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어느 지방대 시간강사의 절규

새 날 2015. 12. 14. 13:07
반응형

최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바 있고, 또한 같은 이름의 페이스북을 운영해 오고 있는 김민섭씨의 대학 시간강사직을 그만둔다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실제로 김씨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학을 그만두겠노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그동안 모 대학의 시간강사로 근무해 오면서 열악한 근무 조건과 처우를 세상에 알려왔던 인물이다. 그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1년 넘도록 직접 패스트푸드점 근무를 병행해 왔다고도 한다. 그가 시간강사직을 그만둔다고 밝힌 글로부터는 그동안 겪어 왔을 아픔들이 절절하게 묻어 나오고 있다.

 

"대학보다는 거리의 패스트푸드점이 저를 ‘노동자’로 그리고 ‘사회인’으로 대해줍니다. 대학이 기업을 흉내내며 자본의 논리에 영합하기 이전에, 모든 구성원들을 노동자로서 대우해야 합니다.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에도 모든 노동자를 위한 매뉴얼이 있는데, 대학에는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연구할수록 가난해지고, 강의할수록 힘겨워지는데, 대학은 ‘학문의 길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환상과 검열을 강요합니다”

 

 

그는 현실적으로 대학의 시간강사가 겪을 수 있을 법한 여러가지 종류의 어려움들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턴제, 계약직,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른바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나 혹은 '열정 페이'와 같은 사탕 발림 속 노동 착취의 수단으로 활용돼 오고 있는 온갖 자본의 도구들이 진리 탐구의 모체인 대학 사회에까지 파고들어 온 현실을 너무도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잊고 지내 온 사실 하나가 있다. 지난 2010년 조선대 강사였던 고 서정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우리 사회엔 대학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 개선의 목소리가 봇물을 이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마침내 '시간강사법'이라는 법안 하나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이 법은 애초 취지와는 달리 강사들을 대량 해고 사태로 내모는 결과를 낳았고, 때문에 이의 시행을 3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미뤄 온 바 있다. 

 

 

어느덧 유예기간이 모두 지나, 2016년 1월 1일부로 해당 법이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법 시행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또 다시 법 시행 유보를 추진하기로 한 정부 방침이 전해졌다. 시간강사법은 강사에게 교원 지위인 강사직을 주고, 1년 이상 임용해야 하며 주당 9시간 이상의 강의를 전담케 하고, 4대 보험 적용을 보장해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시간강사의 처우가 좋아지는 만큼 그의 반대급부로 학교의 재정 부담 증가가 문제로 부각되었다. 결국 대학들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시간강사를 줄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방향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 대학들은 법에서 정해진 대로 강사 처우를 개선하는 대신 기존 교수와 일부 강사에게 강의를 몰아주고, 시간강사들과는 계약을 해지하는 구조조정에 일제히 착수했다. 해당 법은 결국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이 아닌, 구조조정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형태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온 셈이다. 시간강사법은 원래 2013년 1월 1일자로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2016년 1월 1일로 그 시행을 미룬 바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시간강사법 시행을 불과 보름 가량 남긴 시점에서 또 다시 이의 유예를 공식화했다.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지난 11일 대표발의한 관련 법안에는 2016년 1월 1일부터 시행 예정인 시간강사법을 2년 유예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애초 정부는 법 시행을 유예할 당시 유예기간 동안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겠노라고 약속한 바 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은 채 법 시행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급작스레 또 다시 유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학가는 일제히 혼돈에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다. 대학들은 예산 절감 차원에서 시간강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이에 따라 수많은 시간강사들은 재계약을 하지 못해 길거리로 나앉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대안 마련조차 없이, 그것도 법 시행이 임박한 상황에서 또 다시 시행을 유예하고 나선 셈이니, 강사 운용에 애를 먹고 있는 대학 측 입장이나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된 시간강사 측 입장이나 난감하기로 따지자면 도긴개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동안 무얼 한 걸까? 벌써 세번째 법 시행을 유예하기까지, 더구나 스스로 대안을 만들겠다고 해놓고선 아직까지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은 건 일종의 직무 유기가 아닌가? 3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던 건 교육 현장의 개선 요구를 받아들이고 문제점이 무언지 파악하여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 사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와 같은 수많은 시간강사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청춘 시기 열과 성을 다하며 학문을 닦아 왔던 대학을 떠나가고 있다. 미처 이에 대비하지 못한 대학들은 강사 운용에 애를 먹고 있고, 생계가 달린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속절없이 강단을 떠나야 하는 시간강사들은 또 누가 책임져야 하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