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르몽드 광고 논란, 의도인가 실수인가

새 날 2015. 9. 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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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살짜리 시리아 꼬마 난민 쿠르디가 터키의 한 해변에 죽은 채 떠밀려와 전 세계를 슬픔에 빠뜨리게 한 일이 있었는데요.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쿠르디의 사례는 아직 유아에 불과한 아기의 죽음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국경과 종교 인종 등의 차이를 초월하여 작금의 난민 사태에 대해 더욱 분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쿠르디의 죽음은 많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물론 난민 사태의 빌미인 시리아 내전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패권과 맞물려 있어 복잡다단한 형태를 띠고 있기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쿠르디가 난민 사태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촉발시키는 데 일조한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시리아 난민 발생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영국은 그동안 난민 수용에 인색한 태도를 견지해왔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정책과는 별개로 수만명에 해당하는 난민을 직접 수용하겠노라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네티즌들의 움직임은 더욱 기민하고 정성스럽기까지 합니다. 쿠르디의 사진을 이용한 일러스트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여 SNS망을 타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유된 채 아기 쿠르디의 죽음을 애도하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한 언론 매체가 알려져 독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바로 1944년 창간되어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 받고 있는 프랑스 대표 일간지 '르몽드'입니다. 해당 신문사는 쿠르디의 사진을 1면에 싣고 마지막면 광고 페이지에 구찌 가방을 쥔 여성 모델이 해변에 누워 있는 모습이 담긴 광고를 실었는데, 이게 화근이 된 것입니다. 1면과 마지막면을 함께 펼쳐 놓으면 쿠르디의 사진과 여성 모델의 사진이 나란히 위치하게 되는데, 이 모습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다소 불편하게 와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파트릭 다퀸이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그가 이를 사진으로 찍어 SNS에 공유하면서 결국 작금의 논란으로 불거지게 된 것입니다. "언론의 지면 배치는 가끔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어떻게 말할까. 고급스러운 놀라움이라 할까?" 그가 트위터를 통해 남긴 메시지입니다. 명품 브랜드인 구찌와 한 꼬마 난민의 죽음이 우연찮게 동시에 배치된 그로데스크한 장면을, '고급스러운 놀라움'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회학자로서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신문사 측의 의도적인 배치는 분명 아니었으리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첫면과 마지막면을 펼쳐 놓으며 무언가 연관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우리 일상에서 그리 흔치 않은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를 발견한 사회학자 역시 일부러 찾아내지는 않았을 테고, 순전히 눈썰미 좋은 그의 눈에 의해 우연한 기회에 띄었을 것입니다. 르몽드가 1면에 쿠르디의 사진을 실었다는 건 그만큼 아기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세계인들의 슬픔과 함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세계적인 유력 일간지다운 면모입니다. 어떠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신문사는 1면 배치라는 묘수를 두어 독자들을 배려한 것이라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가치가 더욱 돋보이는 효과도 노렸음직하고요. 

 

그러나 이러한 의도가 뜻하지 않은 지면 배치 논란 하나로 인해 완전히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실 쿠르디의 죽음과 구찌 광고는 연관성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로따로 놓고 본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구찌로서는 명품브랜드답게 평소 자신의 스타일대로 광고를 내보낸 것뿐일 테며, 르몽드 역시 이를 주어진 광고 지면에 그저 실었을 뿐입니다. 다만, 같은 바닷가라는 장소적 배경과 쿠르디의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명품브랜드가 합쳐지며 뿜어내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일련의 연상작용을 일으키면서 결국 전혀 엉뜽한 결과를 빚고 만 셈입니다.

 

파문이 일자 르몽드는 즉각 트위터를 통해 "이런 배치의 실수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고, 이런 실수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서 사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우선 실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발빠르게 사과를 한 점은 긍정적인 대목입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만큼, 아울러 사회적 공기라는 언론으로서의 책무를 지니고 있는 만큼, 이번 논란으로 인해 광고 하나를 선정하는 작업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지면 배치 따위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여실히 깨닫게 합니다. 물론 르몽드 같은 세계적인 언론사가 이렇듯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사실에 대해 미심쩍은 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혹시나 하는 찜찜함이 제 마음 한켠에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탓입니다.

 

상대방이 아프다고 할 때 우리도 그 아픔을 느끼고, 상대방이 슬퍼할 때 우리도 그 슬픔을 함께하며 적절하게 반응하는 게 일반적인 공감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행동일 것입니다. 언론의 역할 중 하나는 다름아닌 이러한 세인들의 감정을 한 곳으로 모으도록 하는 진정한 공감 능력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쿠르디의 죽음을 1면에 실은 것 역시 그러한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따른 결과물일 터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번 파문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전 세계인들로부터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미디어 매체라면 더더욱 광고 하나를 싣더라도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이는 우리 언론매체들에도 시사하는 바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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