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특권의식이 빚은 슈퍼갑질이 괘씸한 이유

새 날 2016. 3. 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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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0명 중 무려 95명이 한국 사회에서 빚어지고 있는 '갑질'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갑질은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및 재벌의 갑질이었다. 이는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와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고 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자 잣대라 생각된다.


대형 건설사 오너 3세가 운전기사에 대해 상습 폭언 및 폭행을 했다는 증언과 맞춤형 운전기사 수행 가이드까지 마련돼 있다는 사실이 한 언론사에 의해 드러났다. 이번에 공개된 수행 가이드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사이드 미러를 접은 채 운전 연습을 하라는 말도 안 되는 운전 요령부터, 폭언 등 비인격적인 대우가 가해져도 스트레스 받지 말고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등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같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의 내용 일색인 탓이다. 이는 지난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을 통해 VIP라 불리는 일부 재벌 3세들의 그릇된 행태가 방영되며 세인들에게 알려졌던 사실의 현실판인 듯싶다. 


ⓒ노컷뉴스


근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재벌 오너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갑질 행태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조명되며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양상이다. 이를 보면서 혀를 끌끌차거나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눈살을 한껏 찌푸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는데, 어쩌면 허구가 전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요즘처럼 재벌들의 행태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자주 거론되는 추세라면, 사실상 현실과 허구와의 경계가 거의 무의미하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재벌 갑질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거지는 단골 손님이다. 이번 건과 유사한 최근 사건으로는 몽고식품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몽고식품의 전 명예회장은 자신의 운전기사를 향해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으로 모욕을 줬으며, 구둣발로 급소를 걷어차거나 습관적으로 욕설을 한 사실이 폭로되어 회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그보다 앞서 논란이 됐던, 항공기 승객들의 안전과 편의를 책임져야 할 사무장이 부사장의 일방적인 폭언 끝에 비행기에서 쫓겨난, 이른바 ‘땅콩 회항'은 당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며 재벌가의 안하무인격 행태에 경종을 울린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외 라면상무, 빵회장, 조폭회장 등 저들이 몸담고 있는 폭넓은 업종만큼이나 갑질의 유형도 무척 다양하다.

 

 

요즘 청년들의 입을 통해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 중 하나인 '흙수저'와 '금수저', 이에는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인식이 담겨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따라서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학교에서 배우는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속 자본주의는 어느덧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개념이 돼버린 지 오래이다. 계급사회가 아님에도 엄연히 계급이 나뉜 채 우리는 그 틀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 번 금수저는 영원한 금수저이며, 한 번 흙수저는 영원한 흙수저일 뿐 계층 간 이동은 언감생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어느덧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들만의 삐뚤어진 특권의식과 그릇된 인식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태어날 때부터 우리랑 사는 세상 자체가 다르다 보니 생각하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여기거나, 저들이 사는 세상에선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그저 평민 내지 노예로 여길 것이라는 생각 따위마저 횡행하기 일쑤이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게 된 건, 이토록 기가 막힌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정작 그로부터 벗어날 방도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사람들이 어느덧 자포자기적 심경을 토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발현된 현상으로 읽힌다.


그런데 어떠한 특정 현상이 자꾸만 빚어진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재벌의 갑질도 갑질이지만, 고위 공직자 등 사회 지도층의 반칙 행위 및 갑질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우리 사회의 보편적 정서와 가치마저 무너뜨리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들의 갑질은 운전기사 등 개인이 아닌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것이기에 재벌들의 갑질과는 그 규모부터 다르다. 이른바 슈퍼갑질이다.


ⓒ한겨레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20일 KTX에 탑승하기 위해 서울역 플랫폼까지 자신의 관용차를 타고 들어갔다는 소식이 알려져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서울역은 엄연히 공공시설물이거늘, 마치 자신만의 전유물인 양 그곳에서 이뤄진 권위주의적인 행태는 그가 어느 누구보다 강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노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가늠자다. 더구나 그는 법무부장관 출신이다. 우리 사회에 반드시 법과 원칙이 통한다는 사실을 국민들 앞에서 몸소 실천하며 솔선수범해야 할 직위에 있는 사람이기에 이러한 행태가 더욱 어이없게 다가온다.


잊을 만하면 자꾸만 빚어지는 재벌의 갑질 소식은 씁쓸함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토록 사회 구성원들의 뭇매를 맞으며 분노의 대상이 됐던 재벌들이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갑질이 횡행하고 있는 건 다름아닌 법무부장관 출신 총리와 같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특권의식과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반칙 행위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갑질과 반칙 행위는 가뜩이나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심하게 기울게 하고, 불균등하며 불공정한 사회를 가속화시키는 자양분이 되게 한다. 때문에 재벌의 갑질도 그렇지만, 황총리의 슈퍼갑질은 더욱 괘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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