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아이들의 순수한 동기를 폄하하지 말라

새 날 2016. 11. 1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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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온통 심상치가 않다. 올해 중학교 1년생인 'Y'양은 매사에 적극적이며 호기심이 왕성한 데다가 가치관이나 주관도 뚜렷하여 자기 주장이 누구보다 두드러진 아이이다. 이 아이가 요즘 뿔이 단단히 났다. 다름아닌 최근의 시국 때문이다. 이 아이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현실은 교과서 안에서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배웠건만, 아울러 열심히 노력하면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사회라고 하더니만,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권력층과 그 뒤에서 이들을 배후 조종해 온 실세가 국정을 흡사 자신들의 것인 양 농락해 왔으며, 지극히 공정하고 객관적인 경쟁이 근간이 되어야 할 상급학교 입시에서는 이른바 금수저라 불리는 특권층이 부정한 방법으로 온갖 특혜를 누리는 등 상대적인 박탈감을 부풀려 왔다. 


ⓒ세계일보


이 아이가 더욱 괘씸하게 여겼던 건 우리 사회를 이렇듯 비정상적인 환경으로 둔갑시켜 놓은 장본인이 지난 4년간 마치 현재의 상황이 정상인 양 떠벌려 왔던 사실과,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원칙 및 신뢰라는 거짓말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이냐며 내게 반문해 오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부끄럽고 참담하여 차마 닫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는 굳게 믿었던 사실들이 모두 거짓으로 변모해 가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호소해 오며 무척 당황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사회가 이렇게 되기까지 어른들은 도대체 무얼 한 것이냐고 물어올 땐 창피하여 도저히 얼굴을 들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부조리한 현실을 어떻게 하면 올곧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아이는 자꾸만 내게 물어온다. 아이는 우선 작은 일부터 실천에 옮기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12일에 개최되는 촛불 집회에 친구들과 함께 참석하기로 하였단다. 비록 'Y'라는 아이 한 사례만을 언급했지만,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말도 안 되는 사회 현실을 눈앞에서 직접 목도하며 이에 분노하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며칠 전 막내 아들 녀석이 넌지시 내게 한 마디 던진다. 


"저희 학교에서 시국선언 한대요" 



당시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녀석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시국선언 한다더니, 그래 했냐?" 


"네, 오늘 했어요. 참여한 아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는데, 전 참여했어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번 사안도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난 막내 녀석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는 순전히 녀석의 가치관에 해당하는 사안이기에 어떠한 판단과 결정을 하든 난 녀석을 존중해 줄 생각이다. 때문에 겉으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내심 흡족했다. 


이렇듯 청소년들마저 국가를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다. 이는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가 하는 사실을 피부에 와닿게 하는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12일 집회는 다름아닌 이러한 분노가 한 곳으로 응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Y'도 그렇고 내 주변에 위치한 학교들도 그렇고, 청소년들은 누가 지시하거나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자발적으로 현 시국에 대해 스스로의 의견과 생각을 다양한 양태로 표출하고 있었다. 


적극적인 집회 참여 역시 그 중 한 갈래다. 아이들은 집회를 통해 교과서 속에서 배운 국민의 기본권적 권리를 몸소 행사해 볼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누리게 된다. 이의 참여를 통해 자신들이 진정한 국가의 주인이자 권력의 주체라는 사실을 직접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생생한 교육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집회에 청소년을 동원한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선동에 나섰다. 



특정 세력이, 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른바 종북 세력이, 배후에서 아이들의 집회 참가를 종용하며 강제로 동원시키고 있다는 일종의 루머를 확산시키며 이번 집회를 또 다시 색깔 프레임에 가두려는 속내를 비친 것이다. 비선 실세 국정농단 사태의 공범인 새누리당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걸로 봐선 모처로부터 지령이 떨어진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 박명재 사무총장은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광화문 촛불집회에 야당과 일부 단체들이 차량을 이용해서 학생들을 실어 나르며 집회에 참여토록 한다고 한다. 교육부 등 관계당국에서 위법성 여부가 없는지 살펴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세계일보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얼토당토 않다. 아이들의 순수한 판단과 결정을 불온한 의도로 더럽혀선 안 된다. 앞서 예로 들었듯 아이들은 부조리한 세상을 만든 이들을, 그러니까 색깔 프레임에 가두려는 속내를 드러낸 모 신문사와 작금의 비정상적인 사회를 만들어놓은 주범 새누리당 등이 그에 해당될 듯싶다, 성토하고 올바른 세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과 분노에 이끌려 자발적인 참여를 결정한 것이지 누군가의 지령이나 지시에 의한 움직임이 결코 아니다. 


이렇듯 아이들의 순수한 동기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대한민국을 온통 부조리와 부정으로 물들여 놓은 현 집권세력이 민의가 한꺼번에 폭발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이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 조건반사적 결과물일 뿐이다. 흡사 스크린 위에서나 볼 법한 무법, 탈법이 판을 치고, 사적 권력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목도한 청소년들의 절망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테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현재의 부조리를 타파, 민주주의를 다시 올곧게 세우기 위해 스스로의 의지를 발현시켜 나가고 있는 셈이다. 


난 대한민국을 변모시키기 위한 아이들의 열망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이를 적극 응원한다. 아울러 오늘 집회에서 'Y'와 만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아주 조심스레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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