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부모의 자녀 결혼비용 부담, 여전히 의무인가

새 날 2015. 9. 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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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자녀의 결혼비용과 관련한 여성가족부의 통계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이와 관련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러나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자녀의 결혼비용을 부모가 부담해야 하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느냐의 논란은 애초에 논란거리가 아닐 수도 있다. 부모 다수는 여전히 이를 자식에 대한 의무라 여기고 있으며, 자녀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라 여기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들이 결혼하는 데 지출한 비용이 8천만 원 이상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2억 원 이상이라 응답한 비율도 10%를 넘는다. 반면 딸 결혼 비용은 상대적으로 적은 6천만 원 이하가 다수를 이룬다. 아들 딸 사이의 결혼 비용 차이는 모두가 짐작하고 있듯, 신랑 측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인식 탓이다. 비싼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보다 내겐 결혼하면서 부모 지원을 전혀 받지 않은 비율이 고작 10.4%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JTBC 방송화면 캡쳐

 

이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결혼하면서 부모로부터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시대가 변하고 생활 환경마저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이러한 인식과 관행만큼은 웬만해선 꿈쩍 않고 있으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요새 젊은이들의 어려움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 치열하다는 취업 경쟁을 뚫고 어렵사리 직장에 들어와 한 푼 두 푼 아껴가며 돈을 모으고 있건만, 안정적인 생활은 언감생심, 터무니없이 치솟는 전세 가격 등 비정상적일 정도로 부풀려진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며 내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당장 발 디딜 만한 조그마한 공간 마련도 여의치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 세대 역시 녹록지가 않다. 결혼하기까지 자녀를 키우기 위해 부모는 그동안 평균 3억8천만 원(보건복지부 2014년 통계, 출산부터 대학졸업 시점까지의 비용)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출했다. 수도권의 웬만한 집 한 채 값이다. 국토교통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혼부부 가구가 생각하는 내 집 마련에 걸리는 기간은 수도권이 10년, 비수도권은 7년 3개월이란다. 하지만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보듯, 현재 부동산 가격 기준으로 11년을 모을 경우 내집 마련이라는 계산이 맞아 떨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사이 부동산의 가치도 그 이상 훌쩍 올라 버리는 게 보편적일 테다. 이 때문에 실의에 빠진 주인공의 모습이 비록 영화라는 허구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두 내외가 맞벌이를 통해 먹을 것 안 먹고 쓸 것 안 쓰는 등 최대한 아껴가며 10년 이상 번 돈을 꼬박 부어도 마련할까 말까 할 만큼 큰 액수가 다름아닌 집 한 채의 값이자 자녀 한 명당 양육비용이다. 출산율 저조 현상이라는 작금의 국가적 재난 상황은 이러한 살인적인 양육비가 한 몫 단단히 한다.

 

 

그나마 자녀가 한 명이면 다행이다. 현재 자녀를 출가시킬 정도의 나이에 해당하는 세대라면 이른바 베이비부머라고 하여 다자녀를 일군 세대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자녀 수를 N으로 놓고, 이들을 모두 대학 졸업까지 시켰다고 가정할 경우, 그에 드는 총 비용은 평균 3억8천만 원*N이 되는 셈이다.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가 아닌가. 이 대목에서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녀 한 명당 4억 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으면 부모로서는 사실 천륜지간의 의무를 다한 셈이라고.

 

이제 부모도 스스로의 노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생활환경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기대여명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절대로 축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노후 생계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라는 존재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다. OECD 노인빈곤율 1위와 노인자살률 1위가 이러한 고단한 현실을 말해준다.

 

근래 청년세대가 상대적으로 많이 부각되고 있어 특히 힘들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 힘들지 않은 세대는 단 한 곳도 없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최근 ‘마음의 온도’를 주제로 설문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한국인의 심리적 체감온도인 마음의 온도는 영하 14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하 14도라는 기온은 사실 제아무리 겨울이라 해도 서울을 기준으로 볼 때 흔히 겪을 수 있는 추위가 아니다. ’심리적 추위와 계절적 추위 중 어느 것이 더 힘든가’라는 질문에 78.1%가 심리적 추위라고 답변한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이미 저 차디 찬 동토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뉴스K 방송화면 캡쳐

 

부모에 대한 봉양 문화는 점차 사라져 가고 있음이 뚜렷하다. 체감으로 와닿을 정도이니 말이다. 결혼한 뒤 자녀에게 정기적으로 생활비나 용돈을 받는 경우가 여섯 부부 가운데 한 부부에 불과하다는 설문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자녀도 마찬가지지만 부모들 또한 자녀와 함께 사는 걸 꺼리는 모습이 확연하다. 이러한 변화에 비하면 결혼 비용마저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의 오래된 관행은 여전히 지독한 관성이라 할 만하다.

 

이젠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부모로서는 자식에 대한 결혼 비용 부담을 부모의 의무라 여기고 싶겠지만, 실은 이러한 문화엔 과시욕과 허례허식이라는 좋지 않은 관행이 녹아들어 있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어렵다. 아울러 집은 무조건 남자가 장만해야 한다는 관념 또한 무시 못 할 풍조 중 하나다. 이의 변화를 도모하려면 부모 세대만이 아닌 자녀 세대의 인식 변화도 함께 이끌어내야 한다. 부모는 자녀 양육에 대한 의무를 다한 것만으로도 천륜지간의 도리를 지킨 셈이다. 그동안 고생하셨노라며 자녀들이 박수를 쳐주어도 사실 시원찮다.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 의무를 다 마친 부모가 결혼 비용마저 자식에 대한 의무라 여기며 모든 걸 다 내놓는 어리석음은 이제 피해야 한다. 어차피 각자도생의 삶으로 내쳐진 모든 세대이기에 각자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가 도모해야 할 처지에 놓인 셈이 아닌가. 이참에 자녀 양육의 한계를 새로이 설정하는 기회로 삼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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