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새해 소망, 1000만 개의 촛불과 세월호 1000일

새 날 2017. 1. 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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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마지막 날, 광장엔 다시 촛불이 타올랐다. 매 주말마다 이곳 광장에서 진행된 촛불집회는 어느덧 10회차에 이르고 있으며, 이날을 기점으로 주최측 추산 연 인원 1천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시민들이 위임해준 권력을 오롯이 사익 추구의 도구로 오남용해온 세력들에게 철퇴를 가하고, 비정상과 몰상식으로 점철된 사회를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곳으로 되돌려 놓자는 게 바로 촛불을 든 시민들의 한결 같은 염원일 테다. 


'이게 나라냐'란 분노가 담긴 단순한 구호로부터 시작된 촛불 집회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시민들의 성숙함이 더욱 빛을 발하는 형태를 띠어갔다. 어느덧 광장은 집회의 현장이라기보다 축제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직접 나선 시민이나 이를 멀찍이서 바라보던 또 다른 시민들 모두가 한결 같이 놀란 기색임이 역력하다. 이는 모두에게 경이로운 경험이자 더없이 소중한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프레시안


2014년 4월 16일은 세월호가 저 차디찬 바닷속으로 속절없이 가라앉은 그날이다. 우리에게 노란색으로 각인된 세월호는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 국정을 농단하며 오만과 불통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세력을 상징하는 상징물이자 매개 역할을 톡톡히한다. 2017년 정유년 새해가 밝았지만 안타깝게도 세월호를 둘러싼 진실은 아직까지 뚜렷하게 밝혀진 바 없다. 이러한 점만으로도 세월호의 진실은 사실상 현 집권세력의 몸통에 한층 근접해있노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다. 권력 놀음을 통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던 세력과 실타래처럼 얽힌 이해관계가 파헤쳐지지 않는 이상 세월호의 진실은 바닷속에 있는 선체가 인양되고 있지 않듯 여전히 밝힐 수 없는 성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10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2016년의 마지막날, 광장 한쪽에는 특이한 식당 하나가 차려졌다. 세월호 유가족이 연말연시를 맞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쓴 시민들에게 작은 정성을 나누자는 취지에서 이른바 '심야식당'을 연 것이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 뜻깊은 행사에 동참했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색 카레덮밥 4160그릇을 나눠주며 감사의 뜻을 전하고, 세월호를 오랫동안 기억해줄 것을 당부했다.

ⓒ세계일보

그런데 너무도 맛있어 보이는 이 노란 덮밥을 아무리 허기져도 난 왠지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목메어 밥알들이 과연 온전하게 식도를 타고 넘어갈 수 있을까? 세월호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아직까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상황이기에, 세월호에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가 광장에 설치된 무대에 올라 눈물을 애써 눌러 참으며 연설하는 모습, 아울러 유가족들이 304개의 구명조끼를 입은 채 촛불 대열의 선두에 서서 행진하는 그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눈물을 글썽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시민들을 위해 이렇게 몸소 노란 밥을 만들어 퍼주고 있으니 이 귀하디 귀한 밥이 어디 식도인들 온전하게 넘어갈 수 있겠는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시민들이 얻은 성과라면 과연 무얼 떠올릴 수 있을까? 목숨이 경각에 달하여 점차 희미해져가던 민주주의의 생명을 되살려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사실? 물론 이도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제 그 첫 발자욱을 뗐을 뿐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험난한 데다가 그 수도 많기에 쉽사리 샴페인을 터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대 진영의 움직임도 세몰이를 과시하는 등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다. 

ⓒ프레시안

다만, 난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치 효능감'을 맛보았다는 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즉, 그동안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까닭에 대다수의 시민들이 정치를 외면해왔는데, 불의한 세력의 어이없는 망동에 분노하며 촛불을 들고 정치에 직접 참여하여 우리 스스로가 의도한 바를 관철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는 사실이 가장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프레시안

향후 정치 일정은 급박하게 돌아갈 전망이다.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 따른 조기 대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진다. 2017년 새해를 열면서 내가 바라는 바는 정확히 두 가지다. 바로 우리가 몸소 경험했던 정치 효능감을 대통령선거 등 앞으로의 정치 일정을 통해 충분히 발휘, 의도한 바를 달성하자는 것이 그 첫번째다. 아울러 1월 9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지 벌써 1천 일이 된다. 참사 후 지금껏 295명의 시신이 수습됐으며 아직 9명은 여전히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잠겨 있다. 세월호 선체의 인양과 남은 그 9명 전원을 수습하고, 진실도 함께 인양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다름아닌 그 두번째다. 

정치 효능감을 한껏 발휘,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민들 스스로가 만천하에 증명해 보이고,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한 발자욱 다가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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