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3.1절 전범기 디자인 신발 판매, 과연 도발인가

새 날 2016. 3. 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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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최초의 극화이자 제작에 들어간 지 무려 13년만에 어렵사리 개봉한 영화 '귀향'이 삼일절이라는 시기적 호재와 겹치면서 그 인기가 더욱 치솟고 있습니다. 무려 9일째 박스오피스 정상 자리를 차지한 채 신작들의 연이은 도전에도 굴함 없이 현재의 위치를 꿋꿋하게 지켜내고 있는 것입니다. 곧 2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한 글로벌 스포츠 업체가 등장하여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삼일절날 일본 전범기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한 신발을 국내에서 판매하여 논란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나이키는 지난달 27일 '에어조던12 레트로 더바스터'를 국내외에서 동시에 발매하고, 삼일절 당일에 일부 국내 매장을 통해서도 해당 농구화를 직접 판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사회 분위기로 비춰 볼 때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일본 전범기를 모티브로 한 제품이 뭐가 문제냐며 언성을 높이는 분들이 분명 계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독일 나치로부터 피해를 입은 국가에서 나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은 일종의 금기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웃국가 중국, 필리핀 등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지배를 받았던 국가에서는 전범기 노출이나 도안은 철저히 금기시되고 있는 사안입니다. 아픈 과거 때문입니다.

 

ⓒ뉴스1

 

일부 언론은 이번 나이키의 행위에 대해 도발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기사화에 나선 상황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도발이란 표현의 절반은 맞고 또 다른 절반은 틀린 것 같습니다. 나이키의 이러한 행위는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건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Rising Sun' 버전을 출시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름 자체에 이미 욱일승천이란 의미기 담겨 있는 데다 신발 밑창에는 일본 전범기와 매우 흡사한 디자인을 그려넣으면서 불거진 문제였습니다. 당시 국내에서의 나이키 브랜드에 대한 여론은 악화일로였습니다. 급기야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나이키는 국내에서 만큼은 밑창에 전범기 디자인이 빠진 제품을 출시하겠노라고 밝혔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키의 태도는 당시와 견주어 크게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나이키가 글로벌 회사로서 국내에도 별도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 제품을 판매할 때엔 우리식 정서에 맞추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에서 제품을 판매할 때에도 브랜드나 제품 명칭부터 세세한 기능까지 모든 걸 현지 정서와 사정에 맞추듯 말입니다. 이른바 현지화 전략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워낙 독보적이라 대체할 만한 경쟁 제품이 전무하여 해당 브랜드의 것이 아니면 절대로 안 되는 경우나 해당 국가를 아예 우습게 여기는 경우가 그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국내 법인을 둔 나이키가 한국의 국경일인 삼일절의 의미를 모를 리는 절대로 만무합니다. 게다가 2009년에 이미 비슷한 사례로 홍역을 치른 경험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만행에 항거하며 독립을 외치던 삼일절날 당당히 전범기로 디자인된 제품을 국내에서 판매하겠다고 나선 건 그만큼 우리만의 정서에 대한 고려 따위는 전혀 없이 우리를 철저하게 우롱하고 있노라는 방증입니다. 때문에 도발이란 표현의 절반은 맞다고 한 것입니다.

 

이를 구매한 일부 소비자들이 불쾌감을 드러내놓고 있다는 소식입니다만, 단순한 불쾌감 표현만으로는 비슷한 사례를 막기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을 꾸준히 구매하고 있기에 아쉬울 게 전혀 없는 나이키로서는 특별한 의식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문양이 그려진 신발이 전 세계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경악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을 외쳤던 그날을 기리는 기념일에 일본의 피해 당사국인 우리나라 한복판에서 해당 제품을 판매하겠다고 나선 나이키의 패기는 더욱 놀랍기만 합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윤도 이윤 나름입니다. 우리 민족이 겪어온 고통을 상품화하여 그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는 건 상 도의로부터 크게 어긋난 행위입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이키가 우리의 남다른 국경일인 삼일절조차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해당 제품을 판매하고 나선 건, 그만큼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일제에 대한 치욕을 잊어버린 지 오래이며, 심지어 일상에서 전범기로 디자인된 의상이나 제품을 흔히 사용하면서도 특별한 죄책감 따위 없이 행동해 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는 등 어느 순간부터 이에 대해 무감각해져버린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나이키가 우리에게 도발을 감행해 온 건 분명 맞습니다만, 이러한 도발을 자연스럽게 유도한 건 결국 우리 스스로라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나이키의 이러한 행위의 나머지 절반은 도발이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영화 '귀향'의 인기몰이는 우리의 비참했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새삼 일깨우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나이키의 이번 사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관련한 우리의 의식이 그동안 지나치게 무뎌진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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