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학가 '무감독 시험' 확산에 주목하는 까닭

새 날 2015. 7. 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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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대학교 중간고사 당시 불거졌던 집단 부정행위의 여파가 여전합니다.  사실 지성과 인재의 요람이라 일컫는 대학가에서의 부정행위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지닌 본성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엿보입니다만, 경쟁을 염두에 둔 시험의 속성상 지필시험이란 제도가 생긴 이래 이와 같은 문제는 지속돼 왔을 공산이 크며, 공교롭게도 문명의 이기가 부정행위 기술마저 더욱 발전시키는 추세이다 보니, 오히려 대학이 이를 막으려는 자와 이를 뚫으려는 자 간의 마치 첨예한 창과 방패의 대결의 장이라도 된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학기 잇따른 부정행위 파문으로 시끄러웠던 서울대의 일부 단과대가 '무감독 시험'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여 주목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부정행위 파문의 배경엔 동시에 많은 인원이 치르는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감독 인원이 지나치게 적게 투입된 데서 비롯됐다는 감독 소홀이란 비난이 깔려 있는 터라 오히려 무감독 시험이라는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한 대학 당국의 결과는 일종의 역발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감독 시험이란 말 그대로 시험 감독 인원 없이 학생들의 양심에 맡긴 채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캘리포니아공과대 및 하버드대 등 미국의 일부 명문대와 우리나라의 한동대에서 도입하여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이른바 '아너 시스템(Honor System)'이 바로 이에 해당합니다.  이는 학생 스스로 시험이나 과제를 제출하는 등 학교 생활 전반에서 정직하게 행동하겠다는, 사전에 마련된 '아너 코드(Honor code 명예 규칙)'에 학생들이 서명을 하고 이를 어기면 벌칙을 감수하는 제도를 일컫습니다.  서울대학교 자연대는 강의 성격과 수강생 수 등을 고려하여 이를 내년 1학기부터 일부 수업에서 운영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전면 시행 등 확대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고 합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사실 컨닝을 시도하는 학생과 이를 막으려는 학교 당국은 영원히 상대방을 뚫으려 하거나 이를 막아야 하는 일종의 모순(矛盾)과도 같은 관계입니다.  부정행위의 기술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이를 막아내고자 하는 묘수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발달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서로 마주본 채 평행선이라도 달리는 형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때문에 부정행위의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닌, 전 세계가 안고 있는 공통 과제이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어려운 난제이기도 합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해결 불가능한 성질의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부정행위의 문제점은 최근 중국에서 다소 극단적인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한 중학교에선 자신의 책걸상을 직접 운동장으로 들고 나와 일정한 간격에 맞춰 앉은 채 시험을 치렀으며, 산시성에 위치한 한 대학교 졸업시험에선 졸업생 3,600명 전원이 운동장에 줄을 맞춰 앉아 시험을 치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했던 건 해당 시험을 감독한 80명의 교수들이 저마다 망원경과 사다리, 카메라 등의 장비로 중무장한 채 부정행위를 감시하고 나선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포츠서울

 

어쩌면 이는 중국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개개인 간의 경쟁의 정도가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서 빚어진 결과물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거니와 안쓰럽기까지 한 해당 장면 연출은 우리나라의 사례가 아닌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중국의 사례처럼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창과 방패의 끊임없는 진화 형태는 다소 볼썽사나운 모습만을 연출할 뿐 그 악순환의 본질을 영원히 끊어낼 수는 없는 소모전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 역시 만약 예리한 창을 막는답시고 방패를 더욱 견고하게 구축하려 한다면 그 형태는 다소 달라도 종국엔 중국의 그것과 비슷한 결과를 빚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교 당국은 감독 소홀이라 비난 받았던 부분의 만회를 위해 더욱 많은 감독 인원을 시험장에 투입시켜 매의 눈으로 부정행위의 여부를 감시하려 할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필코 부정행위를 하려는 학생은 갖가지 기상천외한 방법을 고안하여 어떡하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학생들 스스로가 명예를 지키고 자긍심을 높이게 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된, 학생들의 능동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일부 대학들의 무감독 시험 제도 도입은 상당히 바람직한 형태로 다가옵니다.  이는 부정행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거나 시험감독을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기보다 학생 스스로가 자신과의 약속을 통해 명예를 지키려는 노력과 훈련을 쌓아 윤리 의식을 고취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정행위란 것이 지나친 경쟁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개인들을 자꾸 특정한 방향으로 내몰고 있는 형국인 데다, 인간이 지닌 여러 본성 중 특별히 좋지 않은 측면에 의해 발생하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라면, 거꾸로 스스로의 약속과 자율이라는 인간이 지닌 긍정적인 성향과 자아실현 욕구를 통해 이를 방어하는 방식은 단순히 하지말라며 강제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보다 훨씬 고차원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행위는 곧 자신과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임을 스스로가 깨닫게 함으로써 졸업후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도 실력만 탁월한 인재가 아닌, 책임감과 올곧은 인성까지 두루 갖춘 진짜 인재로 거듭나게 하는 데에도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될 것이라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현재는 일부 대학에서 실험 형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만, 아무쪼록 좋은 성과를 거둬 많은 대학들에도 해당 제도가 널리 도입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단 부정행위를 막겠노라는 단순한 의의보다, 결국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는 비윤리적 행태와 이로 인한 부정부패의 사슬을 끊어낼 단초 역할을 하게 된다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 간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고 한층 투명한 사회를 이루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대학가의 분위기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는 마중물로 작용하였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봅니다.  대학가 무감독 시험의 확산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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