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그리운 날엔

김완선, 그녀는 왜 시대를 앞선 가수인가

새 날 2016. 9. 2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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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중 미디어 전반을 아우르는 대표 코드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당연히 '아재'를 들게 된다. 아무래도 아재급 연령대에 해당하는 연예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한창 주가를 올리다 보니 인터넷 등에서 공감되고 있는 아재 감성 따위의 B급 코드와 맞물리며 어느새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까지 자리잡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요즘 이 아재 코드와 함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가수가 있어 화제다. 아재 감별 테스트의 흔한 대상으로 오르내리곤 하는 가수다. 즉, 이 가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면 아재이고, 모르면 아재가 아니다 라는 식이다. 


김완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일견 이해가 된다. 그녀의 나이, 우리식으로 따지자면 1969년생으로 올해 벌써 48세다. 곧 지천명을 바라본다. 그녀가 1986년에 데뷔하여 9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니, 30대 중반 이전의 연령대에 해당하는 이들에게는 낯 설게 다가올 법도 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연령대 즉, 소위 아재라 불릴 만한 연령층에게 있어 그녀는 당연히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가요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유행 코드인 본격 댄스곡 열풍의 효시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OSEN


그녀가 데뷔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암울함 일색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변화의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발아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압이 거의 절정에 달해가던 즈음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대학 캠퍼스 안에는 중무장한 경잘들이 상주해 있었고, 학교에 출입하는 학생들의 소지품을 일일이 검문하는 일 따위가 아주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도심은 늘 최루가스 냄새로 가득했다. 폭정이 지속되자 대중들의 인내심은 임계치에 이르게 되고, 87년 6월항쟁을 거쳐 마침내 민주화라는 달콤한 결실을 맺게 된다. 그러나 피의 대가로 어렵사리 쟁취한 최초의 대통령 직선제는, 변화를 갈망하며 무수히 흘렸던 젊은이들의 땀과 눈물을 고스란히 노태우에게 헌납하는 결과를 빚고 만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대중가요 인기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른바 운동가요라 불리는, 주로 대학가 운동권에서 유행하던 민중가요가 대중 속으로 스며든 채 공중파 방송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까지 그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사계' 그리고 '광야'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반면 가장 대중적인 가요의 소재는 여전히 온통 사랑타령이었다. 덕분에 발라드 가수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혜성과 같이 등장한 17세 소녀 김완선은 어쩌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에 비견될 만큼 혁신 그 자체였다. 흡사 87년 사회의 변혁을 바랐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몸짓이 고스란히 가요계로 옮겨간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아재라 불리게 될 당시의 젊은이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대중들의 눈과 귀는 일순간 한 곳으로 쏠리고, 그녀의 활약을 조용히, 아니 열정적으로 지켜보게 된다. 왜 아니겠는가? 정치사회적으로는 온통 잿빛 천지인 데다가 이러한 분위기가 가요계에까지 영향을 주어 조용한 사랑타령만이 대중들의 청신경을 자극하고 있던 상황인데, 느닷없는 댄스곡이라니..



그녀의 튀는 외모와 출중한 춤솜씨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된다. 아직 10대에 불과했던 한 소녀의 현란한 춤사위에 매료된 대중들은 기꺼이 '한국의 마돈나'란 별칭을 그녀에게 붙여 준다. 당시엔 영 낯 설기 만 했던 댄스가수라는 정체성, 그 때문일까? 대중들은 청각적인 자극보다 시각적인 자극에 더욱 쉽게 매료되어갔다. 아니 아직 오감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콘텐츠에 익숙치 않은 탓이었는지 특정 방향, 즉 보다 더 자극적인 쪽으로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녀에게 비주얼적인 측면이 워낙 강조되다 보니 가수에게 있어 기본 덕목이 되어야 할 가창력이나 노래 솜씨는 왠지 뒷전으로 밀리는 듯했다. TV 등 대중매체에서는 사전에 녹음된 음악을 틀어놓은 채 댄스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며 입으로는 흉내를 내는, 이른바 립싱크 방식의 공연이 주를 이루게 된다. 댄스 실력이 워낙 탁월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창력이 그에 묻히고 만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그녀였다. 아니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당시의 대중들에게는 김완선의 콘텐츠를 완벽하게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여실히 부족했던 셈이다. 어느덧 대중들의 머릿속에는 김완선 하면 노래는 못하지만, 춤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추던 가수라는 비대칭적인 인식이 아로새겨지게 된다. 그리고 한동안 잊혀진다.


MBC 방송화면 캡쳐


어느덧 데뷔 30주년을 맞이하게 된 김완선, 요즘 활발한 활동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그녀의 노래 솜씨가 대중들에게 재평가 받고 있는 분위기이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선보인 노래 솜씨는 그동안 우리가 그녀를 제대로 몰랐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할 만큼 탁월한 것이었다. 과거와 비교하여 결코 뒤처지지 않는 현란한 댄스 실력을 과시하면서도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박자와 정확한 음정 그리고 상당한 수준의 고음 처리까지,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녀다. 대세인 아이돌 가수에 견주더라도, 하물며 외모까지, 저평가 받을 만한 요소가 하나 없다.


덕분에 연령대가 아직 아재에 이르지 못한 젊은 계층까지 그녀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온통 놀랍다는 반응이다. 그녀로 하여금 전성기를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던 곡들은 지금 들어 봐도 결코 촌스럽지 않을 만큼 세련됨 일색이다. 오늘날 아이돌의 효시라 불리는 김완선, 이제는 세대를 넘나드는 매력을 뿜어내며 가수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완전체의 형태로 점차 진화해 가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녀가 지닌 매력과 능력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당시에는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고, 한 세대, 그러니까 무려 30년을 훌쩍 건너 뛰어서야 그녀의 진면목을 온전히 평가 받고 있는 셈이니, 그녀야말로 진정 시대를 앞선 가수가 아니면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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