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타인의 고통마저 상품화, 잔인함의 끝은 어디인가

새 날 2015. 12. 2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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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현재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며, 이를 피해 시리아를 떠난 난민들로 인해 유럽 전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한 여행사가 시리아 내전 현장으로 가는 여행상품을 판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CNN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여행사 '메가폴리스'가 내년부터 시리아 내전 현장 여행상품인 5일간의 '아사드 투어'를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상품 내용은 사뭇 구체적이기까지 합니다. 여행 가격은 항공편, 숙박, 식대, 안내 서비스를 포함하여 우리돈으로 180만원 가량이며, 생명보험 등 여행자보험은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행 코스는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해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도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현지 가이드와 함께 차량을 이용, 분쟁 지역을 둘러보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기획한 아나톨리 아로노프는 사람들이 시리아 전쟁을 궁금해 한다며 여행사는 관광객을 전쟁터로부터 1km 떨어진 지점까지 데려가지만 안전을 위해 더는 가까이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1991년 걸프전쟁이 벌어졌을 당시 CNN은 전쟁 상황을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전 세계에 생중계한 바 있습니다. 이는 미디어의 혁명이라 불릴 만큼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무선 통신망 시설이 여의치 않던 시절이었기에 당시 상업 방송사의 전쟁 상황 생중계는 놀라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상황을 전 세계의 다른 시청자들과 함께 동시에 안방에서 생중계로 시청할 수 있다는 건 흡사 꿈만 같은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결과가 마냥 반겨할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일방적인 이라크 포격을 우리가 TV로 시청하는 동안 정작 이라크인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은 어림 짐작만으로도 상상 그 이상이었을 테니까요. 이 전쟁으로 CNN은 시쳇말로 대박을 터트리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이라크는 나라 전체가 완전히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CNN이 오늘날의 규모와 지위로 성장하기까지 모르긴 몰라도 이라크 국민들의 고통과 희생이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했으리라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지난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를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감행할 당시 이스라엘 국민들이 가자 지구로부터 불과 1km 가량 떨어진 스데롯 언덕 위에 올라 소파와 의자를 갖다 놓은 채 맥주와 팝콘을 먹으며 이를 구경하면서 가자 지구에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환호성을 질러댔던 이른바 '스데롯 극장'이 국제적인 비난을 샀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한결 같이 이러한 이스라엘인들의 행위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던 이유는 다름아닌 타인의 불행을 한낱 눈요깃감으로 전락시킨 잔혹함 때문이었을 텐데요. 

 

시리아의 내전 지역을 여행하는 상품을 기획한 회사는 이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교육수준이 높은 중년의 남성들, 그 중에서도 무역업, 광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여행상품에 흥미를 보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는 보도기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 수단을 발굴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행위에 대해서는 뭐라 할 바 아닙니다.

 

ⓒAFP

 

하지만 자신들이 이익을 얻는 대가로 다른 이들, 구체적으로는 시리아 국민들이 현재 겪고 있을 고통과 눈물을 한낱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일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요? 돈 앞에서는 아군 적군도 없는 데다 천륜마저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타인의 아픔을 돈벌이로 삼는 건 같은 사람으로서 너무 가혹한 행위가 아닐까요? 해당 여행상품을 만든 회사는 여행객들의 안전을 위해 내전 지역 1km 이내로는 더 이상 접근을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안전에 대해선 끔찍이 걱정하면서도 정작 타인의 고통을 보며 이를 즐기고자 하는, 매우 잔인한 속성을 드러내놓은 게 아니면 과연 무얼까요?

 

우리 인류는 도대체 얼마나 더 잔인해져야 할까요?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고 보듬어 주기보다 이제는 이를 오히려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는 행위마저 비일비재하니 말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CNN 등을 비롯한 미디어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볼거리를 보다 선정적이며 충격적인 것으로 포장, 상품화하여 내놓으면서 이제 이러한 현상은 이미 일상이 돼 버렸고, 어느덧 대중들은 그러한 것들에 점차 무감각해져 가고 있는 듯싶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폭격을 당해 죽어 나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바라보며 마치 영화를 관람하듯 맥주를 마시고 또한 환호성을 내지르는 현상이 단적으로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AFP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던 미국의 수전 손택은 과거 그녀의 저서 '타인의 고통'을 통해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거대 언론들이 발행 부수와 시청률에서 보다 앞서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상품화하고 있다. 그의 가장 대표 격이 이라크 전쟁인데, 이를 통해 타인의 고통이 스펙터클한 구경거리로 소비되었던 건 언급조차 하기 싫을 만큼 매우 끔찍한 경험이다"

 

그렇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이용한 돈벌이에 점차 무감각해져 가는 우리의 불감증은 폭격 장면을 구경하면서 박수치거나 환호성을 지르는 일로부터 더 나아가 급기야 전쟁을 구경하기 위한 여행상품까지 만들어내는 비극적인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당사자가 아닌 이유로 다른 나라의 전쟁이나 내전을 한낱 구경거리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감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그들이 현재 처한 어려운 상황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욕심만 버리더라도 그들의 고통이 지금처럼 배가되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람보다 상품이 대접을 받으며 세상의 중심에 위치한 시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커녕 고통마저 모른 척 눈을 감고 외면하는 건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세상을 앞당기는 결과밖에 더 될까 싶습니다. 잔인함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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