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서민의 열패감 부추기는 헬조선

새 날 2016. 3. 2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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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청년이란 단어를 접할 때면 미래와 희망 따위의 이미지가 연상되곤 하였으나 근래에는 N포세대, 헬조선, 취업절벽, 흙수저 등 온통 암울함 일색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현실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모양새다. 2월 청년 실업자 수가 56만 명을 돌파하며, 지난해보다 7만6000명이나 늘었다는 소식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12.5%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9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단다.

 

뿐만 아니다. 지난해 2,30대 가구의 소득 증가율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통계 결과도 발표됐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에 따르면 가구주가 39세 이하인 2인 이상 가구의 지난해 월평균 소득이 전년 대비 0.6% 줄어든 것이다. 이 역시 가계동향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래 처음으로 겪게 되는 미증유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Eduardo Salles

 

당장 눈앞의 현실이 청년들을 지치고 힘들게 하더라도 이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을 테다. 가까운 미래의 삶이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아지리라는 가능성 하나 때문에 현재의 삶을 기꺼운 마음으로 희생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더 이상의 미래를 담보해 주지 못하면서 이들의 현실은 고통 그 자체로 변모해 가는 와중이다. 미래는 온통 잿빛 투성이가 돼버렸다.

 

그나마 뚜렷한 해결책이 존재한다면 다행일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작금의 상황이 소비 감소를 불러오고 이는 다시 성장률 하락과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켜 결국 고용 감소로 이어지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희망이 없는 삶처럼 괴로운 일도 사실 드물 테다. 청년들이 미래를 꿈꾸며 이를 계획할 처지가 못 되니, 어느덧 결혼은 언감생심,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지속시키고, 고령화사회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그로 인한 생산가능인구마저 턱없이 부족해지는, 우리 사회를 인구절벽이라는 심각한 상황으로 내모는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한다. '헬조선'은 이로부터 기인하는 경향이 크다. 

 

 

오늘날 청년들의 고통과 자조가 고스란히 담긴 헬조선 현상은 어느덧 해외에서조차 관심을 보이는 영역이 됐다. 한국 청년들의 취업난을 풍자한 길거리 벽화가 최근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에 올려져 화제다.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벗어던진 남성이 맥도날드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대학 교육까지 마치고 본격 사회인이 됐음에도 청년들 앞에 펼쳐진 현실은 고작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할 만큼 고달픔 일색이란 사실을 풍자한 작품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해외 네티즌들까지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함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씁쓸한 소식은 따로 있다. 2,30대 청년들의 소득이 사상 처음으로 줄었다는 통계와는 정반대로 지난해 고위공직자 4명 중 3명은 재산이 되레 늘어 평균재산이 13억3000만 원에 달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고위공직자의 전년 대비 재산 증가액 비율은 4.31%로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 2.6%를 크게 웃돈다. 물론 단순히 재산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무어라 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재산 증식 방법이 문제라면 문제다. 이들 대부분은 부동산 가격 및 주가 상승이나 재산 상속 등의 자산 효과를 통해 재산을 불렸다. 소득마저 줄어들고 있는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의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일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경기 불황으로 인해 서민들은 살기가 어렵다며 아우성이다. 특히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자포자기식 심경을 토로하며 극한의 처지로 내몰리고 있고, 2,30대 가구의 소득이 사상 처음 줄어들 정도로 먹고 살기 녹록지 않은 세상으로 변모해 가는 와중이다. 하지만 고위공직자들은 되레 자산을 불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우리의 경제 및 경제외적 여건은 여간해서는 헤어나오기 쉽지 않을 만큼 깊은 수렁 속으로 점차 빠져드는 형국이다. 구조적이면서도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치명적인 모순과 맞닥뜨리고 있는 탓이다. 오랜 저성장 기조와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는 우리 사회를 끝모를 지점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은 기업들의 배만 불리고 있고, 자산으로 또 다시 자산을 불리는 고위공직자들의 행태는 서민들의 열패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청년들의 아픔과 서민들의 아우성에도 아랑곳없이 오히려 자산을 불리는 이들의 놀라운 신공 이면에는 이렇듯 불공평한 현실이 가로놓여져 있는 셈이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헬조선의 현주소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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