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이애란 신드롬, '혼용무도'와 다름없다 전해라~

새 날 2015. 12. 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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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15년도 저물어간다. 물론 한 해의 마지막 해넘김 즈음이면 흔히 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올해가 여러모로 다른 해에 비해 유독 힘든 한 해였던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를 위로할 만한 소식은 전혀 없고 온통 우울한 현실과 잿빛 전망 투성이인 탓이다. 경제적으로나 정치 사회적으로나 녹록한 게 단 한 개도 없다는 건 정말 끔찍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지금 당장 우리 앞에 닥친 현실보다 가까운 미래의 일이 훨씬 불투명하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나마 뒤늦게 인기 가도를 달리며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해 주고 있는 대중가요 하나가 있다는 건 천만 다행인 일이다. 다름아닌 이애란 씨의 '백세인생'이 그 주인공이다. 이 노래는 재미난 노랫말로 인해 수많은 패러디물을 양산해 오고 있는 와중이다. 온라인 여기저기에선 '~한다고 전해라' 따위의 글들로 넘쳐나고 있으며,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녀를 모셔 오느라 서로 경쟁을 벌일 정도다. 뿐만 아니다. ‘백세인생’을 모티브로 한 카톡 이모티콘이 판매 1위에 등극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누군가 단순한 재미를 위해 그녀의 이미지에 노랫말을 붙이며 발단이 된 유행이 어느덧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커다란 반향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 영상화면 캡쳐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그를 뒷받침 할 만한 이유와 배경이 존재하는 법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이애란 씨의 극적인 인생 역전 드라마는 그 자체로 흥미를 끌 만한 요소임이 틀림없다. 이 노래는 1995년에 만들어진 곡이고, 2013년에 다시 편곡되긴 하였으나, 일반 대중에 알려진 건 거의 올해의 끝자락에 이르러서다. 무려 2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노래가 뒤늦게 인기를 구가하며 제대로 된 역주행을 시연하고 있는 셈이다.

 

이애란이란 이름 석자는 사실 내겐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생경한 이름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닐 테다. 25년 간의 무명생활 끝에 오늘에 이른 연예인인 탓이다. 그동안 그녀는 오로지 노래를 부르고 싶은 이유 하나로 양로원 등 자신을 찾는 행사장으로 달려가 공연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이 뒤늦게 빛을 발한 셈이다. 이러한 그녀의 인생사만으로도 극적인 요소는 다분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왜 대중들이 20년 동안이나 빛을 보지 못했던 노래에 뒤늦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인지 내겐 그게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단순한 재미에서 시작됐을 법한 현상이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데엔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호응이 뒤따랐기 때문일 테다. 그렇다면 그녀의 노래엔 어떠한 매력이 숨어 있는 걸까? ‘못 간다고 전해라~, 재촉 말라 전해라~’ 이러한 노랫말 안엔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여러 고충이 녹아들어 있다. 우선 평소엔 온갖 이유로 지극히 표현하기 힘든 자신의 진짜 속내를, 제3자를 통한 의사 전달 방식을 통해 속 시원하게 뱉어내는, 일종의 배설 욕구를 해소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사회 곳곳에선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대중들은 실제로 SNS 등을 통해 수많은 소통을 해오고 있으나 어쩐지 그에 빠져들면 들수록 신기하게도 오히려 더욱 공허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진정한 소통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형식적인 가짜 소통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토록 많은 소통을 해 오면서도, 아울러 그토록 소통을 해야 한다며 외치고들 있지만 우린 되레 소통에 목말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쩌면 진짜 소통을 바라는 욕구를 '~한다고 전해라' 따위의 형식을 빌려 일정 부분 해소 가능케 한 점도 인기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싶다. 일종의 대리만족감 따위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권력층은 국민들과의 소통 따위엔 안중에도 없으며, 아예 통로를 원천봉쇄한 채 오로지 일방통행식 통치 행위만을 일삼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건 분명히 그들의 책임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툭하면 제3자의 입장인 양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일이 버릇처럼 일상화되어 버렸다는 사실일 테다. 때문에 '~한다고 전해라'라는 화법은 권력층의 무책임과 무능함을 비난하는 대중들의 솔직담백한 마음의 표현이며, 작금의 패러디 현상을 통해 그러한 현실을 비꼬고 있는 셈이 아닐까 싶다.

 

유튜브 영상화면 캡쳐

 

한편,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가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이는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나라의 예법과 도의가 무너진 상태를 뜻하는 '무도'와 무능한 정치 지도자를 뜻하는 '혼군과 용군', 즉 '혼용'이 합쳐진 개념이다. 이애란 씨의 '백세인생' 신드롬 현상은 이 '혼용무도'와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올 한 해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였음은 두 말하면 잔소리일 테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야 능력 밖의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나, 적어도 국내에서 일어난 일들의 대부분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권은 온통 자신들의 이권에만 관심을 나타내고 있을 뿐, 무능함과 무책임으로 일관하며 국정 혼란을 야기한 끝에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리게 하고 있다.

 

결국 '~한다고 전해라' 라는 표현 속엔 무책임과 무능함으로 일관해 온 정치권과 지배 권력층을 향한 대중들의 무언의 항변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일종의 민의이자 경고다. 풍자 형식으로 발현되고 있는 작금의 신드롬 현상, 결코 가벼이 볼 사안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통은 일절 없이 앵무새와 같이 권력층과 정부의 입장만 전달하고 있는 다수의 언론을 매개로 민의를 왜곡하려 들고 있고, 그를 바탕으로 일방통행식 통치 행위를 일삼고 있는 권력층에 대한 일종의 경고 신호를 에둘러 대중가요를 통해 보내오는 간절한 현상일 수도 있다는 점을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될 테다.

 

"정신 차리라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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