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이화여대 사태, 간극 좁힐 수 없는 욕망의 충돌

새 날 2016. 8.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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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학교 측은 이번 충돌의 단초가 됐던 '미래라이프대학' 사업 추진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으나 사업 포기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사안임을 재차 확인했다. 본관 점거 농성과 뒤이은 공권력 투입이라는 불썽사나운 꼴을 빚은 건 해당 사업을 추진하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철저히 배제하는 등 학교 측의 소통 부재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일방통행식 운영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 학교와 학생 사이에 생긴 갈등을 조정하고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오히려 서로를 불신하며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하고 만 셈이 돼버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학교는 극단으로 기울고 있는 현재의 농성 사태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진행형인 이화여대 사태는 어쩌면 욕망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 아닐까 싶다. 


ⓒ노컷뉴스


왜냐하면 사태의 빌미가 됐던 학교 측의 일방적 운영 및 결정 그리고 학생들이 학교의 방침에 반발하고 나선 표면적인 이유 이면에 감춰져 있을 법한 또 다른 사실들은 일종의 사회적 현상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등록금을 마음대로 올리기 힘든 상황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으로 학교 재정의 일정 부분을 커버 가능하니 이를 마다해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 같다.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미래라이프대학'은 교육부가 추진 중인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의 일환이다. 이를 설치시 학교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정책 자금을 지원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는 별개로 학위를 명분으로, 등록금 수입을 거둬들이는 일도 가능해진다. 학생들이 기껏해야 학위 장사에다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결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다름아닌 이를 근거로 한다. 따라서 학교 측의 결정에 경제적인 논리가 앞서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이는 거짓일 테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입장은 어떨까? 학생들은 단과대학 설립이 학벌주의를 조장한다거나 학문의 전당이 되어야 할 대학이 단순히 학위 장사에 눈이 먼 행위를 일삼고 있다며 이를 강력하게 성토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 설립하려던 단과대학이 비정규직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에게 양질의 대학교육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볼 때 일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반발하고 나서는 데엔 또 다른 명분이 있으리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화여대의 이미지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더없이 출중하다. 졸업생들이 여성계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두루두루 포진하여 입지를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신설하려고 하는 단과대학을 극구 반대하고 나선 건 자신들이 어렵게 들어온 대학을 상대적으로 자격 미달(?)인 사람들이 쉽게 들어와 학위를 취득한다는 본전 심리 그리고 이들의 학벌 세탁으로 학교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고, 이는 신입생의 입학 성적을 낮추는 등 이화여대라는 브랜드 가치를 크게 하락시킬 것이라는 위기감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물로 받아들여진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순혈주의의 약화 현상이라 표현하고 있다. "형편없는 지잡대(?)처럼 이화여대가 그렇게 되는 현상을 보게 되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일부 재학생들의 정제되지 않은 표현 속에서 현재 그들 생각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불현듯 '이대 나온 여자' 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이에는 이화인으로서의 자부심의 이면에 이를 비꼬는 일반인들의 뒤틀린 시각도 담겨 있다. 그러니까 이번 사태의 기저엔 바로 전자로서의 '이대 나온 여자'의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게 되리라는 위기감이 깔려 있는 듯싶다. 


특히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학부모의 농성 참여다. 이는 대학 농성 역사에 새로이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교육 시켜가며 딸 자식을 어렵사리 대학에 보내 놓았더니 별도의 단과대학을 통해 상대적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문호를 개방한다고 한다. 형평성도 형평성이지만 자녀를 키운 과정을 곱씹어 볼 때 왠지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다. 딸 자식이 '이대 나온 여자'로서 더 이상 이러한 표현의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작금의 현상을 부모로서 차마 눈 뜨고 바라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대학생이면 이미 성인이거늘, 제아무리 학부모의 신분이라고 해도 성인인 자녀 문제 때문에 학교를 상대로 농성과 시위를 벌인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결과는 근래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현상 중 하나인 헬리콥터맘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여기에 '이대 나온 여자' 라는 사회적 현상마저 더해지니 전혀 다른 양태로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특이 현상만으로도 평소 이화인들이 지닌 자부심의 크기를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노컷뉴스


그나마 학생들이, 아울러 졸업생과 학부모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건 학교 입장에서는 매우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부심이 없다면 학교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멀어질 테고 그렇게 된다면 학교가 무슨 일을 벌이든 관심 밖 사안이 되고 말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학교 입장에서는 작금의 학생들의 반응을 보다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고 켜켜이 쌓인 갈등을 좁힐 수 있는 접점을 모색해야 할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왜일까? 학교와 학생이 지니고 있는 엇비슷하면서도 전혀 이질적인 욕망 때문이다. 현재 학교와 학생 두 주체가 각기 품고 있는 욕망은 상호 보완적이라기보다 상충에 가깝다. 학교는 학교대로 재정 확충을 위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고, 또한 학생은 학생대로 진학 준비 과정 및 입학 당시의 어려움과 관련하여 본전 심리는 물론, 이른바 순혈주의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마찬가지로 이를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대학이란 곳이 진리 탐구라는 순수했던 본연의 모습을 잃은 채 각기 다른 형상을 띠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이기적인 욕망 덩어리가 되어 결국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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