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새 날 2016. 12.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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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가결됐다. 이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역대급 사건이자, 우리 사회에 싹트기 시작한 변혁이 이제 막 초입 단계에 들어섰노라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어떤 방식으로 결말을 맺든, 아울러 이를 원하든 원치 않든 관계 없이 대한민국호는 커다란 변화의 조류에 휩쓸리게 됐다. 이와 관련한 수치도 우연 치고는 정말로 절묘하다. 불참 1, 찬성 234, 반대 56, 무효 7로, 1에서 7까지 쭉 나열된 숫자 배치를 이루고 있는 탓이다.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꼭 알맞다. 


오늘날의 결과는 누가 뭐라 해도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명제가 오롯이 반영된 촛불의 승리임을 부인할 수 없다. JTBC 단독보도로부터 촉발된 비선 실세 게이트는 한 달을 훌쩍 넘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시민들을 광장으로 광장으로 끌어 모았다. 광장을 가득 메운 수십만 개의 촛불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의 무리수가 더해질수록, 그 수를 불려나갔다. 


ⓒ연합뉴스


시민들의 준엄한 의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정치권에 가한 호된 비난 역시 예의 촛불이었다.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던 민심과는 달리 정파적 이익이나 정치 공학적 셈법을 앞세운 듯한 정치권을 향해 수백만 개의 촛불을 밝힌 채 일제히 경고에 나선 위대한 시민들이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 구도라고는 하지만 산술적으로 가늠해 볼 때 불가능에 가깝던 탄핵은 촛불 민심이 활활 타오르면서 점차 그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한다. 안하무인격에 가깝던 정치권이 촛불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추상과도 같은 굳건한 의지와 염원 그리고 이를 받든 정치권과의 합작이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셈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은 속내를 살펴보자면,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민들 스스로가 이뤄낸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일까?


지난 1월 1일, 2016년 병신해의 새해가 막 시작되던 벽두에 난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남긴 기억이 있다. 새해소망, 정치 참여로 삶의 토대를 바꾸자


'혼용무도'로 대변되던 혼란스러운 백척간두의 시기,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다며 하소연하고 한탄하면서도 정작 이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정치에 대한 관심과 이의 참여를 등한시해 온 그동안의 악습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한 표 행사, 올곧은 정치 참여로 팍팍한 삶의 토대를 깡그리 바꿔보자 라는 간곡한 호소가 담긴 내용의 글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글에 화답하는, 물론 진짜로 그랬을 리는 만무하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4월 13일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시민들은 여소야대라는, 오늘날 탄핵 소추안 가결의 마중물이자 디딤돌로 작용했음직한 극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더욱 고무적이었던 건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에서 청년 계층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는 대목이다. 20대의 76%, 30대의 79.5%, 40대의 72.9%가 집권 여당이 아닌 야당에 표를 던졌다. 20대 총선 승리의 일등공신은 사실상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하다며 여타의 세대로부터 호되게 꾸중을 듣던 청년 계층이었던 셈이다. 



탄핵 소추안 가결의 서막은 바로 이러한 극적인 20대 총선 결과가 그 시발점이었다. 유권자들은 소중한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여 자신들의 정치 행위를 대신해 줄 대표 인물을 선택했다. 그 결과 여소야대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이는 시민들의 바람을 대의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요식 행위를 통해 반영시킨 결과물이었다. 


이명박으로부터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근 10년 동안 서민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장탄식을 늘어놓아야 하는 딱한 처지로 내몰렸다. 20대 총선 결과는 이러한 고통이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악순환으로 다가오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간절히 변화를 바라던 유권자들의 표심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단언컨대 탄핵의 씨앗은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발아됐다. 


20대 국회마저 앞서의 그것처럼 여대야소의 구도가 된 채 패배주의에 사로잡히고 말았다면, 촛불 민심이 지금처럼 들끓으며 제아무리 비등했다 한들 탄핵 가결의 결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을 테다. 집권 세력의 공작 정치에 휘둘리며 민심은 금방 방향을 선회, 사그러들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소야대 구도라고 해도 여와 야의 비율이 한쪽으로 뚜렷하게 기울어진, 완전히 유리한 판세가 아니고서야 마찬가지로 탄핵으로 귀결되기란 결코 쉽지 않은 노릇이다. 비선 실세 게이트가 처음 불거졌을 당시 야당 의원들 대부분이 탄핵을 주저했던 건 다름아닌 이로부터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 소추안이 가결될 수 있었던 배경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곁에서 늘 우군 역할을 자처하던 촛불 민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을 벌일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 놓은 주체가 20대 국회의 여소야대 구도였다면, 이 판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인자는 다름아닌 촛불의 힘이었던 셈이다. 물론 20대 국회를 오늘날과 같이 아주 이쁜 구도로 만들어 놓은 것도 결국 시민들의 몫이었지만 말이다.


ⓒ연합뉴스


촛불은 대의 민주주의가 향하고 있는 방향성에 대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이 있기까지 20대 총선 결과가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고 있듯 대의 민주주의가 그의 근간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의 가결은 대의 민주주의의 간접 민주정치와 촛불이라는 직접 민주정치의 협업이 일궈낸 한 편의 멋진 앙상블이었던 셈이다. 


지난 정권 10년 동안 이들의 폭정에 고통을 겪으면서 패배주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 대열에 합류, 마침내 삶의 토대를 스스로 바꾸는 기적을 일궈냈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직접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출했던 시민들은 평생동안 좀처럼 누리기 힘든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변화는 이제부터다. 변곡점에 선 한국 사회가 그 방향성을 올바르게 잡아갈 수 있도록 촛불은 초심을 잃지 않은 채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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