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관례를 깬 육중완의 결혼식과 양성평등

새 날 2016. 3. 26. 13:13
반응형

5인조 록밴드인 '장미여관'의 멤버 육중완 씨가 지난 20일 결혼식을 올리며 품절남 대열에 합류했다. 결혼 적령기의 선남선녀가 결혼하는 건 사실 큰 화제거리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에 다른 연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의 결혼식이 유독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다름아닌 주례 때문이다. 같은 직업인이자 인생 선배이기도 한 가수 양희은 씨가 주례를 맡았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주례였다.

 

그동안 주례라고 하면 으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경향이 크다. 나 역시 이에 대해 딱히 의문을 갖지 않아 왔다. 그런데 양희은 씨가 주례를 맡았다는 소식을 접하며 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기라도 한 양 무언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일종의 편견이라는 벽에 갇혀 있던 셈이니 말이다. 사실 이는 오랜 관습이 빚어온 결과물 중 하나라 여겨진다. 물론 근래에는 많이 퇴색된 경향이 크긴 하나, 어쨌든 결혼식 주례에는 나름의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결혼식의 형태는 20세기 초반 서양의 교회에서 행해져 온 혼례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당시 주례는 하느님께 결혼식을 승인 받는 대행자로서의 역할이 주였다. 보통 목사나 신부가 담당했으며, 오늘날 결혼식에서의 주례는 이러한 서양 교회 혼례식의 집례자 역할과 우리 전통 방식의 결혼 집례자의 그것이 혼합된 형태다. 

 

ⓒ서울신문

 

결국 서양의 결혼 풍습이 우리의 전통혼례와 결합하면서 그의 흔적 중 하나인 남성 주례가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주례 하면 사회적 지위는 물론 명망마저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는 편견이 씌워져 있기도 하다. 사실 결혼식을 치러본 이들이라면 주례 문제 때문에 한 번씩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근래 들어 부부의 앞날을 위해 덕담을 해 준다는 주례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는 데다, 전통적인 의미의 주례사가 지루하고 현실에 잘 맞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주례 없는 결혼식이 유행이다. 아울러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의미의 주례를 구하느라 5만 원에서 2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주례 대행 업체를 이용하는, 웃지 못할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종교에 기댄 결혼식이 아닌 이상 일반적인 결혼식은 전통적인 의미의 주례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결혼식에 반드시 주례가 있어야 한다거나, 필요하다면 무조건 남성이 주례를 맡아야 한다는 건 일종의 편견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여성이 주례를 맡을 경우 여성만의 특유한 감성과 부드러움이 예비 부부와 하객들의 마음을 녹이고 결혼식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근래 딱딱함 일색인 획일적인 주례가 필요없다고 느껴지는 건 아마도 남성 위주의 주례 문화가 빚은 결과물일이지도 모른다. 결혼주례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된 주례 100명 가운데 여성은 2명 뿐이란다. 이쯤되면 주례는 일종의 금녀의 영역임이 분명하다. 

 

 

획일화된 결혼식 문화가 허례허식이라는 반성을 불러오고 있고, 합리주의를 표방하는 요즘 젊은이들에 의해 그 틀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건 대단히 반가운 소식이다. 스몰 결혼식과 주례 없는 결혼식이 유행하고 있는 현상은 그에 따른 결과 중 하나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 이젠 결혼식 주례를 여성이 맡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회로의 변모가 필요해 보인다. 육중완 씨의 결혼식은 그래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난 8일은 제108회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우리보다는 양성평등이 훨씬 잘 이뤄지고 있는 미국조차도 아직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지 못할 만큼 그 틀이 견고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앞서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자부할 만한 결과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에 따르면 한국의 성 평등 지수는 0.651로 145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115위로 인도나 네팔, 라이베리아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가장 심한 국가로 꼽힌다. 남녀 임금 격차는 36.7%에 이른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36.7%를 덜 번다는 의미이다.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3만3000원밖에 받지 못 한다. OECD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15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건, 우리나라가 말로만 양성평등을 부르짖고 있을 뿐, 여성들에게 있어 여전히 암울한 사회임을 입증하는 잣대다.

 

ⓒ뉴스1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OECD내 29개국을 대상으로 성별 고등교육 격차, 임금 격차, 고위직 중 여성 비율, 육아 비용, 남녀 육아휴직 현황 등 10개 지표를 종합한 유리천장 지수를 산출하여 최근 공개했다. 우리나라는 25점에 그쳐 안타깝게도 조사대상 29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여성의 삶이 고달픈 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미국 NYC 소비자 행정기관에 따르면 뉴욕에서 여성이 생활하는 데는 남성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통계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남성용과 여성용 상품의 가격차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여성용 보디케어나 헤어케어 등은 남성용에 비해 13%, 옷이나 가정 의약품은 8%, 액세서리류는 7% 이상 가격이 높았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흔히 접하게 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임금 수준은 남성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있으니 결국 이러한 결과들이 서로 맞물려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보다 여성들을 더욱 괴롭히고 있는 건 아마도 온라인 등에서 여성 혐오를 일삼고 있는 남성들이 득시글거린다거나, 일상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관행이 아닐까 싶다. 가수 육중완 씨의 결혼식, 어쩌면 보잘 것 없는 아주 사소한 변화일지는 모르나, 여성 주례가 갖는 상징성이 여전히 열악하고 척박하기만 한 여성들의 삶의 토대에 일대 변화를 가져와 양성 균형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