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사회 불평등 구조 키우는 정부의 정책 기조

새 날 2015. 9. 1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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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1일 국회에 제출한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계획'을 통해 증여세를 인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고령화의 진전으로 구조적인 소비 부진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변칙적인 증여를 방지하는 한편, 세대간 부의 이전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이를 보완하겠노라는 의미입니다. 증여세란 타인의 증여에 의해 무상으로 취득한 재산에 대해 이를 취득한 사람에게 부과하는 조세입니다.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에 이뤄지는 재산적 권리 이전이 가장 보편적인 사례입니다. 상속의 경우는 사후에 이뤄지는 형태이고, 증여는 생전에 이뤄진다는 게 둘의 차이점입니다.

 

정부는 젊은 세대로 부의 이전을 촉진하기 위함이 증여세 인하의 취지라고 밝혔습니다. 청년실업으로 고통 받고 있는 청년층의 현실을 고려, 증여를 통해 부모의 자산을 이들에게 원활히 흘러 들어가게 유도하고, 상대적으로 소비를 적게 하는 고령층의 자산이 소비를 많이 하는 청년층으로 이전될 경우 소비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부의 증여세 인하 추진 배경은 일종의 꿈보다 해몽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합뉴스

 

왜냐하면 증여세란 자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에 비례해 혜택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까닭에 결국 이마저도 일반 서민들에겐 먼 나라 얘기일 뿐, 이의 인하는 결국 금수저나 적어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자들에게 부의 대물림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를 통해 실제로 증여가 늘어난다 해도 그 결과가 소비 활성화로까지 직접적으로 이어지리라는 전망은 언감생심에 불과해 보이는 탓입니다.

 

이러한 정책은 기업이 돈을 벌면 벌수록 그 혜택이 노동자들에게까지 이어져 결국 경기가 되살아나게 하는 선순환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며 친재벌, 친기업 정책으로 일관해오던 그동안의 정부 정책 기조와 판박이입니다. 하지만 이른바 낙수효과라 불리는 해당 이론은 이미 오류로 판정이 난 지 한참 전의 일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정부와 여당이 11일 노동개혁 입법 독자 추진 방침을 밝히며, 마침내 노동계에 최후통첩을 보낸 것입니다. 노동개혁이란 게 물론 겉으로는 청년 일자리 확충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돼 있습니다만, 그래서 표피적으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실제로 개혁의 의미로 와닿을 가능성이 크겠습니다만, 결국 정부와 여당의 안을 그대로 밀어붙일 경우 정작 노동계의 의견은 배제된 채 철저하게 기업에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공산이 매우 큽니다.

 

 

사업 축소에 방점이 찍힌 복지정책 또한 문제 투성이입니다. 복지부는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앙정부 사업과 중복된다고 판단한 지자체 복지사업에 대해 전수조사에 나선 뒤 그 중 무려 1,496개의 사업에 대해 통폐합할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이로 인해 645만여명에 해당하는 기존 복지사업의 수혜자가 앞으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될 전망입니다. 그밖에 ‘복지 재정 3조원 절감’을 명분으로 추진되는 복지재정 효율화 정책 역시 빛과 같은 속도로, 아울러 범 정부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조직개편도 이미 마무리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중복되거나 방만하게 운영되는 제도의 정비와 효율화는 가뜩이나 열악한 재정 때문에라도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긴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구체적인 해소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식 축소로 밀어붙이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이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를 다량으로 발생시킬 개연성 때문에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기조가 우리 사회에 빚고 있는 불평등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크고 넓게 드리워진 형국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세계 112개국의 경제 상황을 비교 분석하여 펴낸 ‘2015 포괄적 성장과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복지, 세제 등 소득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이 주요 선진국에서 최하위권인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세제와 복지 등이 30개 선진국 중 21위에 그쳤으며, 복지 정책만을 따로 떼어놓고 볼 때엔 그 순위가 26위로 더욱 밀리는 처지입니다.

 

우리의 복지 수준이 이토록 저조한 건 OECD 통계를 통해서도 이미 확연하게 드러난 사실이기도 합니다. 2014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은 10.4%로 OECD 국가 중 꼴찌였습니다. 이는 21.6%에 이르는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중앙은 물론이거니와 지자체에까지 이르는 전면적인 복지 사업 축소 작업에 나선 상황입니다. 이른바 부자감세라 일컬어지는 정부의 조세 정책과 대대적인 복지 축소 정책은 소득 불평등의 해소는커녕 이를 되레 키우는 형태로 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일보

 

물론 해당 포럼이 내놓은 보고서가 무조건적으로 옳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동안 주로 부자들의 입장을 대변해온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세계경제포럼이기에 이들마저 우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적하고 나선 건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경기 활성화를 꾀한다며 정부와 여당은 친기업적 정책들을 일제히 쏟아낸 바 있고, 갖가지 단기 부양책을 투입시켜 가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 양상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의 활력은 갈수록 떨어지며, 장기 불황의 터널 깊숙이 진입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쯤되면 백약이 무효일 정도입니다. 그 와중에 사회 불평등 구조는 더욱 심화돼가고 있습니다. 동그라미재단에 따르면 기회 균등마저 갈수록 기울어져, 그 지수가 31개국 중 20위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돼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경제포럼은 불평등이 적은 나라가 경쟁력이 있고 성장력도 크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경제 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며 그 외의 모든 것들을 경제 발전과 그의 주체인 기업체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아주 큽니다. 아울러 이는 성장 일변도의 정책에 방점을 찍은 채 사회 불평등 구조를 갈수록 심화시키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아래에 기술한 세계경제포럼 보고서 내용 일부와 함께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덕목 중 하나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경제와 관련해 우려스러운 부분 중 하나가 부패다. 사회 여러 부문에서 힘 있는 사람들이 지대를 뜯어가도록 하고 있다. 이런 지대는 가족 경영을 하는 소수의 대기업에 고도로 집중돼 있고, 이는 각종 규제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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