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아파트 경비원 감원, 효율이 능사일까

새 날 2016. 3. 11. 12:46
반응형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인공지능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인간을 대표하는 이세돌 9단의 연이은 패배가 바야흐로 인공지능 세상의 본격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다소 섣부른 예단까지 낳고 있는 실정이다. 한 발 더 나아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4차 산업혁명’이자 인간 숙명의 변곡점에 와있다는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비단 인공지능이 아니더라도 효율성이라는 명분 하에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사례는 이미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6,030원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8.1% 인상된 액수다. 매년 조금씩 오르고 있기는 하나 생활물가를 고려한다면 피부에 와닿는 현실적인 느낌으로는 여전히 미흡한 수치이다. 실제로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을 만큼의 임금 수준에 이르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 그런데 이러한 최저임금의 상승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듯싶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에 따른 부담감 때문에 효율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테고, 그러다 보니 일자리가 줄어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파트 경비원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근래 위협 받고 있는 직종 중 하나다. 

 

아파트 경비원은 흔히 경제적 여유가 없는 고령 남성의 생애 마지막 일자리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경비원이라는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커다란 행운일지도 모른다. 경제 능력이 열악한 대다수의 노인들은 오로지 생계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거리에서 폐지를 주워 연명하거나 공공근로사업과 같은 험지로 내몰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도 빈번하다.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줍다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는가 하면, 지자체가 마련한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했다가 부상당하는 일마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OECD 노인자살률 및 빈곤율 1위 국가에서의 경제적 여력이 없는 노인들의 삶은 그야말로 고달프기 짝이 없다.

 

그에 비하면 아파트 경비원은 꽤나 안정적인 일자리라 할 만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는 아닐 테다. 때로는 굴욕적이며 불합리한 대우를 이겨내야 할 만큼 힘에 겨운 일일 수도 있다. 잊을 만하면 빚어지곤 하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경비원을 향한 갑질 논란은 이들의 처지가 그리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는 잣대라 할 만하다. 처우는 형편 없으며, 인간적인 모멸감마저 감내해야 하는 직종이 다름아닌 아파트 경비원이다. 택배 관리, 청소, 재활용은 그들의 고유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약자의 지위라는 이유 때문에 자연스레 자신들의 몫이 돼버렸다.  

 

그런데 근래 최저임금이 꾸준히 상승하다 보니 아파트 관리비 또한 그와 맞물려 인상이 불가피해지고, 그러다 보니 최근 경비원들이 감축 대상으로 내몰리는 처지가 되고 있다. 이를 재촉하는 건 비단 인공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기계에 의한 관리 자동화 시스템 역시 한 몫 단단히한다. 가령 무인택배함을 설치해 놓은 채 경비원들의 일감이 줄었으니 감원이 불가피하다는 논리 따위가 그에 해당한다. 신규분양 아파트뿐 아니라 기존 단지들까지 무인경비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면서 경비원들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아파트마다 경비원 감원과 관련한 사안을 주민 투표에 부치고, 그 결과에 따라 경비원들이 해고되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추세로 가게 된다면 조만간 모든 아파트에서 경비원의 모습을 아예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 대신 아파트 곳곳에는 모든 입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끊임없이 감시하는 CCTV가 설치될 테고, 무인경비 시스템이 그들의 자리를 꿰차고 앉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UFC 해설위원인 김남훈 씨가 '경비원을 6명 해고할지 12명 해고할지 선택 하라니요. 저 4,000원 있습니다!'라는 호소문과 함께 1,000원짜리 지폐 4장을 부착한 채 경비원 해고의 문제점을 주민들에게 환기시킨 사건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 현재도 다수의 아파트에서는 경비원 감원과 관련한 주민 투표가 벌어지고 있으며, 다행히도 김남훈 씨의 영향 탓인지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경비원들의 일터를 지켜내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이 언론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요즘 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관리비의 인상은 주민들에게 매우 민감하게 다가올 수 있는 사안이다. 이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관리비 절감이라는 명분과 함께 지나치게 효율성만 따지다가 주민의 안전과 아파트의 제대로 된 관리, 그리고 기계로는 절대로 메울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등의 공동체에서 반드시 필요한, 진짜로 소중한 가치를 놓치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근래 대부분의 행정 업무는 통신과 전산화의 발달로 인해, 특히 도시 지역에서는 더더욱, 사실 통장의 할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없앤다 해도 딱히 문제가 될 만한 소지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장은 행정 업무의 끝단에서 행정기관과 주민들 사이의 단순한 메신저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름아닌 소통이다. 지역 공동체에서 반드시 필요한 덕목인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주민과 행정 사이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하며, 무너지고 있는 공동체를 복원하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경비원도 비슷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CCTV를 제아무리 구석구석에 설치한다 해도 그 성격상 단순히 사후약방문의 역할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완벽한 범죄 예방은 언감생심이다. 알파고처럼 똑똑한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가 아파트를 철저하게 관리한다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매개 역할은 사람이 해야 할 몫이다. 아파트 입주민과 입주민 사이를 연결하고 공동체 복원이라는 보다 커다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람만이 가능한 일일 테다. 

 

“가장 오랜 시간 아파트를 지키는 경비원들은 ‘이웃 구성원’으로 봐야 한다. 개인화된 아파트 생활에서 경비원의 존재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UFC 해설위원 김남훈 씨의 언급이다. 그의 발언과 행동은 우리가 비용 절감 논리에만 지나치게 매몰된 채 정작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케 하고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