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복지사업 통폐합 나선 정부, 간과해선 안 될 한 가지

새 날 2015. 9. 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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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사회보장기본법에는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때 반드시 복지부장관과 협의하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제26조, 협의 및 조정에 관한 항목입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시절이던 2011년 2월 대표 발의했던 법안이기도 합니다. 유사 중복사업을 막아 재정누수를 차단하고, 사전에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습니다. 가뜩이나 국가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우후죽순 들어선 선심성 복지사업에 대해 일정 부분의 정비는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긴 합니다. 

 

하지만 감사원이 지난 7월 이러한 사회보장기본법을 근거로 일부 지자체가 복지부와 협의 없이 하고 있는 중증 장애인 1일 24시간 추가지원은 과도한 복지서비스라며 복지부에 통폐합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데 이어, 지난달 국무총리실 역시 지자체 자체 예산 복지사업 5,891개 중 1,496개(25.3%)가 중앙정부 사업과 유사하거나 중복된다며, 1조원 규모의 복지사업을 정비하라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지자체의 복지사업 구조조정에 본격 나서며 지금까지 600만명 이상이 받아온 복지 혜택을 아예 받지 못 하게 되거나 줄어들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안철수 두 의원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전국 17개 광역지자체에 통폐합을 통보한 복지사업 1,496개의 수혜자는 645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국일보

 

물론 정부가 애초 복지 정책의 정비에 나선 의도대로 중앙정부 사업과 중복되거나 불요불급한 사업을 정리함으로써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가던 복지 예산을 제대로 된 곳, 즉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게끔 교통 정리한다는 측면에선 이번 구조조정이 상당히 고무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600만명이란 인원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닌 데다 정작 지원이 절실한, 이른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이웃들이 이로 인해 대거 피해를 입는, 선의의 피해자로 둔갑할 수도 있는 사안이기에 솔직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탓에 다소 우격다짐격으로 비치는 정부의 태도가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부추기는 모양새입니다.

 

이에 따르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의 30% 가량이, 아울러 장애인과 노인 대상의 사업은 그의 절반인 15% 가량이 조정 대상에 올랐습니다. 이 정도면 상당한 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정 대상 사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경우, 우선 장애인 활동 보조 지원 중단 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장 하루 24시간 돌봐주는 활동보조인은 기본적인 거동조차 어려운 중증 장애인에겐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에 대한 활동보조 지원이 끊기게 될 경우 이들의 삶은 단 하루도 예측하기 힘든, 극한의 처지로 내몰리게 됩니다. 지금 이들은 해당 지원 사업이 끊기게 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입니다.



그밖에 80세에서 85세 이상 노인에게 월 2만원 내지 4만원씩 주는 장수수당과, 조손가정에 월 7만원을 지원하는 사업, 그리고 저소득층 노인 보청기 구입 지원 사업마저도 폐지 수순에 돌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주민등록상 동거자 유무와 상관없이 실제로 혼자 살고 계시는 노인들을 발굴하여 이들을 돌보게 하는 독거노인도우미 사업은 실로 복지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는, 눈에 띄는 몇 안 되는 좋은 제도로 여겨집니다만, 이마저도 정부의 엄격한 기준에 제동이 걸린 채 폐지 대상에 오르고 말았습니다.

 

한국일보의 단독기사(통폐합 대상 2개월간 '졸속 선정'.. 600만명 복지 혜택 줄어)에 따르면, 600만명이 넘는 대상자에게 영향이 미치는 이러한 중차대한 결정을 단기간 내 졸속으로 처리한 사실이나 조정 대상 선정의 일관성 결여 그리고 법적 근거마저 불분명한 지자체를 향한 사업폐지 권고 등 숱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의 횡포(?)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자체의 자치권을 심하게 훼손시키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러움을 감출 수 없게 합니다. 가뜩이나 지방교부금을 통해 지자체 재정 운용의 칼자루를 쥔 정부가 이젠 복지 사업을 매개로 지자체의 권한을 지나칠 정도로 침범해 들어오고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코노미스트

 

한편, 현행 법인세법 및 소득세법에서는 회사 명의로 업무용 자동차를 구매하거나 임차하는 경우 비용 전액이 손금으로 산입되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고가 업무용 차량 및 외제 차량을 구매하거나 리스가 증가하는 현상을 야기해온 바 있습니다. 이른바 '무늬만 회사차'인데요. 이를 막겠다며 정부가 지난달 6일 세법개정안을 발표하였습니다만, 금액 상한이 정해지지 않는 등 치명적인 허점이 드러나 실효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오고 있습니다. 일종의 서민 증세 논란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상황입니다. 왜 이러한 논란이 불거지게 됐냐면, 저가차에서부터 고급차까지 일정한 비율 내에서 일괄적으로 같은 공제율을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차값이 비쌀수록 오히려 절세효과가 높아져 고소득 사업자가 유리해지고 영세사업자에겐 불리해지는 구조가 됩니다.


정부가 마련한 세법개정안의 허점이 통상마찰을 일으키는 원인 때문이라는 일각의 주장도 있습니다만, 그보다는 결국 정부의 정책 기조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앞서 살펴봤듯 서민들, 특히 복지 취약계층에 대한 혜택 수준을 대폭 줄이고 있는 반면, 조세 정책 등은 철저하게 기업과 부자들에게 유리하도록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탓입니다. 정부는 그 많던 지자체의 복지 사업을 2개월도 채 안 되는 무척 짧은 기간동안 검토하여 이에 칼질을 가하고 후딱 해치우면 할 일을 다했노라 주장할지 모릅니다만, 600만명 중 누군가에겐 이로 인해 그 어느 상황보다 어려움에 처하게 되거나 아예 삶 자체를 송두리째 앗기는 결과물일 수도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선 어떡하든 부족한 예산만 줄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수 있겠습니다만, 취약계층 600민명에겐 재앙 그 자체로 다가올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잘 사는 이들에겐 비록 몇 푼 안 되는 푼돈에 불과할지라도 어떤 이들에겐 그 푼돈이 삶을 유지해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누구에게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타고난 환경과 주변 여건이 판이한 탓에 어떤 이들에겐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 받는 일마저 무척 어려운 사안일 수도 있습니다. 복지의 개념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적어도 사람다운 삶, 아울러 최소한의 삶을 국가가 보장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그러한 성질의 것입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염려하며 이를 없애고자 한다면, 그 어느 정책보다 신중하고도 차분하게 결정해야 함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복지사업 통폐합과 구조조정에 나선 정부가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될 한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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