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인터넷 명예훼손 심사 확대 시도, 막아야 하는 이유

새 날 2015. 9. 2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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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비단 얼마 전 불거졌던 포털 규제 논란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이슈화 됐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위 마약 건을 사례로 들자면, 이와 관련한 개인의 의사나 댓글 등에 대해 제3자의 신고만으로도 명예훼손 심의가 가능해지는 탓이다. 더구나 이러한 장치는 정치적으로 얼마든 응용 가능하거나 편법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권리가 크게 훼손될 우려마저 점쳐지는 상황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 24일 피해 당사자의 신청 없이도 인터넷 게시글의 명예훼손 여부에 대한 심의를 개시하고 삭제,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을 입안 예고했다. 지금까지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에 대해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당사자 혹은 당사자의 대리인만 명예훼손 여부에 대한 심의 요청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 당사자나 그 대리인이 아닌 제3자라 해도 얼마든 명예훼손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했고, 한 발 더 나아가 아무도 심의요청을 하지 않더라도 방심위 자체적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명예훼손으로 판단, 직권으로 게시물을 삭제 또는 차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연합뉴스

 

방심위가 심의 규정 개정안을 들고 나온 배경은 이렇다. 인기 아이돌 멤버 중 한 명인 '경리'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그녀의 이미지가 한 대학교 축제 주점의 메뉴 배경으로 활용되었는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척 선정적인 의도로 무단 도용됐다. 이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급속히 유포된 바 있고, 이에 상처 입은 당사자로선 당장이라도 이들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겠지만, 정작 문제는 디지털의 속성상 문제의 데이터들이 이미 수없이 퍼져버린 상황이라 이들이 탑재된 사이트들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현행 심의 규정에 따르면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하는 이들은 피해 당사자나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들로 한정되는데, 이 때문에 신속한 대처가 어려워 피해자들이 발만 동동 굴리는 처지에 놓이기 일쑤란다.

 

즉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로 제3자의 적극적인 신고나 방심위 직권만으로도 신속하게 이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이번 심의 규정 개정안의 주요 취지이자 논리이다. 개인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성행위 동영상 유포 등 불법 게시글에 대한 단속 권한이 강화돼 그로 인한 무차별적 피해를 막는 데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란다. 참고로 지난해 인터넷에 자신의 '성행위 동영상'이 게시돼 민원을 제기하여 삭제한 경우는 1천400건이 넘어 하루 4건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긴 하다.



물론 무분별한 악성댓글, 근거 없는 유언비어의 확산 그리고 명예훼손을 일으킬 수 있는 데이터의 무차별 배포 등 온라인으로 인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아울러 그에 대한 주위 환기와 적절한 조치가 시급한 상황임도 분명하다. 그러나 방심위가 들고나온 논리 이면의 드러나지 않고 있는 부작용은 일종의 벼룩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효과와 진배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권능을 휘두르고 있는 셈이라 심히 우려스럽다. 지난해 9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며 법무부와 검찰에 대응을 주문한 바 있고 그에 따른 대책 중 하나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정작 제3자와 방심위의 직권 심의는 자칫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부나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 여론을 차단시키는 장치로 오용될 개연성이 크다. 일례로 대통령을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제3자가 이를 명예훼손 혐의로 방심위에 신고할 경우 마구잡이로 글이 삭제되거나 심지어 사법 처리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비단 대통령뿐이겠는가. 영향력이 큰 유력한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효력이 미치지 않겠는가. 바야흐로 방심위가 개인들의 명예훼손 피해를 막겠다는 논리를 이용하여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겠노라는 의지로 읽히는 건 비단 나뿐일까?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공동논평을 내고 “통신심의규정 개정은 대통령과 고위공직자,권력자와 국가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을 손쉽게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될 우려를 낳고 있는 권력을 위한 특혜성 보호규정인 동시에,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고 비판한 것이나 시민단체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비등한 것도 다름아닌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최근 6년간 검찰에 제기된 명예훼손 고발 779건 중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55건으로 전체의 8.3% 수준에 불과하단다.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검찰도 이토록 기소율이 낮은 상황이고,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명예훼손죄를 없애는 추세이거늘, 방심위가 인터넷 명예훼손을 심의하겠다고 나섰으니 이쯤되면 코미디 아닐까?

 

ⓒ머니투데이

 

방심위 역시 이렇듯 우려하는 여론의 향배에 대해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닌 눈치다. 논란이 일자 박효종 위원장이 ‘공인에 한해서는 제3자 신고만으로 심의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즉 별도로 규정한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성 글의 경우 법원 판결 전까지는 삭제 조치 하지 않는 내용의 단서조항을 달자는 의견이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공인’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 때문에 관련 내용이 이번 개정안에는 빠진 채 원안 그대로 처리되고 말았다. 물론 공인의 개념과 범주를 별도로 정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결코 될 수 없지만 말이다. 특정 인물을 공인이라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을 뿐더러 굳이 규정한다 해도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한계지을 수 없는 맹점으로 인해 얼마든 편법적인 방법이 동원될 여지가 많은 탓이다. 

 

방심위는 앞으로 20일간의 여론 수렴을 거쳐 개정안을 확정할 예정이란다. 현재의 개정안으로 확정될 경우 정부나 여권을 향한 비판적 표현의 콘텐츠들은 앞으로 무차별적으로 삭제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방심위를 이루고 있는 위원 9명 중 6명이 여당 추천위원이고 다수결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이번 개정 작업을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정부나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무디게 한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비단 정치적인 표현뿐 아니라 일상에서 이뤄지는 온라인상 소통에 있어 제3자의 신고나 방심위의 심의만으로도 콘텐츠 삭제가 얼마든 가능해지기에 무분별한 심의 증가로 인해 개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되리라는 점 때문이다. 결국 우리 모두의 권리가 침해 받을 공산이 커졌다. 따라서 방심위의 심의 규정 개정 작업은 지금이라도 당장 중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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