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도심 뒤덮은 촛불 민심, 어디로 향하나

새 날 2016. 11. 6.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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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서울 도심은 또 다시 촛불을 든 대규모의 인파로 뒤덮였다.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규탄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만들어낸 진풍경이다. 전날 있었던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사과의 핵심이 되어야 할 책임 인정과 의혹 해소가 여전히 미흡했던 까닭에 민심을 되돌리기는커녕 되레 분노의 불씨만 더욱 지핀 꼴이 되고 말았다. 


화가 난 민심은 다양한 양태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하고 나섰다. 연령이나 계층의 구분도 딱히 없다. 광화문 일대는 중학생 등 청소년들을 비롯하여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아울러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집을 나선 가족 단위의 시민들까지 합세, 모두들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일대는 발 디딜 공간조차 부족했다. 이번 집회는 시위라기보다 흡사 축제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이에 참여한 시민들의 행동과 표정은 밝고 경쾌했다. 


ⓒ한국일보


일각에서 우려했던 폭력시위는 결국 기우에 그쳤다. 그 어느 때보다 시위 인파가 많이 몰렸으나 그에 비례하여 시민의식이 잘 발휘된 덕분이다. 그렇다면 이 추운 계절에, 더구나 나른한 주말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만끽해야 할 시민들은 왜 대거 도심으로 쏟아져 나온 걸까? 이들은 도대체 무얼 바라고 같은 시각에, 그것도 한 자리에 모여 구호를 외치거나 행진에 나선 걸까? 


시민들은 어처구니없으며 믿을 수 없는 작금의 현실에 모두들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가뜩이나 장기 경기 침체의 늪에 빠져 시름이 깊어가는 터라 여러모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판국에 불거진 이번 사단은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변화된 민심은 최근 한 여론기관이 발표한 결과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 지지도가 고작 5%라는, 헌정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서울 등 수도권은 2%를, 호남지역에서는 0%를 기록하는 놀라운 결과다. 


ⓒ연합뉴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라 했거늘, 이 같은 결과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민심이 완전히 떠났음을 상징한다. 이 정도의 수치라면 더 이상의 자가 수습은 절대로 불가능하며, 어떤 대안을 내놓더라도 해법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국민을 기만하고 국정을 파탄낸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퇴진 요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행사하여 국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현 상황을 국가의 주인이자 권력의 주인인 국민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으로부터는 희망을 바랄 수가 없다.


ⓒ중앙일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이를 받아들이기보다 여전히 국정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지극히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지 않은 것으로 읽힌다. 엄중한 사안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통해 수차례 울먹이며 감정적인 접근을 시도했던 측면은 외려 국민들의 화를 더욱 돋운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지난 4년 간의 집권 기간 동안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미심쩍은 일들을 곁에서 쭉 지켜보면서 대한민국호가 점차 나락으로 떨어지는 안타까운 현상을 몸소 경험해야 했다. 


현재의 권력이 그려 놓은 대한민국 사회의 면면은 이른바 '헬조선'이라는 용어 하나로 모두 대변된다. 이 단순하기 짝이없는 신조어 하나에 사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각종 부조리한 현상과 모순들이 한꺼번에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권력을 사유화한 채 폭주를 거듭하고 있는 사이 이땅의 젊은이들은 먹고사니즘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욕구를 해소하지 못해 분루를 삼키고 있다. 반면 이른바 금수저들은 온갖 특권과 혜택을 누리며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부풀리고 있는 양상이다. 


ⓒ연합뉴스


통일대박을 외치더니 하루아침에 개성공단을 폐쇄, 이후 통일쪽박을 향해 폭주하며 양 극단으로 치닫던 황당한 모습, 아울러 세계사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교과서 국정화라는 역주행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은커녕 오히려 이를 방해하고, 말도 되지 않는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로 국가와 국민의 자존감을 완전히 바닥으로 내친 독단적인 결정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정도다. 어디 그뿐인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통한 불법 자금 모금에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정황은 한국 사회를 적어도 수십년의 과거 모습으로 되돌려놓은, 무척이나 파렴치한 범죄 행위에 다름아니다. 국가의 기강은 이들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국민 모두가 참담한 심경을 토로하거나 우울감을 호소해야 할 판국이다. 


이렇듯 위기감이 고조돼가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또 다시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새누리당, 이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엉망투성이로 점철된 대한민국 사회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되돌려놓기를 희망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게 다름아닌 촛불이다. 불법적이며 몰상식하고 지극히 비정상적이며 비합리적인 현상과 수상한 기운들을 모두 몰아내고, 후손들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은 국가와 사회를 물려주고 싶은 한결 같은 마음이 바로 촛불 민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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