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소방관의 안전이 곧 국민의 안전이다

새 날 2016. 3. 17. 13:11
반응형

지난 2001년 3월 4일, 서울 홍제동의 한 다가구 주택에서 불이 나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6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방 역사상 최다 순직자를 기록한 끔찍한 사고였다. 당시 이들 소방관들은 화재 건물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건물이 무너지면서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정작 건물 안에는 사람이 없던 걸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한 기억이 있다. 이렇듯 소방관들이 희생될 때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한껏 높여왔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거니와, 지난해 방화복 논란 당시에도 그랬다. 그렇다면 홍제동 참사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지난 1월 국민안전민관합동회의를 주재한 황교안 국무총리는 소방안전 대책을 논의하면서 소방인력과 부족한 장비를 대폭 확충하고, 공무상 요양비 인정 범위도 확대하겠노라고 밝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소방관을 폭행하거나 소방차 출동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국민안전 확보 차원에서 처벌을 강화하고 엄정하게 집행해 나갈 것이며, 안전처는 이러한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듣던 중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머니투데이

 

그러나 소방관들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소방복의 부실 문제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부실 검사로 문제가 됐던 방화복에 대해 국민안전처가 두 개의 검사기관을 통해 조사한 결과 성능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 계속 입도록 조치한 바 있다. 하지만 JTBC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이번에는 해당 방화복에서 또 다른 결함이 드러난 것이다. 일선 소방관들은 해당 방화복에 대해 발수성이 떨어진다며 이른바 '물 먹는 소방복'이라 칭하면서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입장이다. 화재 진압을 위해선 소방관들이 계속해서 물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거늘, 소방복으로 물이 침투해 들어와 흡수될 경우 몸이 무거워지고 심지어 겨울철엔 얼어붙을 수도 있기에 이는 소방관들의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에 대해 JTBC가 취재한 결과, 정부는 20가지 필수 시험항목 중 14가지를 빼고 검사를 진행한 뒤 적합판정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소방안전법에 따르면 특수방화복은 내열시험을 비롯한 20가지 성능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정작 검사기관들은 20개의 시험기준 가운데 6개의 기준만 적용하여 재시험을 진행했다고 한다. 시간이 부족하여 모든 검사를 할 수 없었다는 검사기관 관계자의 언급은 작금의 성능시험이 얼마나 무성의하면서도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잣대다. 결국 이러한 절차에 대한 최종 책임이 있는 국민안전처의 안일한 행정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이맘때에도 성능검사조차 받지 않은 엉터리 특수 방화복 수천여 벌이 전국 소방서에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논란으로 불거진 적이 있고, 관리 감독에 책임이 있는 국민안전처는 해당 제보가 들어올 때까지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실태 조사를 벌이는 등 늑장대응으로 일관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 불과 1년만에 비슷한 형태의 무책임함으로 일관하고 있는 국민안전처다.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는 자꾸 언급해 봐야 입만 아픈 지경이다. 우리나라 소방관 한 명이 담당하는 인구수는 1,341명으로,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많다. 소방공무원들은 대부분 지자체에 소속된 지방직 공무원 신분이다. 때문에 재정 여건이 좋은 일부 지자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방공무원들은 예산 및 인력 부족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입장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8개의 소방본부 중 절반이 넘는 11개소의 인력 부족률이 무려 40%를 넘는단다.

 

지난 5년 동안 순직한 소방관은 33명,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이 35명에 이르며, 화재를 진압하다 부상을 당한 소방관도 362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다치더라도 공무상 요양을 신청하기는커녕 대부분 자비로 치료하고 있단다. 공무상으로 처리할 경우 인사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소방관 10명 가운데 한 명은 우울증을 겪고 있고, 5명 가운데 1명은 불면증을 호소하고 있을 정도로 소방관들의 근무 스트레스는 심각하다. 이는 일반인의 15-20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동아일보

 

소방관은 국민 안전의 최일선에서 근무하며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일종의 수호천사다. 소방관의 투철한 직업의식과 그로부터 비롯됐음직한 봉사 및 희생정신은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들에게 오롯이 봉사와 희생정신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기대어서도 안 될 노릇이다.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은 매우 시급히 해결돼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게 하나 있다. 적어도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서 착용해야 할 생명줄과도 같은 소방복을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편하게 입고 구조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철저하면서도 올바른 형식과 절차의 관리 감독 체계를 갖춰야 하는 게 급선무 아닐까 싶다. '물먹는 소방복'이라니, 도대체 이토록 끔찍한 일들은 왜 계속 반복되어야만 하는 걸까. 이는 우리가 낸 세금이 여전히 정상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결과물이기에 몹시도 불편하고 찜찜하다.

 

어깨에 태극기를 단다고 하여 애국심이 절로 고양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물론 강요해서도 아니 된다. 자신의 제복에 달린 태극기가 자랑스럽게 와닿고, 그로부터 태동할 법한 애국심이 절로 발현될 수 있도록, 일할 맛 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게 바로 국가가 해야 할 몫이다. 소방관의 생명 및 안전은 곧 국민의 그것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