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건강보험료 인상 추진이 씁쓸한 이유

새 날 2015. 6. 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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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29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율을 0.9% 인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직장가입자의 보험료율은 현행 보수월액의 6.07%에서 6.12%로,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과점수당 금액은 현행 178.0원에서 179.6원으로 오르게 됩니다.  이의 조정으로 직장가입자가 내는 실제 월평균 보험료는 879원, 지역가입자의 월평균 보험료는 765원 인상될 전망입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과 기업 부담 증가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험료율 인상을 최소화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2010년 이후 최저 수준의 인상 폭이라는 설명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9년 동결된 이후 2010년 3.9%, 2011년 5.9%, 2012년 2.8%, 2013년 1.6%, 2014년 1.7%, 2015년 1.35% 인상됐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쯤되면 국민과 기업을 배려하는 정부의 마음 씀씀이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하지만 정녕 정부가 국민과 기업을 배려하여 이런 결과를 도출해낸 것일까요?  이번 건보료 인상으로 확보되는 재정은 총 1조6000억원에 달합니다.  4대 중증질환 보장 등 주로 보장성 확대에 쓰일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물론 보험료 인상분이 국민의 의료 이용 부담을 대폭 완화하는 일에 쓰인다고 하니 한 달에 평균 900원, 연간 1만원 가량의 비용을 추가로 지출하는 일이 개인에 따라 와닿는 부담의 정도야 모두 다를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다지 큰 짐이 아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메르스 사태로 응급실 격리 수가를 신설할 필요성이 고려됐다는 또 다른 인상 사유로부터는 빈정이 확 상하고 말았습니다.  왜 아닐까 싶었습니다.  건보료 인상 이유에 메르스 사태가 언급되지 않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요.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초유의 사태를 맞아 개선해야 할 점이 짐짓 많았을 테고, 이를 보완하겠다는 취지에 대해선 특별한 불만 따위 없습니다.  다만, 보건복지부가 이번 메르스 사태 국면에서 보여 준 무능과 무책임한 행태를 생각하면 참으로 뻔뻔스럽다는 느낌만 들 뿐입니다.

 

ⓒ노컷뉴스

 

메르스 사태가 이토록 확산된 데엔 보건 당국의 허점 투성이 대응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촘촘하게 짜여진 매뉴얼이나 대응지침 그리고 의료시설이 제아무리 잘 구비되어 있으면 뭐합니까.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초기대응에 실패하였고, 마땅히 알려져야 할 정보마저 공개되지 않아 화를 더욱 키우고 만 모양새입니다.  '재난대응 안전한국 훈련현황'에 따르면 정부는 이미 2년전 이번 메르스 사태와 비슷한 상황을 예측하고,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감염병 대응훈련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훈련 내용은 고작 매뉴얼 확인 수준에 그쳤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울러 막상 메르스라는 감염병이 확산되기 시작하자 그나마 허술하기 짝이 없던 훈련 상황만큼의 대응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보건 당국은 제대로 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메르스 확산을 막을 기회를 번번이 놓쳤으며, 수십명이 사망하거나 수백명의 확진환자가 발생하고, 1만명이 넘는 격리 환자가 발생하는 엄중한 상황에서도 국가전염병재난단계를 국가 이미지 손상 때문에 격상시키지 않았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인 대응훈련과 초기 적절하고 신속한 조치만 이뤄졌더라도 메르스를 이른 시점에 종식시켰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결국 정부의 건보료 인상 추진은 전형적인 사후약방문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허술한 대응 때문에 국민 모두가 그에 따른 고통을 겪어야 했고, 이젠 메르스 유사 상황에 대비한다며 또 다시 건보료 인상으로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2010년 이래 가장 낮은 인상률이라며 읍소하고 있지만 메르스가 아니었으면 건보료 인상에 대해선 애초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했을 상황입니다.  건강보험료 흑자가 4년째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보험료 수입은 2009년 동결된 이래 최근 5년간 연평균 11.5% 증가하였습니다만, 같은 기간 건강보험 급여비용의 연평균 증가율은 7.3%에 그쳐 보험료 부담 비용보다 급여 혜택이 적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누적된 건강보험 흑자 금액은 2014년말 기준 12조8072억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메르스 감염 우려로 병원을 이용하는 사람이 줄어 흑자 규모는 올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메르스를 핑계 삼으며 또 다시 건보료 인상을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메르스 공포증에 걸린 대중들에게 이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을 꺼내들기라도 한 것일까요?  정부의 메르스와 관련한 언급이 없었더라면 한달에 천원도 안 되는 추가 비용, 차라리 선뜻 호응해 주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괘씸죄에 걸린 정부가 12조원이라는 흑자 금액을 쌓아둔 채 또 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로 다가오는 탓에 뒷맛이 영 씁쓸한 데다 못마땅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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