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핀란드 기본소득제 시행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새 날 2017. 1. 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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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외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북유럽의 대표 복지국가인 핀란드의 기본소득제 시행 소식이 단연 돋보인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핀란드가 지난 1일부터 기본소득제를 시범 실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실업 수당을 받는 이들 중 무작위로 선발한 2000명에게 기본소득 월 560유로(약 70만원)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시행된다. 핀란드 정부는 2년 동안 이와 같은 기본소득을 시범 지급해본 뒤 이를 국가 정책화하여 확대하겠노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기본소득제란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빈곤선 이상의 일정액을 지급하는 새로운 분배체계를 일컫는다. 재산이나 소득의 유무,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관계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핀란드가 이와 같은 실험에 나선 이유는 최근 실업률이 8%를 넘어섰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복지 체계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핀란드에서는 이에 의존한 채 저임금 일자리나 임시직을 기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해당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보다 많은 국민들이 경제 활동에 나설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핀란드가 실시하는 기본소득제에 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걸까?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그야말로 종합병동이라 불릴 만큼 심각하기 그지없다.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내수침체 극복을 위한 대안이 절실하고, 인구절벽과 기술진보에 따른 일자리 부족 문제, 사회안전망 취약 등이 최근 화두로 떠오른다. 이런 가운데 일찌감치 기본소득제가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 부각되면서 정치권에 기본소득제 도입 논의가 불붙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조기 대선이 점쳐지면서 일부 대선주자들 역시 앞다퉈 기본소득제의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이는 외견상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차이에 의한 결과물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욱 근원적인 부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인간이란 존재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며 아울러 어떠한 관점과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른 근본적인 차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우선 기본소득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진영에서는 인간이란 존재를 끊임없이 가치 실현을 추구하는 굉장히 건강하고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매슬로가 주장하는 것처럼 낮은 단계의 기본 욕구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욕구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타고 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노동과 자아실현의 욕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먹고사니즘이라는 생리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라는 관점이다. 

반면, 해당 제도를 반대하는 진영은 인간을 노동 등의 대가 없이 금전적인 혜택을 주게 될 경우 누구나 게을러지기 마련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이는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 라는 발언으로 국민들의 원성을 자초하면서 과거 구설에 올랐던, 이번에 새누리당을 탈당한 뒤 '개혁보수신당'이라는 정당에 새롭게 둥지를 튼 김무성 의원의 발언처럼 사람들에게 노동 없이 돈을 주면 결과적으로 도덕적 해이에 빠져 구직 욕구를 북돋지 못할 것이라 단언한다.  

ⓒ중앙일보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이긴 하나 이는 마치 최저임금 인상과 실업률 증가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느냐 없느냐 따위의 해묵은 논쟁과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인상할 경우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률이 증가한다고 하지만, 세계은행이 내놓은 보고서와 미국 버클리 대학,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진들이 연구한 사례에 따르면 실제로는 그 둘 사이엔 상관관계가 전혀 없노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미국과 일본, 영국, 독일 등의 국가가 앞다퉈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는 배경에는 적절한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를 위축시키거나 일자리를 줄이는 게 아닌, 되레 경제적 약자를 배려하는 결과가 될 수 있고 동시에 빈부격차를 해소하여 소비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기본소득제 역시 같은 맥락으로 바라볼 경우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물론 이 제도는 아직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이의 실제 도입까지는 재원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상위 10% 소득 계층이 전체 소득의 거의 50%를 가져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 국가다. 공식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 수준이 높은 국가로 알려져 있다. 해당 제도의 도입으로 이러한 불평등 구조와 사회적 양극화 문제가 아주 조금은 완화될 수 있고, 아울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비록 미약하나마 해결의 단초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를 마다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우리가 핀란드 기본소득제 시행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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