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저출산의 진짜 원인, 정부만 모르는 걸까?

새 날 2016. 8. 2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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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만큼 중차대한 사안이라는 데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올해를 정점으로, 내년부터는 15세 이상 인구인 '생산가능인구'가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어느덧 경제 성장의 밑거름인 핵심 인구마저 위축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는 도미노 효과를 야기한다. 생산인력 부족은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구조적 현상과 맞물리며 가뜩이나 저성장 기조로 돌아선 한국경제의 발목을 단단히 붙들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생산가능인구는 생산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소비의 주체이기도 하다. 해당 연령의 인구가 줄어든다는 건 생산과 소비 모두를 크게 감소시켜 가뜩이나 내수가 취약한 수출 주도형 기반인 우리 경제의 활력을 더욱 떨어뜨리게 할 개연성을 높인다.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던 기존 핵심 산업들은 어느덧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고, 미래 먹거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러한 구조적인 어려움마저 덧대어지니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어갈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합계출산율이 고작 1.2명에 불과해 세계 최저 수준의 초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의 암담한 현실, 하지만 이러한 복잡다단한 통계수치 따위보다 직접 살아가며 생활 속에서 몸소 체득 가능한 요소들이 오히려 심각성을 더해주는 느낌이다. 아이들 수가 급감하고 있는 현실은 주변에서 흔히, 그리고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한 학년에 5개 학급을 유지하던 학생수가 불과 수 년 사이 2개 내지 3개 학급으로 줄어든 집 근처 초등학교의 현실을 보면 정답은 바로 나온다. 아이들이 줄어드는 현상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정부는 지난 2월 '제3차 저출산 기본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 출생아 수는 21만5200명으로 1년 전보다 되레 1만 명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로라면 올해 전체로는 역대 최저인 42만 명 선까지 하락할 것이란 우려가 대두되는 실정이다. 출산율 급락 조짐이 나타나자 위기 의식을 느낀 정부가 난임치료 지원을 확대하는 등 '저출산 보완대책'을 서둘러 내놓았다. 구체적으로는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난임부부에게 시술 비용을 지원하고, 남성 육아휴직수당을 50만원 인상하는 안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신생아가 모두 2만 명 가량 더 태어날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책 역시 정부는 제대로 헛발질하고 있는 느낌이다. 앞서의 대책도 그랬지만 이번에 내놓은 긴급 처방전을 보니 모두가 알고 있는 저출산의 진짜 원인을 왠지 정부만 모르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출산의 핵심 원인은 한 마디로 지엽적인 어떤 하나의 문제 때문이 아닌, 팍팍한 삶 자체로 인한 보다 구조적이며 근원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애써 잊고 있는 것 같다. 경쟁 일변도 사회와 높은 교육비 때문에 학교를 들고 나는 일도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거니와 혹여 어렵사리 졸업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청년들에게 돌아오는 건 비정규직과 같은 불안한 일자리들뿐이다. 



더욱 어이 없는 건 정부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언급하며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유연화라는 그럴 듯한 표현 속에는 실제로는 불안한 일자리의 대거 양산이라는 결코 웃을 수 없는 함의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일자리 불안은 청년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꼬이게 만드는 결정적인 인자다. 더구나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정부의 일관성 없거나 헛다리 짚기식 정책은 이들의 불신을 더욱 키우며 끝내 스스로를 자조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한다.


근래 청년들을 수식하는 단어인 'N포세대'에는 녹록지 않은 그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력하면 못 이룰 일 없다며 좌절을 겪고 있는 청년세대에게 능력주의를 설파하는 세력이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많다. 하지만 계층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사다리를 모두 걷어 차 버린 채 공정하지 못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뒤틀린 경쟁 속에서 노력과 능력을 읊는다는 건 힘겨워 하는 청년들에게 또 다시 희망고문만을 안기는 셈이다. 


헬조선, 바로 청년들의 고단한 삶과 최근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올곧이 대변하고 있는 용어 중 하나 아닐까 싶다. 물론 부정적이거나 자조 섞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게 투영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 그와 전혀 다르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오로지 유체이탈에 아주 능한 대통령 외에는 아무도 없을 듯싶다. 


고용 불안과 기형적인 부동산 시장으로부터 기반한 살인적인 주거비, 그리고 비효율과 비합리적인 경쟁이 낳고 있는 무지막지한 교육비 등 청년들이 감내해야 할 삶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그러니까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내놓으려면 바로 청년들이 현재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일정 부분 가볍게 덜어주는 정책에 방점이 찍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혼 부부, 그리고 이미 자녀가 있는 기성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방향이 완전히 어긋난 정책만을 남발하고 있다.


청년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여건이건만, 육아휴직수당이니 다자녀 혜택 확대 그리고 난임치료 지원 등의 정책을 내놓아 봐야 출산율이 늘어날 리 만무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혼인은 14만4000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7.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난이 해결되지 않고 미래가 불투명한 헬조선의 상황이라면 제아무리 지금과 같은 저출산대책을 남발하더라도 청년세대가 결혼 자체를 꺼리는 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테고, 이는 우리 사회를 결국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신문


특히 남성 육아휴직수당 확대는 핵심을 제대로 벗어났다.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내지 못하는 건 휴직수당이 적어서, 아울러 해당 정책이나 제도가 미흡하여서가 결코 아니다. 노동 여건과 환경은 여전히 남성들의 육아휴직을 공공연하게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뒤틀린 환경과 사회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단순히 수당의 확대만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가 어려운 노릇이다. 특별법인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을 살펴보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는 이미 매우 잘 마련되어 있다. 다만 이러한 좋은 제도를 뒷받침할 만한 사회적 환경과 인식이 여전히 미흡할 뿐이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25일 저출산 문제와 관련하여 기업과 종교계 그리고 시민 등 사회 모든 계층을 향해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한 호소문'을 발표하면서 저출산이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하는 가장 큰 구조적인 위험이고 절체절명의 과제이기에 모두가 이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달라며 호소하고 나섰다. 그의 발언처럼 저출산의 해결 없이는 우리의 미래를 결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인식 수준과는 달리, 답답한 엇박자식의 정책으로 일관한다면 조만간 대한민국 사회는 당장의 앞날조차 내다볼 수 없는 극한 위기 국면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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