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소주를 더 이상 '서민의 술'이라 부르지 말라

새 날 2015. 12. 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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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연말 시즌입니다. 일년 중 그 어느 때보다 술자리가 많을 것이라 생각되는 시기인데요. 그런데 하필이면 이러한 때에 주로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곤 하던, 이른바 '서민의 술' 소주의 가격이 인상됐다는 우울한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지난달 30일 소주업계 1위 하이트진로는 3년 만에 원자재가격 누적 인상분을 이유로 대표 브랜드인 '참이슬'의 출고가격을 5.62% 올렸습니다. 이로써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클래식의 병당 출고가는 961.70원에서 54원 오른 1015.70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출고가격 5.62%의 인상만이 아닙니다. 일단 소주의 대표 브랜드라 할 수 있는 '참이슬'의 인상은 여타 경쟁 업체의 소주값 인상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는 식당이나 술집 등 업소에서 파는 소주값의 도미노 인상을 부르고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집에서 가끔 한 병씩 사다가 홀짝홀짝 드시는 분들이야 큰 타격을 받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소주 소비자들이 주로 대중음식점이나 술집 등에서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 이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예상 외로 크게 와닿을 것 같습니다.

 

ⓒ뉴스1

 

일례로 현재 음식점에서 소주 한 병이 통상 3천원 내지 4천원 가량 하고 있는데, 출고가의 인상은 이를 천원 단위로, 즉 4천원 내지 5천원으로 대폭 올려 놓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곳 저곳에서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병당 54원밖에 올리지 않은 소주값이 왜 음식점 등 업소로 넘어오게 되면 그때부터 그의 20배인 1000원까지 인상되는 것인지 업주들을 한없이 원망해 보기도 합니다. 앞으로 집에서만 소주를 소비하겠노라는 다소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계십니다. 업소용으로 공급되는 소주의 유통 과정을 제대로 알 리 없는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하소연입니다. 

 

그런데 사정을 알아 보니 음식점 등 업소들의 입장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출고가가 인상될 경우 도매가도 통상 15-20% 가량 오르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업소를 운영하고 계시는 자영업자들이 받게 되는 가격 부담 역시 30% 이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단번에 1천원씩 인상을 하는 건 그다지 바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 소주병의 공병 보증금을 40원에서 100원으로 인상할 계획이 알려지자 벌써부터 소주 가격의 들썩거림 현상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즉, 음식점 등을 운영하고 계시는 자영업자 분들 입장에서는 소주 매출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터라 약간의 인상 요인만으로도 그때마다 소주값을 대폭 인상하는 패턴을 반복해온 까닭입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업소들의 생리를 전혀 모를 리 없는 소주업계가 출고가를 인상한 게 원죄임은 분명합니다. 이번 인상으로부터는 업체간 시기를 달리함으로써 가격 담합이라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간 흔적도 엿보입니다. 지난 2013년 인상할 당시에도 하이트진로가 참이슬의 출고가를 8.19% 올린 것을 신호로, 롯데주류가 처음처럼의 출고가를 8.8% 인상한 바 있습니다. 그 이전의 인상 시기였던 2003년과 2004년 그리고 2008년 출고가 인상 시에도 하이트진로가 먼저 올리고 롯데주류가 그 뒤를 잇는 패턴은 반복돼 왔습니다. 

 

 

'처음처럼'으로 소주업계 2위를 지키고 있는 롯데주류는 아직 인상 소식이 없습니다만, 이러한 과거의 패턴을 놓고 볼 때 조만간 인상 소식이 들려 올 것이라 점쳐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방과 중소 소주 제조업체들이 하이트진로의 가격 인상 소식과 동시에 인상 대열에 발빠르게 합류한 것만으로도 이러한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런데 소주값 인상이 실질적인 물가 인상 효과로 와닿아 가뜩이나 팍팍한 살림살이 때문에 더욱 고달파지는 서민들이지만, 이로 인해 쾌재를 부르는 부류들도 있군요. 다소 의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주 업계야 두 말 하면 잔소리일 테고요. 그보다는 담뱃값 인상으로 일찌감치 세수 증대 효과를 누리고 있는 정부가 그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술값의 72%는 주세에 해당합니다. 그 안에는 교육세와 부가가치세가 따라 붙기 때문에 실질적인 순수 주류와 관련한 세금은 53%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인상된 소주의 출고가가 병당 54원이니, 정부 입장에서는 대략 29원 가량의 세금 인상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수 부족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서민들의 기호식품인 소주의 가격 인상을 통해 손쉽게 메우는 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다시피 소주라는 술은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대표 기호식품입니다. 이른바 돈 좀 있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들은 이러한 값싼 술 따위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굳이 술을 마시고자 한다면 아마도 고가의 고급 주류를 찾지 않을까 싶군요. 주로 서민들이 즐겨 마시는 소주의 가격을 인상한다는 건 여러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주류업계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실제로 원자재 가격의 인상 때문일 수도 있겠고요. 아니면 오롯이 서민들로부터의 세금 인상 효과를 노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원자재 가격이 진짜 가격 인상의 원인이 되는지부터 살펴 볼까요? 근래 소주 도수가 많이 낮아졌습니다. 이는 과일향을 첨가한 저도수의 소주를 개발, 열심히 마케팅한 결과인데요. 특히 여성들의 호응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로 인해 소주 애주가들이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요. 자, 이렇듯 소주업계는 저도수의 소주를 앞세워 애주가들을 대폭 늘리는 효과를 톡톡히 누렸고, 아울러 도수가 낮다는 건 소주의 원액 부담이 줄어든 게 아닐까 싶은데 오히려 원가 부담 때문에 가격을 인상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의심스러운 건 오직 하나인데요. 그렇습니다. 또 다시 가장 만만한 서민들로부터 손쉽게 세금 인상 효과를 누려보겠노라는 계략(?)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머니위크

 

음식점에서 5천원씩 받는 술을 과연 서민의 술이라 칭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서민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을 수 있었던 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편히 마실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요? 이 시점에서 더욱 우려스러운 건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내년에 적용될 경우 소주병 공병 보증금이 올라 소주 가격의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대목입니다. 어느덧 소주를 서민의 술 목록으로부터 지울 때가 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 연말인 데다 소주값 인상으로 열 받으시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오늘 소주나 한 잔 할까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앞으로는 음식점 등 업소에 들러 소주를 마실 경우 사전에 얼마씩 받는지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업소의 눈탱이로 가뜩이나 얇은 지갑, 더욱 얇아져선 곤란하니까요. 제 지갑은 소중하잖아요. 더욱 바람직스러운 건 이참에 소주를 아예 끊어보는 건 어떨까요? 아니 술 자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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