 처리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벌처(마이클 키튼)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 벌어진다. 전 재산을 쏟아부어 사업을 꾸린 데다가 가족이 딸린 다수의 가장을 직원으로 거느리고 있던 그에게,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주축으로 한 조직원들이 일방적으로 들이닥치더니 해당 사업에서 깨끗이 손을 떼라고 통보를 한 것이다. 하루 아침에 길바닥으로 나앉은 벌처는 황망한 마음을 다독이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는데...



한편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서 아이언맨에게 발탁되어 스파이더맨으로서의 눈부신 활약을 펼쳐 보였던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어벤져스의 일원이자 영웅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다. 고등학생 신분인 그는 스타크로부터 선물로 받은 스파이더맨 수트를 꺼내 입은 채 툭하면 영웅놀이를 일삼는다. 하지만 무언가 대단한 족적을 남기고 싶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도둑으로부터 자전거를 지켜주는 일이나 길을 잃은 할머니의 길 안내를 도와주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스타크로부터 하루아침에 쫓겨난 뒤 외계 물질을 이용, 가공할 무기를 만드는 등 점차 괴물로 변모해가던 벌처 일당과 맞닥뜨리게 된 피터 파커, 그는 스파이더맨 수트로 갈아입은 채 벌처 일당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영웅 심리로 똘똘 뭉친 피터 파커만의 '스타크 인턴십' 과정은 온갖 해프닝의 연속이다. 그는 과연 중2병 같은 좌충우돌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영웅인 어벤져스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본격 합류하게 될 스파이더맨의 탄생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벤져스의 다른 영웅들과는 달리 아직 중2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고등학생을 투입시키면서 색다른 형태의 영웅상을 시도한다. 이러한 설정은 앞서 개봉했던 다양한 종류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물과의 차별화를 위한 전략으로도 엿보인다. 



손에서 거미줄을 발사하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시원하게 고공 활강하는 능력은 모든 스파이더맨에게 한결 같이 부여된 기본 필살기이지만, 수다스러움과 부산스러움,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중2병 같기 만한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의 홈커밍 스파이더맨 캐릭터는 여느 스파이더맨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전체적으로 마블 스튜디오 브랜드 영화답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데다가 액션 또한 일품이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과 MCU의 합류 과정 역시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영화적 완성도에는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싶은 작품이다. 하지만 다양한 영웅의 잇따른 합류로 인해 어벤져스의 몸집이 점차 커져가고, 스타크가 만들어가는 세계가 단단해질수록 왠지 그들 주변으로부터 패권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느낌이다.


이번 작품 속에서 천하의 몹쓸 악당 캐릭터는 벌처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악당이 되어가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벌처는 자신의 재산을 몽땅 털어 외계 생명체가 남긴 폐기물 처리 사업에 올인하게 된다. 그가 책임진 식솔들은 단순히 그만의 가족으로 그치지 않는다. 제법 많은 숫자의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어 그들의 가족까지 합칠 경우 벌처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적어도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스타크가 개입된 조직은 벌처의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앗아가고 만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사전에 어떠한 협의도 없었으며, 자신이 해당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치른 대가와 가족들의 생계에 대한 하소연조차 그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소총 등 무기로 중무장한 조직원들을 마구잡이로 풀어 벌처의 사업장을 접수한 채 그냥 빈손으로 나가라며 윽박지르던 그들이다. 억울해하던 벌처가 조직원 중 한 명에게 완력을 행사하자 나머지 조직원들의 총구가 일제히 벌처를 향한다. 강력한 패권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마는 벌처다.



그는 그렇게 일자리를 빼앗겼다. 패권을 앞세운 스타크의 권력은 아무런 사전 사후 대책도 없이 수십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이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강탈한 것이다. 벌처와 그의 가족 그리고 직원들이 받았을 상처와 그로부터 느꼈을 분노가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어림짐작되는 상황이다. 이후 벌처는 "세상이 변했어. 이제 우리도 변해야 해"라며 점차 괴물로 둔갑해가기 시작한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공익 임무를 수행 중 민간인에게 피해를 끼친 행위에 대해 멤버들 사이에서 윤리적인 문제를 고심했던 기억이 있다. 이랬던 그들이 이번 작품 속에서는 공공연하게 패권주의를 앞세운다. 물론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하여 세상을 향해 복수를 꿈꾸는 행위를 두둔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벌처를 최악의 괴물로 변모시킨 데 대해 그들 역시 일말의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패권주의가 벌처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셈이니 말이다. 이 영화 혹시 나만 불편한 걸까? 



감독  존 왓츠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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