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감성을 뒤흔드는 매혹적인 영화 '싱 스트리트'

새 날 2016. 5. 1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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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아일랜드는 국민 절반 가량이 실업 상태에 놓이는 등 최악의 경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청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영국 등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코너(패리다 월시-필로)의 가정이라고 하여 사정이 다를 리 없었다. 아버지가 실업 상태에 놓이고 어머니는 근무시간이 반강제로 줄어든 탓에 가계는 어쩔 수 없이 긴축 운영을 해야 할 처지다. 무언가 구조조정이 절실했다. 그 첫번째 대상은 다름아닌 코너였다.

 

코너는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결국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톨릭계인 싱스트리트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학교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전통이랍시며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인권 탄압은 시도 때도 없었으며, 남학교라는 특징 때문이겠으나 학교는 흡사 마초적 욕망으로 가득 들어찬 수컷들로만 채워진 일종의 생존경쟁의 각축장과도 같았다. 음악을 몹시도 좋아하는 코너는 또래들을 규합하여 밴드를 만들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앞에서 늘 서성거리던 라피나(루시 보인턴)에 반한 그는 뮤직비디오 제작을 빌미로 그녀와 가까워지기 시작하는데...

 

ⓒ네이버영화

 

밴드는 코너가 엉겁결에 또래들과 의기투합하여 쉽게 만들었듯, 밴드의 이름 역시 얼렁뚱땅 지어진다. 발음은 분명 같지만 의미가 전혀 다른, 자신들이 재학 중인 학교의 이름에서 모티브를 따와 '싱 스트리트'라 명명한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프로듀서 겸 매니저 그리고 촬영 담당자까지 둘 정도로 적어도 형식만큼은 제대로 갖춰져있는 밴드다. 나중에는 보디가드도 고용한다. 이렇게 하여 급조된 밴드는 리드 보컬인 코너와 온갖 악기를 다룰 줄 아는 특출한 능력이 있는 데다 작곡 실력까지 겸비한 에이먼(마크 멕케나) 이 두 사람의 출중함 덕분에 제법 완성도 높은 음악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코너가 지향하는 음악적 형식은 미래파다. 물론 이러한 장르는 전혀 알려진 바 없다. 순전히 그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장르이니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은 과거도 그래왔고, 현재도 미래도 온통 암울함 일색이다. 그럼에도 코너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따라서 미래파라는 음악적 형식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기보다 지나온 과거와 현재는 돌아보지 않은 채 오로지 앞만 향해 가겠노라는 코너의 의지가 담겨있는 셈이다.

 

반면 코너의 가정과 학교라는 울타리는 코너가 지향하는 세계와는 완전한 반대 진영이다. 진보적인 코너에게는 한 마디로 진부하고 고루하기 짝이없다. 코너의 엄마와 아빠는 자신들 앞에 놓인 난관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 점차 망가져가는 모습만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특하면 부부싸움을 일삼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일탈행위를 통해 앙갚음을 하곤 한다. 아일랜드의 암을한 잿빛 현실이 일개 가정으로까지 그 파급력을 넓히고 들어온 상황이라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학교는 가정보다 정도가 더욱 심한 편이다. 학교를 운영함과 동시에 교사 자격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가톨릭 사제는 자신들이 정해놓은 틀과 규칙에서 한 치의 어긋남조차 용납하지 않으며,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어 이를 어길 경우 교내에서 무차별적인 폭행이 가해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러한 현실을 그저 묵인한 채 따르기만 한다. 교육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일종의 폭력이다.

 

그나마 가정에서는 형(잭 레이너)의 존재가 집과 코너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고, 학교에서는 밴드 생활이 그로부터의 해방구 역할을 톡톡히한다. 코너에게 있어 형은 정신적 지주이자 음악적 영감을 얻게 해주는 일종의 멘토다. 형은 비록 학교를 중퇴한 채 집에서 폐인과 같은 은둔자적 생활을 하고 있으나 코너가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사실상 형의 희생이 큰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그가 어렵게 닦아온 길을 동생이 걷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시의적절한 상황에서 코너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코너를 둘러싼 온갖 악조건 하에서도 그만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지켜나가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게 한다.

 

8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듀란듀란'과 '아하' 등의 노래 및 외모를 흉내내며 음악 생활을 시작한 코너와 밴드 친구들은, 현실에 안주하며 새로운 곡을 만들거나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특정 공동체를 대표하는 밴드인 커버밴드와 관련한 이야기를 형으로부터 전해듣고, 이후로는 유명 밴드를 흉내내는 일에서 벗어나 점차 자신들만의 음악적 색깔을 갖춰나가기 시작한다. 코너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가사로 옮기고 악상이 떠오르면 늘 에이먼을 찾아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곡을 만들어내곤 하는데, 이는 싱 스트리트 밴드만의 작곡 방식이었다.

 

아일랜드의 현실적 어려움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라피나의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행동은 코너를 자극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한다. 코너가 머리에 물을 들이고, 얼굴에 화장을 한 채 학교에 등교를 하는 건 일종의 현실 안주에 대한 거센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노래를 통해 인생을 축제화하라며 조언한다. 맞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삶의 주인공은 결국 자기 자신임에도 우리는 여러 이유로 이를 잊거나 억지로 지운 채 살아간다. 꿈꾸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최악의 경우 모든 걸 잃는 한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꿋꿋하게 앞만 바라보며 가라고 노래한다.

 

매우 경쾌하고 즐겁고 매혹적인 작품이다. 근래 음울하며 오싹한 분위기의 영화가 극장가를 달구고 있으나, 난 그런 류의 영화보다는 이러한 작품이 정신 건강에도 이롭고 우리의 기분을 맑고 밝게 해주기에 훨씬 좋다. 감성을 한껏 끌어올려줄 만한 좋은 작품이다.  

 

 

감독  존 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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