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친일인명사전 학교 비치, 왜 논란이 돼야 하나

새 날 2016. 3. 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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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중고등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을 배포하는 서울시교육청의 사업은, 지극히 정상적인 혼을 지닌 대한민국 국민 입장이라면 절대로 논란거리가 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물론, 이른바 일부 보수단체까지 해당 사업에 압박을 가하며 전방위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서는 등 부러 논란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심지어 이를 이념 논쟁으로 엮어 비화하려는 구태스러운 움직임마저 포착된다. 작금의 시대가 일제 강점기도 아니거늘,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렇듯 조그만 사업마저 논란으로까지 불거져야 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상식에서 제대로 이탈한 느낌이다.

 

해당 사업의 추진은 지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해 12월 서울시 교육비특별회계 예산안이 통과되면서 서울시교육청은 이듬해인 2015년 서울 시내 모든 중고등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을 배포키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일부 학부모 및 보수 단체의 반발과 조희연 교육감의 재판이 맞물리면서 해당 사업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지난해 4월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아 당선 무효의 위기에 놓였던 조희연 교육감, 같은 해 9월 항소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이끌어낸 뒤에야 비로소 해당 사업은 다시 탄력을 받게 된다. 

 

ⓒ노컷뉴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아픈 역사와 부끄러웠던 우리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여 당당하고 책임감 있는 국민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 볼 때 이번 사업은 오히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예산을 지원해 주고,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모든 일선 학교에 단 한 곳도 빠짐없이 해당 책자를 배포해야 함이 옳을 듯싶다. 하지만 정부는 되레 배포의 적절성을 따지며 서울시교육청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아울러 교육청 사업에 쌍수를 들며 환영을 해도 시원찮을 모 학부모 단체는 되레 친일인명사전 구입 예산을 의결한 서울시의회와 교내 도서관 비치를 지시한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검찰에 고발까지 해놓은 상황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가해자인 일본인이나 친일파 및 그 후손들의 입장이라면, 친일인명사전이 일선 학교에 비치되어 우리 아이들에게 읽힌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몹시 껄끄럽게 다가오는 사안이 될 수 있다. 그들 입장에서는 다분히 논란거리가 될 만한 사안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일본인 내지 친일파의 피해자였던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나 그 후손들의 입장이라면, 친일인명사전의 비치는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사안이다.

 

우리의 꽃다운 소녀들을 전쟁터로 강제로 끌고 간 뒤 위안부로서의 끔찍한 삶을 강요했던 일본인이나 그들을 이롭게 했던 친일파 내지 그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영화 '귀향'의 상영이 한없이 거북하게 다가오며 논란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 체계를 지닌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잊혀져선 안 될 우리의 아픈 과거로 기억되며 해당 영화가 결코 논란거리로 다가올 수 없듯 말이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아픈 과거를 기억하도록 하는 사업은 굳이 독일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기회가 될 때마다 이를 강조해 왔다.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기록은 이념 등에 의해 그때그때마다 가치 판단이 달라지는 그러한 사안이 아니다. 일본을 이롭게 하고 우리 민족에 위해를 가했는지 아닌지의 객관적인 사실만이 옳고 그름의 잣대가 될 뿐이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들춰내 이를 기억하고자 하는 일에 웬 보수니 진보 따위의 이념을 들먹이는가. 매국적 행위로 우리 민족 전체를 도탄에 빠뜨리고 위해를 가한 결과에 웬 이념 잣대인가. 친일 반민족 행위를 이념 논쟁으로 엮으려는 행위가 오히려 지극히 이념 편향적인 건 아닐까? 우리 사회가 여전히 친일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반민족 행위에 대한 결과마저도 이념의 틀에 가두려는 몰상식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건, 다름아닌 친일파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적 단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친일 행위와 관련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면 해당 사업을 만류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를 거부하고 있는 건 과거의 잣대로 보자면 결국 친일 행위와 다름없다. 교육 현장에서 올바른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배울 수 있게 하는 일이 어째서 국론 분열의 선동 수단인지 보편적인 상식과 정상적인 혼을 지닌 대한민국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도무지 이해불가하다. 그렇게도 이념 갈등을 야기하고 싶은가?

 

“우리 학교 도서관에 겨우 ‘친일인명사전’ 한 질을 구비하는 것이 아직도 논란이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일제에 맞선 저항의 역사 앞에 후손으로서 부끄럽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3.1절 논평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인가를 함축적으로 꼬집는다. 일제 치하로부터 독립을 이룬 지 70년이나 지났음에도 일선 학교에 친일인명사전 한 권 비치하는 일조차 이렇게 어려운 일이거늘, 올바른 역사적 단죄의 부재가 그 어느 때보다 뼈아프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누가.. 아울러 뭐가 그리도 두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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