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민 혈세 쏟아부은 저출산 대책, 왜 효과 없었나

새 날 2015. 12. 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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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저출산 대책을 이번달에 발표할 예정이다. 역대 최대 규모인 5년동안 무려 200조원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되는 거대 사업이다. 이번 정책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저출산 분위기를 획기적으로 바꾸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전언이다. 일례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대폭 강화하겠단다. 구체적으로는 남성 육아휴직자에게 50%수당을 더 주는 기간을 석 달로 연장하는 데서, 더 나아가 지급기간과 수당을 대폭 늘리겠다는 복안까지 마련됐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 10월 ‘제3차 저출산 고령 사회 기본계획’ 시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시안은 과거 10년간 120조원을 쏟아부으면서도 출산율이 고작 1.21명에 그치며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 터라 앞선 1,2차 대책에 살짝 살만 붙인,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정책에 불과하다는 호된 비난을 자초해야만 했다. 핵심을 비껴간 대책들 때문이다.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발표할 이번 저출산 대책에는 과연 어떠한 내용이 담겨 있을지 관심이 증폭된다. 그런데 이러한 시점에서 그동안 정부의 대책이 왜 실효를 거두지 못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가 될 만한 자료가 공개돼 화제다. 

 

ⓒ연합뉴스

 

OECD의 '가족 데이터베이스 2015'에 따르면 한국의 '아버지에게만 주어지는 유급휴가', 즉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 보장기간은 52.6주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막상 사용률은 여타의 회원국들에 비해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육아휴직자의 평균 휴직 기간은 8.6개월이며 남성은 5.2개월에 불과했다. 물론 통계청의 자료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출산 및 육아휴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3천421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 7만6천833명 가운데 4.45%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가 마련한 제도는 여타 국가에 비해 잘 갖춰진 편이나 여건상 한국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기엔 아직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노라는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조차도 만만치 않은 처지에서 당장 회사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분위기인 터라 남성이 육아휴직을 낸다는 건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에 불과한 일일 테다. 공무원 내지 일부 공기업  등에서나 제대로 이뤄질까 일반 사기업에서는 여전히 남의 나라 얘기일 테니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드라마 '송곳'에서 언급된 '산재신청률은 최저인데, 산재사망률은 최고'인 현실과 흡사하다.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근사한 음식들이 상 위에 한가득 차려져 있으나, 정작 필요한 이들에게 해당 혜택이 돌아가지 못한다면 말그대로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을 테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현상은 다른 영역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정부가 출산장려 정책을 쓴다며 예산을 책정했지만, 예산이 엉뚱한 데로 가는 경우가 많거나 시간이 흘러 해당 예산을 은근슬쩍 줄이고 심지어 폐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JTBC의 보도에 따르면 둘째 출산 가정에 100만 원, 셋째를 낳으면 300만 원을 지급해 오던 인천시가 재정난 때문에 내년부터 출산장려금 지급을 중단키로 결정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 속초, 광주광역시 동구 등도 출산장려금을 큰 폭으로 줄이거나 폐지하겠단다. 그밖에 양육수당이나 신생아 건강보험료 지원 등 출산 관련 예산을 줄이는 곳도 부지기수이다. 정부가 출산 대책을 내놓았으면서도 정작 출산장려 예산을 보조해달라는 지자체의 요구를 거절해 온 탓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양상이다.

 

아울러 저출산 대책과 전혀 무관한 사업에 해당 예산이 쓰이는, 말도 되지 않는 현실도 지적됐다. 지난 2011년부터 올해까지 진행된 제2차 저출산 사업의 집행 내역을 뜯어보니, 그 안에는 한옥 관광 자원화 사업 25억원, 인터넷 중독 예방 사업 146억원, 성범죄 예방 사업 4400억원, 청소년 해외 교류 수억원, 생애주기별 식생활 연구비에 수천만원이 투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항목은 저출산 대책과는 전혀 무관한 까닭에 지나치게 실적을 부각시키기 위한 일종의 보여주기식 행정의 결과가 아닌지 매우 의심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오히려 출산율이 점점 후퇴하고 있는지 충분히 납득 되고도 남는 상황이 아닐까? 작금의 정책이나 예정된 3차 대책 시안도 마찬가지이긴 하나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왔거나 향후 추진할 저출산 대책의 핵심은 대부분 보육료 지원을 통한 육아부담 덜어주기 따위에 집중돼 온 경향이 크다. 청년세대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가 단순히 보육 문제 때문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모순들의 결정체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외면한 채 당장 눈에 보이는 피상적 대책에만 집중해 온 것이다.

 

JTBC 방송화면 캡쳐

 

때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비록 핵심을 비껴간 대책이긴 하나 그나마 기존의 대책과 제도만이라도 제대로 운영되었더라면 적어도 합계 출산율 1.21명이라는 초저출산국가 범주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사실 말이다. 3차 저출산 대책은 5년동안 2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초대형 사업이다. 이 돈은 모두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다름아닌 국민의 혈세다. 이토록 큰 예산을 투입한다는 건 저출산 현상을 방치했다가는 자칫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정부가 직시하고 있노라는 방증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앞선 정책들이 왜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정부는 처절한 반성과 고민을 충분히 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스러운 건, 아무리 좋은 제도와 정책적 지원이 따르더라도 앞에서 든 사례들처럼 사회 전반의 분위기나 여건이 무르익지 못해 해당 제도들이 유명무실하게 되거나, 대책 발표시에만 요란법석을 떨더니 결과적으로는 가까운 훗날 유야무야되고, 아울러 실질적인 효과를 얻으려 하기보다 실적을 부각시키기 위한 엉터리 예산 집행 등의 관행이 여전하다면, 이번 대책 역시 깨진 독에 물붓기로 그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200조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됨에도 여전히 저출산의 늪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큰 재앙이 어디 있겠는가. 발표를 위해 지금도 열심히 해당 정책을 다듬고 있을 정부가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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