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누리과정 예산 갈등, 국민은 안중에도 없나

새 날 2015. 12. 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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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예산안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386조3997억원 규모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자 국가 정책인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은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지방 시도교육청에 맡겨졌다. 국회는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필요한 2조1000억원 중 예비비 3000억원만 편성하고, 나머지 금액은 시도교육청들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을 통해 각자 알아서 해결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목적 예비비로 관련 예산 3000억원을 편성한 만큼 지방 교육청이 나머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라는 입장인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3000억원은 노후화장실 개량, 찜통교실 해소 등의 명목으로 편성된 예비비이기에 실제 누리과정 예산은 단 한 푼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기획재정부도 거들었다. "좋아진 지방교육재정 여건을 고려할 때, 지방교육청도 더이상 재원 사정을 이유로 의무지출경비인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지 않고 2016년 누리과정 소요 전액을 예산에 편성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컷뉴스

 

그렇다면 정부와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지방 교육청들의 교육재정 여건이 좋아진 게 분명 맞는 걸까? 그러나 전국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이들의 채무가 급증해 내년 말에는 17개 교육청의 채무 총액이 20조원을 웃돌 것이란 암울한 전망 일색이다. 올해 말 전국 교육청들의 지방채 잔액은 10조7천164억원, 민간투자사업 잔액 합계는 6조3천976억원으로, 두 금액을 합친 채무총액은 17조1천140억원에 달한다. 내년도의 전망은 더욱 우울하다. 채무총액은 20조3천676억원으로, 채무 비율이 무려 36.3%까지 급등할 것이라 예상됐기 때문이다. 전국 교육청의 평균 채무 비율은 2012년 17.7%, 2013년 18.2%, 2014년 19.8%로 완만하게 늘다가 올해를 기점으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2014년 28.8%에서 내년에는 36.8%까지 급등할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의 주장과는 달리 이처럼 교육청의 채무비율이 급등하고 있는 것은 각 시도교육청이 누리과정을 부담하면서 예산 부족분에 대해 지방채를 발행하여 충당해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교육청들은 내년에도 누리과정으로 편성된 예비비 3천억원을 제외하고 1조8천억원 가량이 부족한 탓에 지방채를 발행하여 상당 금액을 충당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경제여건의 악화로 세수가 감소한 데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누리과정을 교육청이 떠안으면서 교육재정이 악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선 교육청의 어려움이 가중되자 일부 교육청에서는 교직원의 인건비를 깎아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밝혀 물의를 빚기도 한다.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지난 2일 제주도교육청이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을 계수조정하며 도교육청 소속 인건비 73억원을 삭감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으로 쓰겠다고 밝히면서 파장이 일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다수의 교육청은 누리과정이 중앙정부 사업인 만큼 전액 국고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차원에서 지방채 발행을 거부하고,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없노라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정부와 시도교육청 간 힘겨루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며, 자칫 보육 대란마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정부 들어 해마다 겪고 있는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한 충돌로 인해 전국의 어린이집 이용 아동과 그 학부모들 그리고 예비 학부모들 모두는 자신들에게로 불똥이 튈까 봐 불안감에 떨고 있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누리과정에 대한 국가책임을 반드시 실천하겠다”며 ‘0~5살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 실현’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내 정부와 새누리당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며 버텨 오다 급기야 지난 10월 누리과정 예산을 아예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중앙부처가 시도교육청 등에 예산을 교부할 때 강제 편성하도록 한 경비)로 못박는,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시행에 들어갔다. 공약을 스스로 파기한 것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아무 죄 없는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와 집권 여당은 예산 부족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결과가 비단 예산 부족 때문만이 아님은 명백하다. 한동안 국회에서 자취를 감췄던 쪽지예산이 이번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다시 부활했다는 소식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회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의 테이블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사업 예산이 크게 증액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국회의원들이 50여건의 쪽지예산을 건넸으며, 증액분은 모두 여야 간사 등을 통해 비밀리에 밀어 넣어진 것으로 파악됐단다. 기획재정부 등 일부 정부 부처에서도 숙원사업을 밀어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총선을 앞둔 이른바 선심성 예산이다. 이로써 당초 없던 예산이 6,500억원에서 3조원 가량 증액 편성된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노컷뉴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정부와 새누리당은 총선을 앞두고 오롯이 선거 승리라는 정치적 이권에만 매몰된 채 지역구 민심을 챙기며 선심성 예산을 마구 편성하면서도 정작 누리과정에 해당하는 전국의 아동과 학부모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총괄하고 있는 교육청의 어려움에 대해선 나몰라라 외면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땅히 중앙정부에서 책임져야 할 예산을 자꾸만 시도교육청에 떠밀며 책임을 회피한다는 건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에만 눈이 멀어 있을 뿐 국민들의 고충은 눈곱만큼도 돌아보지 않고 있노라는 의미가 아니면 무엇인가. 

 

예산이 없긴 왜 없나. 적어도 추가로 편성된 선심성 쪽지예산의 액수만큼을 누리과정으로 돌리기만 해도 작금의 혼란과 불안은 애초 발생하지도 않았을 일 아닌가. 쪽지예산을 편성할 정도의 여력과 능력이 있으면서도 허구헌날 무슨 예산 타령인가. 무상보육이며 저출산 대책 따위는 또 다 무언가. 이렇듯 툭하면 말을 바꾸며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펴기 일쑤이니 국민들이 어떻게 애를 낳을 것이며, 또한 마음 놓고 키울 수 있겠는가. 정부와 여당은 결국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과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정치를 하고 있음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는 게 아니면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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