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 변화를 바란다면

새 날 2015. 12. 2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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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란 지금 당장은 그 결과가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있어 국가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중차대한 사안이다. 그동안 산아제한정책을 펼쳐왔던 중국마저 내년부터 해당 정책을 폐지키로 결정하는 등 전 세계는 이미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라는 공통의 덫에 깊숙이 빠져든 모양새다. 하물며 1.21명에 불과한 우리의 초저출산율은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묘책은 그동안 숱하게 제시돼 왔으며, 엄청난 혈세마저 쏟아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출산율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최근 정부는 3차 저출산대책을 마련,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애를 낳지 않으려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이를 해결하려는 방안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표피적 대안과 근원적인 치유가 불가능한 대증 요법만을 남발해 온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일보

 

이는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다양한 정책들이 효과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갖춰야 할 선제적인 조건들이 절실함을 입증하는 결과다. 우선 헬조선이라 불릴 만큼 젊은이들이 살아가기에 녹록지 않은 삶의 토대를 변화시켜야 한다. 물론 실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구조적인 문제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탓에 단시간 내에 풀어낼 사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아울러 애를 낳아 마음 편히 기를 수 있는 분위기와 사회 구성원들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 또한 함께 요구된다. 그렇다면 방금 언급한 두 사안 중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 무얼까? 아마도 후자인 사회 분위기 및 인식의 변화 아닐까?

 

때마침 이와 관련한 흥미있는 언론보도 하나를 접할 수 있었다. '男 육아휴직, '튀는 직원'으로 낙인 찍힌다' 라는 제하의 기사다. 제목만으로도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남자 육아휴직과 낙인이라는 표현이 모든 상황을 압축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 까닭이다. 지난 포스팅(국민 혈세 쏟아부은 저출산 대책, 왜 효과 없었나)을 통해서도 언급했던 사안이나, 현재 한국 남성 직장인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인 명목상 1년간이라는 긴 육아휴직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실제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기대에 크게 못미친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 노동자가 선뜻 육아휴직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건 너무도 뻔하다. 업무 공백이 생길 것이라는 직장 상사들의 따가운 시선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OECD 회원국 가운데 두번째로 노동시간이 길어 야근과 휴일근무가 밥먹듯 이뤄지는 상황이고, 여기에 휴직을 신청하게 되면 인력이 부족해져 결국 주변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와 맞닥뜨려야만 한다. 

 

 

이러한 결과는 자연스레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을 좋지 않게 만드는 인자로 작용한다. 삐딱한 인식은 육아휴직을 사용하려는 남성에게 주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도록 만들며, 그럼에도 휴직을 감행할 경우 뒷감당은 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결국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 내지 조금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악순환이 초래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웃국가인 일본 역시 우리와 처지가 매한가지인 듯싶다. 우리처럼 남성 유급 육아휴직 기간은 OECD 최상위권에 속하나 정작 이를 활용하는 남성 노동자가 극히 희박하다는 대목까지 판박이다. OECD 국가 가운데 일본은 남성의 육아휴직기간이 52주로 한국 다음으로 길었으나, 2011년 10월부터 2012년 9월 사이 남성 육아휴직자의 비율은 고작 2.03%에 불과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쯤되면 우리나 일본이나 도긴개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본의 한 30대 남성 국회의원이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22일 NHK에 따르면 자민당 소속의 미야자키 켄스케 중의원 의원이 내년 2월부터 1-2개월 가량 육아휴직을 얻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야자키 의원의 아내는 같은 중의원 의원으로 내년 2월께 출산할 예정이다. 이러한 사안이 보도될 만큼 일본 사회의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분위기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일본 중의원 사무국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육아휴직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야자키의 의지는 단호하다. 규정이 없는 만큼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휴가를 얻을 계획이란다.

 

물론 그라고 하여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맞닥뜨리게 될 현실적인 우려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 역시 유권자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인 탓이다. “지역 유권자들이 화내지 않을지, 육아 휴가 취득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지 불안하다”는 그의 언급을 통해서도 일본 사회의 우호적이지 못한 분위기를 엿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국회의원이 솔선해서 권리를 취득한다면 남성의 육아 참여가 진전되지 않는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신문

 

내가 미야자키의 행동을 높이 사는 이유 또한 이 지점에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딸이 태어나면 두 달 동안 육아휴직을 가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전 세계 페이스북 임직원들 역시 아이가 태어날 경우 4개월간 유급 육아휴직을 갈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도록 한 바 있다.

 

일본의 사례나 주크버거의 사례처럼 정치인이 됐든 아니면 경제인이 됐든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명망있는 인물 누군가가 나서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되면, 조금은 튀는 직원이라는 따위의 낙인을 찍고 있는 사회 분위기 및 인식에 미약하나마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지 않을까? 저출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 사회 역시 우선 바꿀 수 있는 부분부터 변화를 꾀해야 하는게 분명 맞다면, 일본의 국회의원 미야자키와 같은 선지자적 인물 누군가가 나서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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