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민의 법감정과 따로 노는 의원님들

새 날 2015. 8. 2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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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의 자녀 취업 청탁 의혹으로 인해 민심이 제대로 뿔이 났습니다.  특히 청년층의 취업난이 점입가경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사건이 불거진 터라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 이 땅의 청년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들을 처벌할 마땅한 묘책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기껏해야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과연 이로부터 실효성 있는 징계가 이뤄질지의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대 국회 들어 지금까지 총 38건의 의원 징계 요구안이 윤리위에 제출됐지만,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처리된 게 없는 탓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자정을 바란다는 건 결국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일과 뭐가 다를까 싶습니다.

 

부정부패라는 악습의 고리를 끊고자 얼마 전 우리 사회는 어렵사리 김영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물론 이 법이 시행되려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두 분의 국회의원에겐 다행히(?) 적용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만약 이들 국회의원이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게 될 경우 어떤 결과가 빚어질 수 있을까요?  다소 어이없습니다만, 경향신문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청탁한 기관이 공공기관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경향신문

 

이게 무슨 말이냐면, 현행 김영란법은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이나 금품 증여 수수 행위로만 국한되어 있어 민간인이나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한 부정청탁은 애초부터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현행 법은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은 금지하면서도 공직자 자신이 부정한 청탁을 한 데에 대한 규제 법률 조항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치명적인 허점을 노출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이를 두 국회의원에게 적용해볼 경우, 김태원 의원은 정부기관인 정부법무공단 채용에 영향을 끼치려 했기 때문에 김영란법에 의한 처벌을 받게 될 테고, 윤후덕 의원은 LG디스플레이라는 사기업에 취업 청탁을 의뢰한 셈이 되기에 김영란법에 의한 처벌을 피해갈 수 있는, 말도 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게 됩니다.  같은 부정청탁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공직자이냐 아니냐에 따라 결과가 이렇게 판이해지니,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김영란법에 국회의원 등 공직자의 부정한 청탁을 처벌하는 조항을 넣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절대로 모를 리 없는 국회의원들의 태도는 지극히 미온적이기만 합니다.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부분의 법 개정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싶습니다.  그와 반대로 형평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거나 법의 취지마저 무색케 할 만큼 치명적인, 자신들의 지역구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선 개정을 서두르고 있는 모양새라 대조를 이룹니다.  1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김종태 새누리당 의원은 김영란법에서 농림축산어업 활동으로 생산된 생산품과 그 가공품을 제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였으며, 해당 법안에 20명의 의원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자칫 농어업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미연에 방지하자 라는 취지로 읽힙니다.  실제로 농어업인 생산자 단체인 농협과 수협은 김영란법으로 인해 명절 선물용으로 농수축산물 등이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해당 법의 개정을 촉구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아직 시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농어업인들의 우려는 실제로 법 시행 이후 현실적인 문제로 불거질 경우 나중에 후속 대책을 내놓더라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김영란법 시행은, 단기적으로는 손실로 비칠지 몰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이득으로 다가올 그러한 사안입니다.

 

ⓒ뉴시스

 

전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 어렵사리 통과시킨 법을 아직 시행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 법의 취지를 훼손케 할 만한 내용으로 개정하자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 개정을 발의하고 이에 서명하신 분들, 농어업인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우고 있긴 합니다만, 짐작컨대 이조차 농어촌을 기반으로 한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의 민심을 얻기 위한 포석으로 읽히는 상황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적 여망인 부정부패 척결의 의지를 벌써부터 훼손시키려 함이 아니면 무얼까 싶습니다. 

 

우리의 생명줄이자 밥줄인 농어업은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중요하고도 값진 산업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혹여 김영란법 때문에 우리의 생명줄이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고 하여 이 대목만 예외로 풀어놓을 경우 여타 산업과의 형평성 논란을 빚음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악인 부정부패 일소라는 애초 법의 취지와도 걸맞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어쨌거나 애초의 취지가 제대로 담긴 법 시행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해집니다.  국민 다수의 법 감정도 이와 비슷하리라 여겨집니다.

 

정작 국민이 법 개정을 해주었으면 하는 영역은 엄연히 따로 존재합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부정청탁 행위에 관한 처벌에 대해 구멍이 숭숭 뚫린 허점 내지 모순을 바로잡는 일부터 서둘러야 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어쩌면 국회의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지나치게 자신들의 이익에만 치중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덕분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진짜 일들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행태는 결국 국민의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있는 셈입니다.  의원님들,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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