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이방인의 시선에 비친 한국식 교육

새 날 2016. 12. 2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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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 매체인 BBC가 영국 학생의 눈을 통해 우리의 교육 현장을 분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웨일스 지방의 학생들이 우리식 교육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인데요. 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성적을 유지하는 우리 학생들의 공부 비법을 몹시 궁금해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하루 일과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의 교육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습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에서 우리 학생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하루 일과를 몸소 체험해 본 이들은 우선 이른 등교시간부터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놀라기엔 아직 이릅니다. 정규수업을 마친 뒤 곧바로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야간 자율 학습 등의 강행군이 이들을 반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서와~ 한국식 교육은 처음이지?


ⓒ중앙일보


뿐만 아닙니다. 엄청난 학습량에 걸맞는, 한국 학생들의 뛰어난 실력에도 넋이 나간 표정임이 역력합니다. 영국 수학 시험지를 한국 학생들에게 주자, 영국 학생들은 60분이 걸려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이들은 단 15분 만에 풀어내는 발군의 실력을 드러낸 것입니다. 수학 문제를 다 풀고 나서 어렵게 느껴졌던 사람에게 손을 들라 했는데, 영국 학생 자신만 손을 들었다며 한국 학생들의 뛰어난 수학 실력이 부럽다는 반응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영국 학생들은 우리만의 교육 방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3명 중 유일한 여학생이었던 사라는 일찌감치 한국식 교육 체험을 중도 포기 선언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는 게 포기를 하며 내뱉은 그녀의 일성이었습니다. 아침 이른 시각부터 밤 늦은 시각까지 학교에서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고 있어야 하는 판국이니 그녀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살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방과 후 자습을 위해 지역 도서관을 찾았다는 이완 군은 늦은 시각임에도 열람실에 들어가려면 줄을 서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랍니다. "도서관에서 조용하게 각자 공부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보여요. 10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앳된 아이도 공부하고 있네요. 한국인의 학구열이 인상깊습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선생님을 빼고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게 놀랍더군요. 굉장히 이상해 보였어요" 아울러 또 다른 학생인 토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을 단편적으로 알려주고, 암기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배운다는 게 꼭 그걸 이해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이방인들의 눈에 가감 없이 드러난 우리 교육의 민낯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의외의 결과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데요. 최근 발표된 PISA에서 한국은 역대 가장 낮은 순위의 성적표를 받아든 것입니다. OECD가 발표한 ‘PISA 2015’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전체 참여국 70개국 중 읽기 4∼9위, 수학 6∼9위, 과학 9∼14위에 오른 것입니다. 3년 주기로 시행되는 해당 평가는 앞선 2012년의 그것과 비교하여 전 영역에서 순위가 하락한 것이고, PISA가 처음 시작된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의 성적표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의견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한국의 중3, 고1 학생들의 학력이 실제로 심각한 수준이 아니냐는 우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입시 제도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중학교 내신 성적을 산출할 때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가 적용되면서 중학교 시험이 쉬워졌고, 대학 입시에서도 수학이나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평균적인 학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입니다. 성적에 올인하는 우리만의 교육 풍토로 볼 때 또 다시 입시제도 변화의 빌미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노파심이 들게 하는 대목입니다.

반면 10년 전에는 주어진 시간에 문제를 얼마나 잘 푸는가를 가르쳤지만, 지금은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교육이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바람직한 결과라는 의견도 일부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유럽이나 미국 등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내는 국가들의 PISA 순위가 높지 않다는 점을 그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열주의를 기반으로 한 기본 입시체제가 굳건하고 근간이 뒤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지엽적인 제도의 변화만으로 과연 우리 교육의 전반적인 틀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동안 교육 주체들은 수없이 바뀌어 온 제도로 인해 본의 아니게 실험실의 생쥐로 전락하곤 했는데요. 우리 아이들의 성적이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정작 기본 과학 분야에서 매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현실은 어떤 방식으로 설명이 될는지요? 


한편 이번 체험을 주도한 매체는 우리의 교육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기러기아빠'와 '수능기원 3000배'와 같은 한국적 상황과 학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을 이들은 조금은 기이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싶었습니다. 물론 압도적으로 많은 학습 시간이 우수한 성적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러한 높은 교육열이 오늘날의 경제 발전을 이룬 원동력이라는 사실 역시 우리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측면이기도 하고요.


ⓒ중앙일보


그러나 이들은 그 이면의 폐해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높은 청소년 자살률과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각종 사회 문제 양산을 지적한 것인데요. 아울러 이들은 우리 학생들의 성적이 최상위권이면서도 공부에 대한 흥미는 바닥을 헤매고 있는 사실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PISA 70개 대상 국가 중 우리 학생들의 공부 흥미도는 61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정작 이러한 부분에 더욱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직장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압박을 가하는 실적 지상 주의의 상사와 반면 실적을 직원들의 자율 방식에 맡기는 관대한 상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단기적인 성과로 볼 땐 전자의 경우가 월등하지만 장기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후자가 오히려 더 높은 성과를 낸다는 통계 결과가 있습니다. 이는 아이들의 학습에도 일부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는 우리와 같은 주입식, 그리고 양적 위주의 교육보다는 질적 위주의 다양한 활동과 주변 사람들과의 사교적인 시간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의 현재 교육 방식으로는 단순히 제도만 바뀐다고 하여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단방향 체제로만 이뤄져 있고, 학교를 졸업한 뒤엔 남들보다 더 좋은 일자리,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치열한 서열주의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서열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아이들의 미래 모습은 오늘날 기성세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방인의 시선에 비친 우리 아이들의 삶은 과도한 성과에 짓눌린 듯, 무척 고단하고 힘이 드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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