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형버스의 안전, 근로환경 개선이 먼저다

새 날 2016. 7. 28.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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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어난 봉평터널 버스 사고에서 보듯 대형버스나 화물차는 자칫 도로의 흉기로 돌변하기 십상이다. 도로 위에서, 특히 고속도로에서는 더더욱, 승용차를 몰고 달릴 때면 마치 습관처럼 주변에 대형 화물 트럭이나 버스가 있는지 주위를 살피고 되도록이면 이를 피해가곤 했는데, 덕분에 봉평터널 사고 이후로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는 경향이 짙다. 


정부가 이와 관련한 대책을 내놓았다. 국토교통부의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대책'이다. 이에 따르면 운수종사자가 연속으로 4시간 운전을 했을 경우 반드시 30분 이상을 쉬도록 했다. 4시간당 적어도 30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한 것이다. 정부는 1톤 이상의 화물차와 대형버스에 장착된 디지털 운행기록을 활용하여 휴게시간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사업정지나 과징금 처벌을 검토하겠단다. 이밖에 내년부터 신규 생산되는 화물차량 버스 등에는 차로이탈경고장치와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을 때 차의 속도가 느려지게 하는 자동비상제동장치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했다. 


ⓒ뉴스1


하지만 해당 대책이 발표되자 운전자들의 표정은 되레 떨떠름함 일색이다. 심지어 반발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도대체 왜일까? 현재의 근로 여건상 4시간마다 30분씩 강제로 쉬게 될 경우 운수 노동자들의 몸은 편해질지 모르나 약속된 승객과 화물 운송 시간을 맞추기가 현실적으로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운수 노동자들을 둘러싼 기본적인 노동 환경은 바뀐 게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휴식시간만 강제로 끼워넣는 방식 따위로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요원하다는 의미다. 일례로 언제든 도로 위의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 관광버스에서의 음주가무 행위를 막기 위해 과태료 부과와 운행 정지 등 나름의 강력한 행정처분을 실시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비슷한 행위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건 지금과 같은 처벌 방식이 근본 해법이자 능사가 아님을 입증하는 사례와 같다. 


버스 운전 기사들이 왜 안전 운전을 방해하는 위험 요소를 무릅써가면서까지, 가령 과태료 등 행정 처분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보다 강력한 음향 장비들을 교묘히 숨긴 채 순식간에 버스 안을 마치 무도장처럼 변모시켜 영업 행위를 일삼아왔는지, 아울러 장시간 운전으로 졸음이 오는 상황 속에서도 절대로 운전대를 놓지 못하고 있는지, 그 이면에는 그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처우 그리고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 등이 자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지나친 경쟁 구도가 이들을 도로 위의 흉기로 돌변시키거나, 밤잠을 미루고 졸린 눈 비벼가며 하루 10시간 이상 운젼대를 잡은 채 승객이나 화물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리한 운전을 강행하게 만든다. 이른바 빨리빨리 문화와 치열한 경쟁의 콜라보다. 결국 이렇듯 열악한 노동 환경 하에서는 작금의 단속 방식이나 새롭게 내놓은 정부의 대책들은 이제껏 그래왔듯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얼마 전 캐나다에 다녀온 한 지인이 소개한 엄격하고 철저한 단속은 우리와 단적으로 비교된다. 근본적인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처로 이동하기 위해 관광버스에 탔는데, 경찰이 불시 단속을 벌여 운행기록계에 저장된 차량의 운행 거리를 일일이 확인하더란다. 언제든 도로 위의 흉기로 돌변 가능한 대형 차량의 운행과 관련하여 매우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가능한 건 무엇보다 안전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데다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근로 환경 또한 우리처럼 열악하지 않기 때문일 테다.  


비단 캐나다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대형차 운전자의 과로로 인한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법적으로 운행과 휴식 시간 기준을 마련하여 운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독일은 매일 9시간 이상 운행을 금지하고 있고, 4시간 반 운행 뒤에는 반드시 45분 동안의 휴식을 취하도록 법으로 이를 규제한다. 차량에 디지털 운행기록계 장착을 의무화하고, 경찰이 불시 단속을 벌여 기록계에 저장된 차량의 운행 거리, 시간 등이 법적 기준을 어겼을 경우 고액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일정 시간 연속 운행을 하고 나면 얼마 동안은 시동 자체가 걸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장착하여 우리처럼 졸음운전 등을 유발하는 무리한 운전 관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우리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선진국의 그것을 그대로 모방한 셈이다. 하지만 토대가 전혀 다른 상황에서 과연 흉내만으로 실효를 거둘 수 있을까?


ⓒ동아일보


2014년 한국운수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는 버스 사고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었고 벨기에는 2명, 스페인은 4명에 그친다. 우리나라는 같은 해 버스 사고만으로 152명이라는 귀한 생명이 사라졌다. 시사하는 바 크다. 안전에 최우선의 정책적 방점을 찍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우리보다 대형 차량의 위험성을 훨씬 앞서 경험한 덕분에 이의 예방도 매우 철저하며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한국 시외버스 노동자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60.1시간, 고속버스는 48.6시간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야근을 밥 먹듯 일삼는 대한민국이 아니랄까 봐 이들이라고 하여 예외가 아닌 셈이다. 그러니까 대형버스와 화물차 등에 대한 안전 강화를 위해 보다 강력한 규제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되 그보다 앞서 다뤄져야 하는 건, 하루 10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은 채 늘 졸음운전에 시달려 가며 파김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는 버스 운전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일부터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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